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결혼한 어느 남정네 이야기

2018. 1. 25. 20:57경전속의 우화들


(현종과 양귀비/서안 화청지)


4번 결혼한 어느 남정네 이야기


소크라테스가 이르길 결혼은 해도 고통이요, 안해도 고통이라고 했던가.

허긴 수다스럽고 심술궂기로 소문난 악처 크산티페를 두었으니 그런 말을 한 만도 하겠지만

어리니 저러니 해도 살다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결혼은 지옥이라고그 생지옥같다는 말에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힘든 결혼을 한번도 아니고 4번씩이라 한 이가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1954년 때 리즈테일러) 

용수보살이 지은 <대지도론>에 이런 이야기 있다.

청년이 결혼했습니다. 처음하는 결혼이라 어떨결에 식을 올리고 살았지만 별 재미가 없었습니다.

허긴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했던가. 그래서 두 번째 부인을 맞이했습니다.

두 번째 부인은 그런데로 자기를 잘 알고 비위도 맞춰주고 이해도 잘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2-3 년을 살다보니 그것도 싫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화끈하게 놀아 줄 3번째 부인을 맞이했습니다.

3번째 부인은 얼굴도 이쁘고 하는 짓이 모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애지중지하며 살았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품속에 꼭 안고 가고, 집에 둘 때는 문을 꼭꼭 걸어 잠구고

심지어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게 장롱 깊은 곳에 숨겨두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찾아와 속삭입니다.

여보게, 절세미인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한 번 보지않을래?”

 다시 한 번 더 장가들라는 이야기입니다.

열 계집을 마다하지 않는게 남정네들의 속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청년은 솔깃해서 그 여인을 만나보았습니다.

정말 그친구 말 그대로 절세미인이었습니다.

그 미모가 양귀비나 에리자베스테일러 저리가라 할 정도라

그는 그 여인을 4번째 부인으로 맞이했습니다.

4번째 부인은 잠시도 그 청년을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 따라다녔습니다.

그도 그녀를 애지중지하여 잠시도 떨어져 있는 날이 없었읍니다.


(팔공산 은햬사 업경대)

그렇게 살다보니 흘러가는 물이 바다에 이르듯 그 청년도 이제는 노인이 되어 죽음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먼 저승길을 홀로 갈 것을 생각하니 겁이 났습니다.

누군가가 함께 그 저승길을 간다면 좀 들 괴로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응해 주지 않았습니다.

누가 남의 저승길에 함께 가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극장이나 콘서트홀에 가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 적어도 자기 부인들만은 자기를 따라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

그래서 제일 애지중지했던 4번째 부인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4번째 부인은 앙칼지진 소리로

 여태까지 당신에게 시달림을 받은 것만 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저승까지 따라오라고요?

말 같은 소리를 좀 하세요! 그러나, 남들 눈도 있고 하니 묘지까지는 따라가지요.”

그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가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을 저승길까지 동반해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래서 그는 이번에는 3번째 부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누구 못지않게 애지중지 귀여워하고 보살펴 주었으니

내 청을 들어주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부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나보다 더 애지중지했던 네 번째 부인도 당신을 안 따라가는데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까?”하고 쌀쌀맞게 거절했습니다.

그는 더 큰 실망을 안고 이번에는 2번째 부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너 잘 나갈때는 모른체 하더니 이제와서 무슨 그런 시답지 않은 부탁을 하는냐고 차갑게 거절당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첫 번째 부인뿐입니다.

3명의 자기 아내에게 이미 거절을 당한터라 맥이 빠졌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첫 번째 부인에게 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첫 번째 부인은 웃으면서 선뜻 그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당신의 첫 아내이니 당연히 저야 당신을 따라가야죠.

그런데 당신이 여태껏 나를 고생시켜서 몸이 엉망이라,

내가 따라는 가지만 아마도 당신이 나를 업고 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드랍니다.

(불꽃만다라) 

이것은 인생의 비유입니다. 불교경전의 우화는 그래서 재미가 있습니다.

네 번째 부인은 이 육신을 비유한 것입니다.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육신입니다.

 값비싼 보약으로 보양하고, 바디빌딩으로 다듬은  이 육신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길에서는 묘지까지밖에 따라가지 못합니다.

육신은 이 세상에 남겨둘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부인은 재물을 상징합니다. 재물이란 항상 남들이 훔처갈까바 품속에 꼭꼭 숨기고,

집에 둘 때는 장롱 속 깊숙이 숨겨두는 것이 재물입니다.

그러나 이 재물 역시 저승길에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모든 재물은 이승에 두고 가야 합니다.

엽전 닢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저승길입니다.

2번째 부인은 부모·형제를 뜻합니다. 부모 형제도 마찬가지로 저승길에는 함께 가지 못합니다.

 모두 나보다 먼저 떠나거나 뒤에 따라올 사람에 불과합니다.

내가 가는 저승길에 그들이 함께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인은 업을 말합니다.

이 인생의 삶 속에서 몸으로 짓고, 말로 짓고, 생각으로 지은 갖가지 업을 말합니다.

죽음에 이르러 가지고 가는 것은, 당신이 지고 가야 할 것은 바로 이 업입니다.

업이 무거우면 그 저승길도 무겁고 고된 길이 될 것이고,

그 업이 가벼우면 가는 길도 가벼울 것입니다.

이왕 4번씩이나 결혼해 봤으니 내친김에 가는 길이지만

한번더 해 보면 어떠시나요. 강건너 마을에 니르바나라는 이쁜 여자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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