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지와 딸의 죽음

2018. 2. 3. 22:24경전속의 우화들


(중국운남성 민속촌에서)


범지와 딸의 죽음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이 말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절실히 드러내는 말이다.

오늘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패륜적인 사건들이 비일비재하지만

그래도 이는 일부 무지몽매한 자들의 이야기이지 대부분의 많은 사람은

자식에 대한 애착을 가진 것은 인간으로서의 인지상정인 아닌가. 법구비유경에 이런 이야기 있다.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시면서 여러 제자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때 어떤 범지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녀의 나이는 열너댓 살 정도로서 단정하고 총명하며 말솜씨가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매우 예뻐하고 사랑했는데 갑자기 딸이 중병을 얻어 이내 죽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밭에 잘 익은 보리가 들불에 모조리 탄 것과 같았다.

범지는 이런 근심과 번뇌와 슬픔 속에서 정신을 잃고 멍청해져서

마치 미친 사람이 제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았다.

마침 그는 어떤 사람에게서

"부처님께서는 큰 성인으로서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시며, 법을 연설하시어

사람들의 근심을 잊게 하고 걱정을 덜어 주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중국 서안 진시황의 지하묘)


이에 범지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꿇어앉아[長跪]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본래부터 아들은 없고 오직 딸만 하나 있어 그 딸을 사랑하며 온갖 시름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갑자기 중병을 얻어 저를 버리고 죽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가엾고 애처로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굽어살피시고 깨우쳐 주시어 저의 근심을 풀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는 오래 갈 수[] 없는 네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항상 할 것 같아도 반드시 덧없게 되고, 둘째는 부귀(富貴)한 것은 반드시 빈천(貧賤)하게 되며,

셋째는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넷째는 강건한 이도 반드시 죽는 것이니라."

그리고는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아산 독립기념관에서)

  

항상 할 것 같아도 모두 다 없어지고

높은 데 있는 것도 반드시 떨어지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태어난 것은 언젠가는 죽느니라.

 

범지는 이 게송을 듣고 곧 마음이 열리어 비구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러자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져 곧 비구가 되었다.

그리고 덧없음[非常]을 되풀이해 생각하다가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증득하였다.

 

(중국 운남성 민속촌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한다. 혈연에 얽힌 정()은 그 어떤 정을 끊기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구도자의 첫걸음은 출가(出家)를 꼽는 것이다.

출가란 단순히 머리 깎고 집을 떠난다는 의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밖으로는 세속에 얽힌 허망하고 무상한 인연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안으로는 나()라고 믿는 있는 허망한 이 육신의 존재에 대한 무지로부터,

일체의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無常의 그 궁극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길을 의미한다.

무상에 대한 해답은 감성적인 허무를 벗어나 쾌락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은 해탈(解脫)의 길이다.

그 길은 머리로서 얻는 것이 아니므로 험난한 수행이 필요하다.

항상 있을 것 같아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고, 만남은 필연적으로 헤어짐이 있다는 이 단순한 진리는

오로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해오(解悟)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證悟)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 선사들도 모두 이르길 증지소지(證智所智) 비여경(非餘境).이라 한 것이다.

무상(無常)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畢竟空)은 깨달음 외에는 달리 경계가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