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이 아니 된들 신선이 아니 된들...

2017. 7. 23. 22:29한담(閑談)


(보타산 보타강사의 관음도)


보살이 아니 된들 신선이 아니 된...

기독교인들은 천국을, 불자들은 극락의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지금 우리의사회는 자본만능주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이 자본만능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사회다.

그 전지전능한 힘(?)의 위력은 이미 우리사회에 날마다 신문이나 매스컴을 도배하고 있는 실정이라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부부사이는 물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권능(?)을 부여하고

인연이 있든 없던 무차별로 사람들에 사기나 폭력 살인까지를 낳게 한다.

악랄하고 못된 인간들을 향해 악귀(惡鬼), 나찰(羅刹)같다는 말을 하지만

이 전지전능한 힘의 위력과 어찌 비교가 되랴.


(보타강사의 나라연 금강)

 

옛날 옛적에 설산(雪山)에서 나무열매에만 의지하면서 수행하던 한 동자 있었다.

어느 날 수행 중에 그토록 고대하던 한 소리

제행무상 (諸行無常) 시생멸법 (是生滅法)이란 말이 바람결에 들려 왔다.

이어지는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고요뿐이었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은 없는데 웬 나찰하나가 절벽 아래에 허리를 쭈그리고 있지 않은가.

설마 저 나찰이 이런 금언(金言)을 말 했겠는가.. 의심이 들었지만

당신이 지금 이 말을 한 것이냐고 나찰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나찰이 답을 하자,

동자는 기뻐하면서 나머지 후 반 게송을 설하기를 청하니,

나찰 은 나는 지금 배가 고파서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나찰이라 신선한 사람의 피와 살만을 먹는다.” 고 하자

동자는 후반 게송 설하여 주면 이 몸을 주겠다고 주저 없이 제안했다.

너무 쉽게 답을 하자 나찰이 되물었다. 어떻게 그 말을 믿겠느냐 하니,

 “나는 수행자로서 빈 말을 하지 않는다.” 라고 확신을 주자,

나찰은 나머지 뒷부분의 게송을 설하여 주었다.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로다.


(금산사 석가모니불)

 

동자는 이 게송을 듣자마자 뛸 듯이 기뻐하면서

게송을 나무 바위 등에 곳곳에 새겨두고는

나찰이 있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나찰은 제석천의 모습으로 변하여 동자의 몸을 받아 안전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청원하기를

"거룩하고 거룩합니다. 다음 생에 성불하시면

저를 제도하여 주십시오." 하고 예배하고 사라졌다.

이 이야기는 <열반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 중 설산동자와 나찰에 관련된 설화다.


(아미산 시방보현불)

 

일요일마다 교회나 사찰을 찾아 성경이나 법어를 경청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성경 몇 구절이나 법어(法語) 몇 귀를 듣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소위 불석신명(不惜身命)하라면

선뜻 그렇게 따를 사람이 백만 명 중 한 명이라도 있겠는가.

눈 씻고 바도 이런 사람은 한 명도 없겠지만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왜 빨리 정신병원에 입원시키지 않느냐고 촛불시위 정도는 아니더라도

온 동네가 스마트폰을 들고 119에 연락하기 바쁠 것이다.


(보타산 보타낙가사)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어 경전에 나오는 부처나 여래나 보살급이 아니더라도

하위 보살 정도는 되어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열심히 수행하여

천상과 지상을 마음대로 오가며 생로병사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불로불사(不老不死) 하는

도교에서 말하는 그런 신선과 같은 영화를 누리고 싶어하지 않는가.


(복건성 무이산)


(천유각)


중국 복건성 무이산에 가보면 산 정상에 천유각(天遊閣)이란 정자가 있고

 그곳에 천궁(天宮)이라는 편액이 붙은 전각에 팽조(彭祖)

그의 아들 팽무(彭武) 팽이(彭夷)라는 3대 신선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무이산(武夷山)은 중국의 오악 중 하나로 꼽히는 화산보다도

더 거대한 바위와 기암으로 알려진 중국 유명한 명소 중 하나인데

그 보다도 우리에게 더 유명한 것은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사족을 못 쓰는 성리학의 집대성자 주희(朱熹)의 사당 무이정사가 있는 곳이다.



(무이정사)



팽조는 성이 전()이고 이름은 갱이다.

중국전설의 오제(五帝) 가운데 고양씨(高陽氏)의 현손(玄孫)이며

육종(陸終)3번째 아들이라고 한다.

일찍이 요임금과 순임금과 하()나라, ()를 거쳐

()나라 말기 주()왕 때 이미 767세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팽조는 800여세를 살았으므로 신선이면서

중국 고대 장수한 자의 대명사로 알려진 사람이다.


 

(팽조)

중국 역사상 확인된 최고(最古)의 왕조는 은(, B.C. 16세기~B.C. 11세기)이지만,

신선전에 따르면 팽조는 그보다 더 오랜

 하(, B.C. 21세기~B.C. 16세기경?) 왕조의 황제의 증손자로서

 은대 말에 이미 7백 살이 넘었지만 마치 소년처럼 젊게 보였다고 한다.

은왕은 팽조의 명성을 듣고 대부(大夫)라는 요직에 추천했지만,

 그는 병을 구실로 궁전을 방문하지 않았다.


(천유각 가는 길) 


그런데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팽조는 수행 끝에 신선이 되었지만 천상계에 오른 신선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지선(地仙 : 지상에서 사는 신선)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하늘에 올라가서 선배 신선들의 심부름이나 할 바에는

 지상의 생활을 즐기는 편이 낫다.” 고 말했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소꼬리보다 닭대가리가 낫다는 것인데.. 각설하고

극락왕생하느니 차라리 지옥에 내려가 지옥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보다는 격이 좀 떨어지지만 어찌하든

하늘에 올라가면 직책을 받아 사람들의 염원을 이루어주는 입장에 서게 되지만,

지상에 있으면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더 좋다는 이야기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네 경로당처럼 천국의 신선도 선후배에 따라급수가 있는 모양이다.


(아미산) 

어느 선사가 그랬던가. “똥밭에 넘어져도 이승이 낫다.”.

팽조 같은 신선도 천상에서 특별하게 유명한 신선이 되기보다는

지상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하물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추구하는 불자들이라면

극락이나 도솔천에서 노니는 보살이 아니 된들 어떻고 신선이 아니 된들 어떠랴.

자유스럽게 산다 것.

끄들림 없이 산다 것.

단지 하나 이 삶에서 유념한다면

<벽암록>에 이르듯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 사야전기현(死也全機現)』 이란 말.


살아가는 것도 오로지 한 마음

죽음이란 것도 오로지 한 마음이라면,

 한 생각 오고 감에 끄들림 없이 이렇게 살 수 있다면

팔팔 심장이 뛰는 지금 바로 여기가 천상이요 극락이 아니겠는가?

... 

열대야 탓인가 늦은 밤에 웬 헛소리만 나오는구나


(금오산 약사암) 

부휴(浮休)선사 (1543~1615) 열반송으로 마음 추스려본다.

七十餘年遊幻海 칠십 년 꿈과 같은 바다에서 놀다가

今朝脫却返初源 오늘 이 몸 벗고 근원으로 돌아가네.

廓然空寂本無物 텅 비어 적적하여 한 물건도 없나니

何有菩提生死根 어찌 깨달음과 나고 죽음이 따로 있겠는가.


( 중복 지난 무더운 늦은 날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