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기행(4/5) 금오산 약사암

2017. 5. 13. 15:58국내 명산과 사찰


금오산기행(4/5)  금오산 약사암


@경북 구미시와 김천시, 칠곡군에 걸쳐있는 금오산은 특이한 산세를 자랑한다.

 정상 일대는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쪽은 칼날같은 절벽이 병풍을 이루고 있으며 산세가 가파르다.

정상부는 달이 걸린다는 정상인 현월봉(懸月峯), 약사여래의 전설이 담긴 약사봉과 보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 부근은 하늘로 비상하려는 새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고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 모습 같기도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금오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다.

선산에서 보면 붓끝같이 보이는 금오산의 필봉(筆峰)’ 덕에 선산에는 문장과 학문으로 이름난 사람이 많이 난다고 한다.

칠곡 인동에서 이 산을 보면 귀인이 관을 쓴 것 같아서 귀봉(貴峰)’이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큰 부자와 높은 벼슬아치가 흔한 까닭이 이 때문이라는 게 이곳 사람의 자랑이다.

금릉 개령에서 보면 도적이 짐을 지고 내려오는 상이라 하여 적봉(賊峰)’이라 하는데,

이 때문에 이곳에서 큰 도적이나 민란이 자주 일어났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성주지방에서는 이 산이 음탕한 여인의 모습 같다고 하여 음봉(陰峰)’이라 부르며

성주 기생이 이름난 것도 이러한 산세 탓이라 여긴다.

더욱이 고려시대 문종은 자신의 넷째아들을 출가시켜 이 산에서 수도하게 하였고,

훗날 대각국사로 봉하여 호국불교로 포교와 국정의 자문에 임하도록 했으니 바로 천태종의 개조인 의천이다.











현월봉에서 내려다 본 약사암 전경


























현월봉에서 내려 약사암으로 들어간다.



@약사암 일주문

약사암으로 통하는 "東國第一門(동국제일문)"이란 편액(扁額)이 걸려있는 일주문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양 암벽 사이에 만들어진 계단길로 약사암으로 연결된다.









일주문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삼성각이 있고 그 우측에 약사전이 있다.




삼성각은 중앙에 칠성탱, 왼쪽에 산신, 오른 쪽에 독성을 모신 탱화가 걸려 있다.









약사전


신라 문무왕(文武王)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금오산 동쪽 바위 밑에 움막을 짓고 수도할 때

 선녀가 하루 한끼의 밥을 내려다 주었다고 전하는 암자가 지금의 약사암이다

약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구미 금오산(金烏山) 정상인 현월봉(977m) 맞은편 약사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약사암의 주요 전각들은 근래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본당인 약사전과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가 있는데

창건역사를 보면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창건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다.

1618(광해군 10) 간행된 일선지(一善誌)1799(정조23)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이 절이 고찰이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95(고종 21)영남진지(嶺南鎭誌)에는

약사암에 관해 법당은 8칸으로 성내(城內) 삼리(三里)에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1935년 우상학이 지은 약사암중수기(藥師庵重修記)에는

본래 지리산에 있던 석불 3기 중 1기는 김천(金泉) 황악산 직지사(直指寺) 삼성암(三省庵)에 봉안(奉安)하고,

다른 1구는 성주(星州) 수도산 수도암(修道庵)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보물 제296호인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의 설명문에

금오산 약사암에 있는 석불, 직지사 약사전의 석불과 함께 3형제라 하고

그 중 한 석불이 하품을 하면 다른 두 석불은 따라서 재채기를 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약사전(藥師殿)은 근래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정면 4, 측면 2칸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약사암의 본당이다.

약사전 내부에는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그 좌우로 일광·월광보살이 협시보살로 있다.

 구미 약사암 석조여래좌상은 약사전의 본존불로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2호 지정되어 있다.

이 석조불상은 신라 말 혹은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 되며, 개금이 두텁게 되어 있으나

그 재질은 화강암으로 보인다. 개금하기 전인 1960년대의 사진에 의하면

원만한 상호에 완전한 형태의 석가여래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영남지역의 석불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불상 뒤편에는 후불탱화가 걸려있다.



약사암 석조여래좌상은 화강암 1석으로 조성된 높이 95cm의 중형 석불좌상이다.

개금이 두텁게 되어 있어 원상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나 재질은 화강암으로 짐작되며,

1960년대의 개금하기 전 사진에 의하면 원만한 상호에 완전한 형태의 석가여래상임을 알 수 있다.

크기는 높이 95, 어깨 너비 45, 무릎 폭 67이다. 불신에 비해 불두가 큰 편이고

머리의 나발(螺髮)도 굵직한데 육계(肉髻)가 넓어 머리와 구분이 모호하다.

상호는 방형이며 가늘게 뜬 눈이나 콧망울, 너비로 잡은 입술이 작게 표현되었으나 비교적 원만한 편이고,

백호는 수정을 감입하였다. 통견(通肩)으로 걸친 옷자락은 수직으로 내려오고 있고,

가슴에는 비스듬하게 사선으로 내의를 입었다.



불신의 조각은 다소 평면성을 띠는데, 측면에서 보는 불상의 너비가 좁고 결가부좌한 다리도 폭이 좁아졌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결가부좌한 다리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현재 왼손 위에는 약호(藥壺:약함)이 올려져 있는데 이것은 근래에 올려놓은 것이다.

1960년대의 사진에 의하면 원만한 상호에 완전한 형태의 석가여래상임을 알 수 있다.

약사암 석조여래좌상은 현재 두껍게 개금된 상태인데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살이 오른 얼굴임에도 방형으로 표현되지 않았으며 승각기가 수평이 아닌 사선으로 내려온 점 등은

조성 시기가 조선시대보다 더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면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불일 가능성이 크다.


약사전 앞봉 전경. 산 정상에는 여개의 돌탑이 보인다.








약사전을 내려와 범종각으로 향한다.


<법종각>

1977년에 건립된 약사암의 범종각으로 다리 입구는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다리를 건너가 볼 수가 없었다.















약사전 종각을 벗어나 마애불로 향한다.


~5부에서는 마애불과 오형탑이 포스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