스님의 버선 보시(佛陀布靴)

2018. 2. 12. 21:13해학의 경귀들


(두타산 쌍폭)


스님의 버선 보시(佛陀布靴)

 

아주 오래전에 삼척의 오지(奧地) 동막 신흥사에서 공부할 때의 이야기다.

신흥사는 눈비 오는 날을 제회하고 일주일에 두번 정도 마이크로버스가 다녔던 오지인데

지금은 어떻게 발전했는지 몰라도 옛적에 비구니가 운영했던 절을

모 비구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었는데 오지라서 그런지 신도들도 많지 않아

사시 공양 올릴 공양주 한 분밖에 없는 초라한 사찰이었다.

그래서 주지 스님은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사찰에 딸린 작은

텃밭과 전답을 일구며 반 농부처럼 생활했다.

전각이라 해봐야 대웅전 하나에 허물어진 산신각 하나,

그리고 폐허에 가까운 옛 스님들이 기거했던 부엌을 낀 3칸짜리 요사채와

 초파일 행사를 지날 때 머물 수 있는 큰 방이 딸린  요사채와

뒤 편에 스님이 거쳐 할 2칸 짜리 작은 요사채 하나가 전부였다.

(두타산 용추폭포)  

그해 늦은 여름철 대학입시를 앞둔 남학생 하나가 휴양차 며칠 쉬어갔다고 들어왔다.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지 몸은 건장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소란한 도시를 벗어난 기분에

새벽에 뒷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사찰 분위기에도 잘 적응하나 싶더니

3일이 지나자 지루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공양을 마칠 때쯤

여고생 몇 명이 사찰로 나들이를 나왔다. 지루했던 그 남학생은 기회가 왔다고 여겼는지

 절 구경 시켜준다고 솔선하여 여고생을 법당과 뒷산까지 길 안내하며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그런데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여고생들은 보이지 않고 혼자 터벅터벅 절로 돌아왔다.

왜 혼자 내려왔느냐고 물었더니, 여고생들이 볼 것 없다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입맛을 다시면서 하는 말

참 아까운 고것들을 놓쳤습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흑심이 있었던 모양인데. 세태가 참.. 허긴

남자는 다듬잇돌만 있어도 껴안고 잔다.」」는 옛말이 생각나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분잡한 도회를 떠나 한 일 년쯤 절에 있다 보면

 일주문 밖의 여인들의 분 냄새를 법당 마당에서 맡을 수 있는 정도로 후각이 정제되는 데,

하물며 혈기왕성한 젊은 스님이라면 어떠했을까?

 

조선 후기 재야 선비 조재삼이 엮은 <송남잡식/松南雜識>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장가계 가는 길에)  

 

어느 스님이 시주 차 두 내외만 사는 집을 방문했는데

마침 남편이 밭일하러 나가고 여자 혼자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여인도 색기가 있었던지 스님을 보자 은연중에 눈이 맞아 둘이 방에 들어가 일을 치르는데

너무 열정적(?)이라서 그랬는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날따라 밭일을 나갔던 남편이 술 생각이 나서 평상시 보다 일찍 집에 돌아와서 아내를 불렀다.

한참 열을 내고 있던 스님은 놀라서 옷만 챙겨 입고 도망쳐 나왔지만,

경황이 없어 버선 한 짝은 미처 챙기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내가 차려 준 술상을 받아 거나하게 마셨다.

술을 마신 뒤라 남편도 그 생각이 났는지 아내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불 속에 웬 버선 한 짝이 있지 않은가. 괴이하다고 생각은 하면서 그날 밤은 그냥 지났는데

다음 날 아침 스님이 다시 시주를 왔다. 남편이 공양물을 들고 스님을 맞이하니 스님이 하는 말,

이제 돌려주게나남편이 어리둥절해서

스님, 무엇을 돌려달라는 것인가요?”라고 되묻자.

스님이 하는 말

어제 시주를 왔다가 네 집사람이 부처님의 가피로 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빌어서

내가 버선 한 짝을 보시하고 그것을 이불 속에 놓아두라고 했는데 어제 준 그 버선 말일세.”

남편은 이 소리를 듣고서 어젯밤에 괴이하다고 여겼던 생각을 말끔히 풀어버리고

, 그 버선말이군요하면서 어제밤의 그 버선을 돌려주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나자 스님 말대로 기적처럼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정선 화암동굴의 남근석)  

 

동서고금을 통해 속(, 비속(非俗)을 불문하고 색에 대한 본능적인 그 욕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래서 사십이장경(24)도 이런 경구를 둔 모양이다.

 

이성에 대한 욕망보다 강한 욕망은 없다. 이성에 대한 욕망은 그 크기가 끝이 없다.

다행히도 그것이 하나이기 망정이지 만약에 둘이었다면

천하에 도를 닦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佛言 愛欲莫甚於色 色之爲欲 其大無外 賴有一矣 若使二同 普天之人 無能爲道者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