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과 파리스(Palis)의 심판

2018. 1. 28. 22:50경전속의 우화들


(올림푸스의 신들)


연기법과 파리스(Palis)의 심판

 

연기법(緣起法)은 사성제(四聖諦)와 더불어 불교 교리의 핵심이다.

그러나 인과의 법칙을 설하는 연기법은 새롭게 불타가 만들어 낸 것도 아니며,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에 국한된 어떤 법칙만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난해한 법이 아니라 인류 역사와 더불어 늘 존재했던 보편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힌 것에 불과한 것이다.

잡아함경 제299경 연기법경(緣起法經)을 보면 누구 이 연기법을 만들었냐는 어느 비구의 질문에 부처님이 이르시길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법계(法界)에 항상 머물러 있다.

여래는 이 법을 스스로 깨닫고 다 옳게 깨달음을 이룬 뒤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분별하여 연설하고

또 드러내 보이시나니 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지어감이 멸하고....

내지 순수한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라고 했다.


소위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이라 불리는 부처의 이 연기법(緣起法)

불교 경전에 의하지 않더라도 늘 상주(常住)하는 법이기에

동서고금의 신화와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興亡盛衰)만 돌아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제우스의 동상) 

서양의 신화라면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것은 올림푸스(Olympus)신들과 제우스(Zeus)신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로 흡수된 크레타 신화에 따르면, 티탄족 왕인 크로노스는

 자식 중의 한 명이 그를 권좌에서 밀어낼 것이라는 예언을 믿고 자식들이 태어나기만 하면 잡아먹었다.

그러나 아내 레아는 제우스가 태어나자 배내옷에 돌을 싸서 대신 삼키게 하고

 제우스를 크레타의 한 동굴에 숨겨놓았다.

그렇게 기구한 운명을 지고 타고난 제우스가 성장한 후 형제인 헤데스와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아버지인 크로노스 왕을 멸하게 된다. 자신의 권좌가 위협받을까 두려워 저질은 살생이 인()이 되어

자식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과보(果報)를 받는 이것이 바로 살생의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아닌가

 

(제우스와 테티스) 

또 그리스의 고대 서사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호메로스의 대서사

 일리아스(ilias)<파리스의 심판(The judgment of Palis)>이라 불리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우스(Zeus)는 부친 크로노스 왕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준 형제들과 제비뽑기로 권력을 나누어 갖는다.

중국 역사를 빌어 말하자면 천하를 삼분(三分)한 것이다. 그 결과 하데스(Hades)는 지하세계를,

포세이돈(Poseidon)은 바다를 통치하게 하였다. 신들이 머무는 올림푸스 곧 하늘 세계는 제우스가 통치하게 된다.

올림푸스를 차지한 제우스는 벼락이라는 무서운 무기로 무소불위(無所不爲)로 신들의 제왕으로 군림하였다.

(포세이돈)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 했던가. 제우스는 바람둥이로 유명했고 이 때문에 아내 헤라와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여신이나 여인들과 수많은 정사를 가졌으며, 때로는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물의 모습을 취하여 여신들과 여인들을 유혹했다.

예를 들면 헤라를 범할 때는 뻐꾸기로, 레다를 범할 때는 백조로, 그리고 에우로파를 범할 때는 황소로 변신했다.

그런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바람둥이 제우스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신은 모두 취했지만

 유일하게 취하지 못한 한 여신이 있었다. 아름다운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였다.

정의의 여신 테미스가 바다의 님프인 테티스가 낳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되리라고 예언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아버지 크로노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것이 속인들의 마음이지만

그래도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너그럽게(?)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협의 끝에

테티스를 신이 아닌 인간 미르미돈족의 왕인 펠레우스에게 넘겨주게 된다.

(제우스와 하데스 그리고 포세이돈) 

여신과 인간 남자와의 결혼식에는 많은 올림포스의 신들이 초대받았다.

그중에는 테티스와 아름다움을 다투던 제우스의 아내이며 신들의 여왕인 헤라,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그리고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등도 있었다.

그러나 불화와 싸움의 여신 에리스(Eris)만은 초대받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초대받지 못한 에리스는 심술이나 결혼식장에 나타나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새겨진 황금 사과 하나를 던졌다.

여인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말이다.

에리스는 여인들의 속성인 이 말을 이용하여 자신이 초대받지 못한 그것에 대해

앙갚음을 하겠다는 속셈으로 황금사과를 미끼로 이용한 것이다.

황금 사과는 공교롭게도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앞에 떨어졌고,

세 여신은 이 사과가 서로 자기 것이라고 다투기 시작했다.

자기가 모든 여신 중에 최고의 미인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범죄의 뒤에는 여자가 있다는 말과 같이 훗날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될 줄이랴.

    

(제우스상)

결국, 제우스의 중재를 거쳐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심판을 맡게 되었다.

파리스 앞에 선 세 여신은 자기를 선택해 주는 대가로 조건을 제시했다.

헤라는 최고의 권력과 부를 주겠다고 제시했고,

아테나는 어떤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겠다고 제시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아내로 맞게 해주겠다고 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매력적인 선물이었지만 파리스는 그중에서도

아프로디테의 제안에 가장 마음이 끌렸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선물을 선택했고,

당연히 아프로디테가 황금 사과의 주인이 되었다.

권력과 부, 지혜보다는 아름 여인에 대한 본능적인 욕정이 앞섰던 것이다.


아프로디테 누드상/영국대영박물관소장


그 후 아프로디테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황금사과를 받은 대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 헬레네를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삼국지의 간웅 조조가 남의 유부녀를 유난히 선호하듯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소문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로 도망간다.

일설에 따르면 헬레네는 파리스와 사랑에 빠졌다고도 하고,

다른 설에 따르면 파리스를 사랑하지 않았으나 억지로 납치되었다고도 한다.


멀쩡히 아내를 도둑맞았으니 가만히 있을 남편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헬레네의 남편이자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돌려받기 위해

그리스군과 일으킨 전쟁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트로이 전쟁은 두 나라 간의 정치적 야심도 있었겠지만 한마디로 한 여인을 두고 벌린 쟁탈전인 셈이다.

이 전쟁에서 파리스는 아테네의 맹장(猛將)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춰 전사시키는 전과도 올리지만,

자신도 결국 이 전투 중 필록테테스의 활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한 여인에 대한 욕정으로 말미암아,

그것도 남의 부인을 가로챈 그 욕망으로 말미암아 자신도 나라도 파멸로 몰고 간 것이다.

오늘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르내리는 성범죄 사건도 따지고 보면

그리스 신화의 이 <파리스의 심판>의 이야기와 무엇이 다를까.

색욕(色欲)이 그 원인이 되어 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죽하면 <사십이장경 >에서도 거시기가 하나일망정

둘이었다면 천하에 도() 닦을 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원인 없이 일어나는 과보가 있던가. 만들어진 것은 언젠가는 부서지게 되고,

살아 있는 것은 언제가 죽게 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는

인과의 법칙은 불멸의 진리인 것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근기 중생들에게는 악을 멀리하고 선행(善行)을 지어 좋은 과보를 받도록 유도하고,

 상근기들에게는 무명(無明)에서 깨어나 선악까지도 벗어난 영원한 자유의 삶을 누리도록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연기법의 가르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