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龍門)에 얽힌 잡다한 두 번째 이야기

2018. 2. 10. 01:02해학의 경귀들

 


 

용문(龍門)에 얽힌 잡다한 두 번째 이야기


중국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膺傳)에는 다음과 같은 등용문에 대한 고사가 나온다.

 

용문(龍門)은 황하(黃河) 동쪽 산서성(山西省) 직산현(稷山縣) 상류에 있는 협곡으로

일명 하진(河津)이라고도 한다.

이 근처는 무척 급류라서 배로 거슬러 갈 수도 없고 웬만한 대어도

타고 넘질 못한다. 하지만 한번 타고 넘으면

그 물고기는 용이 된다고 전해지며 이를 등용문(登龍門) 한다고 말한다.

 

이 용문의 하류에 질할현(膣割縣)이라는 제법 큰 고을이 있는 데,

이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여자가 바람이 잘나 도망가는 경우가 많아서

7살만 되면 할례를 하는 풍습이 생겼다.

그래서 할례라는 고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할례는 의학적 용어로는 포경수술이다. 음경의 표피를 잘라내는 의식인데

이는 남자뿐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행해졌다.

오늘날 여성의 할례는 음핵 절제술이라고도 불리는데 피를 뽑는 것에서부터

음부봉쇄(음핵, 소음순과 대음순의 2/3를 제거하고 대음순의 나머지 부분은

뒤의 작은 구멍과 연결되도록 함)에 이르는

의식적 수술과정이다. 사실상 여성 성기를 절제하는 수술인 이 의식은

기원전 138년 한무제(漢武帝) , 장건이 개척한 실크로드를 따라

이 풍습이 아랍권 및 아프리카로 전파되었다 한다.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말레이 군도, 에티오피아, 이집트,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

브라질, 멕시코, 페루와 중동·아프리카·서아시아·인도의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도

널리 행해진 기록이 있으며 그 대상은 동녀(童女)가 아닌 중년의 부인들에게 주로 행해졌다.


이 의식은 종교적·윤리적 전통의 일부로 생각되며, 책임 있는 성인이 되는 필수적인 단계로 간주하지만,

국제사면위원회는 여성에 대한 할례 의식을 인권 유린으로 인정했고,

할례가 여러 이유로 행해지는 국가의 정부에서도 여성의 할례를 법으로 금지하기 시작했다.

이집트 정부는 2008년부터 할례를 법으로 금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기준 소말리아(98%), 기니(96%), 지부티(93%), 이집트(91%) 등에서는

여전히 대부분의 여성에게 할례가 행해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 릴리트, 1892년 존 콜리어작)  

성경에 의하면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고 그의 아내로 이브라는 여인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있다. 성경에 따르면 아담의 아내는 이브지만

유대 신화에 따르면 릴리트(Lilit) 또는 릴루(Lilu)라 불리는 여인이 아담의 첫째 아내라고 한다.

창세기 127절을 보면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창조되어있다고 쓰여있는데,

이 중 여자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이들이 아담과 릴리트라고 한다.

신화에 의하면 릴리트는 성관계를 할 때 늘 남성 상위 체위를 하는 것과 아담이 원하면

무조건 성관계에 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홍해 가로 도망가

사막에서 혼자 살면서 많은 남자를 유혹했다.

전설에서는 남자들의 침실에 나타나 욕정을 부추긴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중동을 비롯하여 일부 남성들이

 여성의 성욕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할례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조금 황당하지만,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두번째 이야기) 

곤명의 용문석굴을 가보면 석굴 안에 작은 샘이 하나 있고

그 옆에 석상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세워둔 것을 볼 수 있다.

이 샘은 효우천(孝牛泉)이라 불리는데 이런 전설을 담고 있다.

 

옛날에 이 석굴에 사는 조우라 불리는 백정이 있었다. 어느 날 우시장에서 어미 소와 송아지 두 마리를 사 왔다.

굴로 돌아온 백정은 송아지는 안에도 두고 어미 소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려고

굴 밖으로 다리고 나오는 데 어디선가 조우~, 조우~하고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백정은 어미 소를 놔두고 굴 안에 들어와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매어둔 어린 송아지가 눈물을 글썽글썽 흘리고 있었다.

이를 본 백정은 자기가 어미 소를 죽이려 하는 것을 송아지가 알고 슬퍼하는 것인 줄 깨닫고는

측은한 마음이 생겨 차마 어미 소를 잡지 못했다.

그로부터 어미 소가 수명을 다하고 죽자 심한 가뭄이 덮쳐 물을 구하기 힘든 어느 날,

아랫마을로 물을 구하러 갔다가 돌아와 보니 석굴 안 샘에서 물이 가득하고

샘물 옆에는 송아지가 죽어 있지 않은가. 어미를 살려 준 보은으로 송아지가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의 뿔로 바위를 뚫어 샘을 솟게 한 것이다.

그래서 송아지가 보은(報恩)했다 하여 이 샘을 효우천(孝牛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효우천의 전설은 자본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은 핵가족 시대의 자유주의적 사고나

서구적인 사고로 볼 때 어쩜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물(微物)도 아닌 인간이 존속하는 한 부모가 있기 마련이며,

사람이 모여 사는 데는 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충()과 효()의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요,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세태는 그렇지 못하다. 부모를 잔소리꾼 어른으로 치부하고,

부모의 소리는 뒷방늙은이의 헛소리로 취급하며 말 삿대질을 퍼붓는 정도는 약과이고,

노령으로 병마에 고통받고 있는 부모를 학대하고, 방기(放棄)하고 내몰라는 하는 식으로

 훌쩍 이민이나 떠나버리는 현실, 심지어 효경(梟獍)과 같이 상속을 노리고,

보험금을 노려, 폭행에, 방화에, 살생까지도 서슴지 않은

패륜이 난무하는 이 서글픈 세상에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