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고민

2016. 11. 26. 16:19한담(閑談)

조조의 고민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두지는 않겠다고 떠벌리든 조조.

북방을 평정하고 기세를 몰아 백만 대군과 수천척의 전함들을 이끌고

단전(丹田)에 힘 팍주고 형주와 강동 정벌에 나섰겠다.


(부소담악에서)

 

전쟁이라면 잔머리 굴리는데 이골이 난 조조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깜도 안 된다고 여기든 촉오연합군이 펼치는 적벽대전에서 완전 쪽박을 차게 된다.

아랫도리 요롱소리 내면서 구사일생으로 화마(火魔)에서 도망쳐 마지막 관문인 화룡도에 도달했것다.

이제 요곳만 지나면 내 아방궁이지 하고 안도의 숨을 돌리는 데

라이벌 유비의 오른팔인 관우장이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빗겨들고 나타나 길을 딱 막고 있지 않은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모든 것이 일장춘몽인가. 시퍼런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보자 눈앞이 아찔하고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동작대에 올라 대교, 소교를 양옆에 거느리고 천하를 주물려고 했든 그 호기는 어디로 가고

어항에서 내 팽겨쳐저 길바닥에서 파닥거리는 붕어 신세가 된 조조.

 

오를 만큼 올라갔고, 누릴 만큼 누린 조조였지만 그 욕심을 누가 꺾어.

일촉즉발 생사의 기로에서도 잔 머리 굴린다. 허긴 지 버릇 개줄 수야 없지.

맞짱 떠버려? 아니지, 이건 맨땅에 머리 박는 꼴이야.

관우가 누군가. 하북에서 날고 긴다는 안량, 문추도 단칼에 날려버린 관우가 아닌가.


(남이섬에서)

 

요런 걸로 꼬시면 어떨까


(강화적석사에서)


(도봉산에서)


(만수산 무량사에서)


(칠갑산 장곡사에서)


목석같은 관우가 넘어갈까.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데 요건 어떨까.

800개의 다이아몬드에 120개의 진주가 박힌 엄청 비싼 건데.. 

(미스월드의 왕관)


그래도 황금보기를 돌같이 여긴다는 관우가 눈길이나 줄까.

 

깃털 빠진 봉황 삼계탕 깜도 안 되는 신세지만

그래도 이랬래 저랬네 해도 천하의 간웅(奸雄)이라 불리는 조조.

더구나 상대가 야차 같은 장비라면 명함도 못 내겠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의리의 사나이 관우가 아닌가.

 

여인의 최대무기는 눈물이라고 했지. 만인지상의 승상인 나 조조의 눈물이라면 좀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래 한번 시도는 해 보아지. 밑져야 본전 아닌가.

관우야, 한번만 봐주라. 세상 사람들이 의리의 사나이라 하면 니라 카드라.

저 해동에 있는 치악산 까치라는 미물도 받은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니...

왕년에 니 옛적에 내게 잡혀왔을 때 내 어찌 너를 대했던가.

모두들 죽여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를 때 나는 꼬불쳐 놓았던 적토마까지 내 주지 않았니.

어쩌다 내 이렇게 되었지만 반갑다고 포옹은 못해 줄망정 끈 떨어진 갓 신세인 이 늙은이 목을 꼭 따야겠어?

 

애처로운 표정으로 눈물 콧물 흘려가며 관우의 의리에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잡고 비벼보지만 관우는 바위 같은 침묵이다.

 웬만하면 눈 찔끔 감고 넘어가 줄 텐데. 제 왜 저러지.

국정감사나 탄핵 같은 뭘 그런 걸 걱정하고 있는 걸까?

조조의 마음 속에 희비의 쌍곡선이 팥죽 끓듯 한다.

 

젠장 전쟁 언제 한두 번 했나.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인데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세상 하직한다면 천하간웅이라고 불리는 나 조조가 아니지. 

잔머리 굴리는 일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조조.

관운장의 청룡언월도 앞에서는 번데기처럼 찌그러진 신세가 되었다.

답이 없네. 답이 없어.

장고(長考)에 들어간 조조 찰나가 억겁처럼 느껴진다.


(소요산 국화축제에서)

....


정유년 새해에는 그저 근심 걱정 없는 무탈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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