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락(五欲樂)과 깔파타루(kalpataru)나무

2016. 12. 3. 20:31붓다의 향기

오욕락(五欲樂)과 깔파타루(kalpataru)나무


사람의 본성은 부처의 마음이라고 한다. 참되고 거짓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그 순수하고 참된 마음이 더렵혀져 아귀가 되어 간다.

무엇 때문에 그 선하고 참된 마음이 더럽혀질까?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는 것은 바로 오욕락(五欲樂) 때문이다.

오욕락이라는 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 대한 탐욕과 향락으로 일어나는

욕심. 재물(財物), (),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등을 일컫는다.



(불암산에서)


이런 오욕락(五慾樂)은 두려움, 근심, 괴로움의 인연이기 때문에 오욕락에 빠지는 것은

 마치 모래톱에 빠지는 것과 같아서 한번 빠지면 다시 헤쳐 나오기 어렵다.

그럼으로 오욕락의 허망함과 무상함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구하는 사람의 삶이란

깔파타루(kalpataru) 나무 밑에 앉아 있는 사람과 같다고 경전은 말한다.

깔파타루라는 이 나무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천국에 있다는 나무인데

이 나무 밑에 앉아 있기만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는 나무다.


(도갑사 팽나무) 

한 여행자가 있었다. 그는 뙤약볕에 오랫동안 긴긴 자갈밭을 걸었으므로 여간 지치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숲을 발견하고는 그 숲에서 제일 큰 나무 밑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면서 무심코 이렇게 생각했다.

잠자기에 편안한 침대가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강화백련사에서)


그는 지금 자기 자신이 깔파타루라는 천국의 나무 밑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그의 마음에 떠오르자 곧 그의 옆에는 부지불식간에 멋진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지친 마음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그 멋진 침대 위에 큰 댓자로 누어 또 이렇게 생각했다.

젊고 예쁜 여자가 와서 허리를 주물러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곧 그 옆에는 예쁜 여자가 나타나서 그의 허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는 아주 행복했다.


(송성가무쇼에서)


그는 배가 고팠다. 그래서 또 이렇게 생각했다.

편안한 침대와 어여쁜 여자도 있는데, 맛있는 음식만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곧 바로 그의 앞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그는 그 음식을 배불리 먹은 다음 매우 흡족해 하며 다시 침대에 누었다.

 

그는 하루 종일 일어났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글이글 타는 뙤약볕 속에서 그 긴 자갈밭을 지나 다행히 이 숲속에서 이런 행운을 얻었는데

행여 호랑이라도 만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집채만 한 호랑이가 나타나서 그의 목을 물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그는 목숨을 잃었다.



(칠갑산에서)


이것이 어리석은 인간이 찾는 오욕락의 종착역이요, 삶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찾고, 기도원을 찾아 명상 수련을 하지만

진정 오욕락의 그 허망함과 무상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설령 운 좋게도 그것들을 성취 하였더라도

그것들 뒤에는 호랑이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깔파타루의 나무아래 행운을 누렸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이 나그네와 무엇이 다를까.



(북한산 까마귀)


이 호랑이의 정체는 무엇인가? 원수의 칼날이요, 병의 고통과 늙음에서 오는 허무와 고독,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별(死別), 비명횡사가 아니면

미처 행복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전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죽음의 저승사자일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상 살아있는 호랑이를 만나는 것보다 몇 천 배 더 무섭고 끔찍한 일이 아니겠는가.



(원주용화사 나라연금강)


그럼으로 <대지도론>에 이르기를

슬프다. 중생은 항상 오욕의 번뇌를 겪으면서도 그것을 찾는 데 그칠 줄을 모르는구나.

오욕을 얻으면 종국에 불에 댄 딱지와 같고, 오욕의 무익(無益)함은 개가 횃불을 핥는 것과 같고,

오욕으로 다툼은 까마귀가 고기를 다투는 것과 같고,

오욕이 사람을 애태우는 것은 바람을 거슬러 횃불을 잡는 것과 같고,

오욕이 사람을 해()하는 것은 독사를 밟는 것과 같고,

오욕이 진실이 아님은 꿈속에서 얻는 것과 같고, 오욕이 오래지 아니함은 찰나를 빌림과 같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어 오욕에 탐착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버리지 않으면

뒷세상에 한없는 고통을 받는다.라고 했다.


(무진암 예적금강탱)


옛 고승이나 선사들도 말한다.

모든 욕망의 즐거움은 거짓되고, 실다움이 없으며, 견고함이 없으며,

즐거움이 적고 괴로움이 많은 것이다. 무서운 악마가 바로 이 욕망이니,

이는 모든 공덕을 파괴하고, 항상 중생들을 포박해서 해치기 때문에

부처님도, 용수도 이런 갖가지 비유를 경전에 나열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보타산 보타강사에서)


오욕락은 불타의 중요 가르침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모든 종교의 가르침에서도,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서도 상통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물질만능주의를 착실하게 신봉하는 오늘날 중생들의 가치관으로 본다면

허망한 이야기내지 그저 좋은 소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관심사는 부처가 무엇이며, 예수가 무엇이냐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고 한 세상 즐기다가 가는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지금 이 시대에 얼마나 되겠는가.



(도솔암에서)


그러나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새벽 홀연히 깨어나내가 누구지?하는 생각을 느껴보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의구심을 쫓아 궁구(窮究)해 본 적은 없는가.

그렇다면 그 의구심에 의구심을 더하다 보면 그 답은

결국 죽고 사는 것이 마치 구름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고,

<>라고 믿고 있던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허망한 존재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녕 그 허망한 몸을 가지고

허망한 마음이 그려내는 헛된 망상들을 계속 아등바등 쫓아다녀야 할까.

 


(화청지에서)


幻來從幻去 (환래종환거)

來去幻中人 (내거환중인)

幻中非幻者 (환중비환자)

是我本來身 (시아본래신)


괄허(括虛)선사 (1720-1789) 열반송


(청두가무쇼에서)


환에서 와서 환을 쫓아가나니

오고감이 환 가운데 사람이로다

환 가운데 환 아닌 것이

나의 본래 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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