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기행(3/5) 도선굴과 대혜폭포

2017. 5. 6. 18:04국내 명산과 사찰

금오산 기행(3/5)  도선굴과 대혜폭포


해운사 돌 계단을 내려와 등로를 따라 10정도 오르면 대혜폭포를 만나게 된다.

 대혜폭포 좌측은 금오산 정상 현월봉으로 가는 할닥고개가 시작되고 우측으로 도선굴 가는 길이다.


도선굴은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道詵:827898)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이라고 하며,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다.

최인재의 일선지(一善誌)에 근거하면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또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굴 아래 대혈사지 터, 현재 공원 주차장이나 백운재(白雲齋)

또는 경파정(景坡亭)이 있는 곳을 대혜 또는 다혈이라 부르니 대혈이라는 명칭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일선지에 따르면 넓이가 16, 높이가 15,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얽어 만든 집[構屋]이 두 칸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인동(仁同개령(開寧)의 수령과 향민 500~600명이 피난하였는데,

당시 바위틈에 쇠못을 박아 칡이나 등 넝쿨로 이동했던 상황이어서 왜군은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의 통로는 1937년 선산군 구미면에서  개통한 것이며

굴 내부는 길이 7.2m 높이 4.5m 너비 4.8m 정도된다.


도선굴 오르는 길은 절벽 사이에 낸 길이라  좁고 가파르다.

눈비가 내리는 날이라면 바닥길이 미끄러워 산행하기가 힘든 곳이라 사료된다. 








도선굴을 오르면서 바라 본 해운사다. 숲에 둘러쌓여 있어 전경을 볼 수 없다.




도선굴 초입이다.








굴이라 하기에 좁은 곳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입구가 굉장히 넓다.



@고려 말에 길재(吉再:13531419)선생도 이 해운사의 절과

절 뒤에 있는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을 익혔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도선굴이 깊이 31, 넓이가 33, 높이 15척으로

세상에 전하기로 도선국사가 수행하던 곳이라고 적혀있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고향인 선산군 해평면 금오산으로 숨어들어 훗날 영남학파의 주춧돌이 되었다.





대혈이라는 불리만큼 천장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할닥고개를 오르면서 망원으로 잡아 본 도선굴 모습.


도선굴을 내려오면서 바라 본 해운사. 숲에 가려 지장보궁 지붕만 보인다.



도선굴을 하산하면서 다시 바라본 풍경.






 

도선굴을 내려와 대혜폭포를 들려서 할닥고개로 향한다.


가물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수량이 적어 폭포의 장엄한 위엄을 느낄 수 없지만 푸른 이끼가 고풍 스럽다.


대혜폭포

해발 400m 지점에 위치한 수직 27m 높이의 이 폭포는 다혜폭포 또는 다혜비폭이라하며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금폭포 라는 별명도 있다.

금오산 정산부근의 분지에서 발원하여 긴 계곡을 이루어

이 고장 관계의 유일한 수자원이 되니 큰 은혜의 골이라 하여 다혜골이라 했고

주변 경관은 경북 8경 또는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또한 물이 떨어지는 일대의 움푹패인 연못이 있어 옥담이라 하니

선녀들이 폭포의 물보라 가 이는 날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주변 경관과 옥같이 맑은 물에 탐하여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할닥고개를 오르면서 만난 나무장승.


금오산 할닥고개는 사진과 같이 나무데크가 연속된다.




할닥고개를 오르면서 바라 본 도선굴 모습









도선굴이 있는 주변 산풍경


저 아래  구미시가지와 금오저수지가 보인다.















정상이 가까워지는지 된비알 길이 거의 끝나고 흙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4부로 계속. 4부에서는 금오산의 백미 약사암이 포스팅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