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보살의 성지 보타낙가산 기행 제4부) 남해관음

2016. 9. 23. 22:32해외여행

(관음보살의 성지 보타낙가산 기행 제4) 남해관음

 

석가모니불의 성지 인도 룸비니를 시발점으로 앙코르와트 등 많은 불교성지가 동남아시아권에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중국의 4대 불교성지가

한국불자들의 순례대상으로 으뜸이 된다.

중국이 지정한 4대 불교성지는 사천성 성도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보현보살의 상주처인 아미산(峨眉山, 해발 3,077m), 

 산서성 오대현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눈 문수보살의 상주처인 오대산(五台山, 3,058m),

안휘성 지주시에 위치하고 있는 지장보살의 상주처로서 구화산(九华山, 1,341m),

절강성 주산군도에 위치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상주처로서 보타산(普陀山, 292m)이다

보타산이 제일 낮은 것은 내륙의 산이 아니라 섬이기 때문이다.




보타낙가산은 관세음보살이 거주하는 산으로 범어 포탈라카(potalaka)를 음역한 것이다.

인도에서 관세음보살 신앙이 형성된 시기는 1세기말 무렵이다.

현세 이익을 주는 보살로서 영향력이 대단하여 인도는 물론 중국과 한국일본티베트에서 널리 신봉하였으며

그런 까닭에 관세음보살의 거주지는 곳곳에 등장한다.

인도에서는 남쪽 끝의 마라야산 동쪽 구릉지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엄경』「입법계품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락가산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바다에 접한 아름다운 곳이라 하였다.

중국의 승려인 현장도 인도에 다녀와서 스리랑카로 가는 바닷길 가까이에 이 산이 있다고 기록한 바 있다.



중국의 보타산은 보타낙가산의 준말로, 보타산과 낙가산 두 개의 섬 이름에서 비롯된다

 범어 potalaka가 중국어의 음사(音寫)로는 보타락가(補陀洛伽), 포다(逋多), 포다라(逋多羅), 보달낙가(補怛洛迦),

포달낙가(布呾洛迦), 보단낙가(補但洛迦), 보타락(補陀落) 등 여러 기록이 있다.

이를 번역하면 광명산(光明山), 해도산(海島山), 소화수산(小花樹山) 또는 백화수산(白花樹山)이 된다.


(남해관음의 패루 앞에서 향공양을 올리는 참배객들. 우리내 참배형식과는 많이 다르다. 내국인인듯 한다.)


불경에서는 백화산, 광명산이라고도 불리며 남해 보타산이라고도 부른다.

보타산은 주산군도 대소 1390여개의 섬 중의 하나로, 절강성 영파시 동쪽 바다 가운데에 위치하며

남북길이 8.6km, 동서폭0.98~4.3km, 해안선 길이는 33km, 총면적12.76,

최고점은 불정산 보살정으로 해발 291.3m이다.

보타산은 <중국 제1 불교 왕국>, <해천 불교 왕국>, <해상 선상>, <남해 불교 왕국>,

<해상 봉래절>등 많은 이명으로 불리어진다. 중국에는 보타사라 불리는 곳이 2곳이 있다.

하나는 복건성 하문(샤면)의 남보타사다.

절강성 보타낙가산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보타사라 칭한다. 남보타사는 천수철불관음상이 유명하다.

(본방 복건성기행(7/7)하문 남보타사참조)

다른 하나는 중국의 원 관음의 성지로 일컫는 보타산이다. 이곳 보타산의 남해관음대불은 해조관음의 대명사로 불린다.



@관음보살의 상주처이며 해조관음의 대명사로 불리는 보타산의 남해관음대불은 1997년에 세워졌으며,

관세음보살의 높이는 18m, 연꽃 받침대 높이는 2m, 3층 받침대는 13m 등 총 33m에 이른다.

이 남해관음대불은 금동으로 제작됐으며, 무게는 70톤에 육박하며 안면 부분은 1.2톤인데,

여기에 순금 6.5kg이 소요됐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관음 동상이며 해천불국(海天佛国)의 상징이다.



관세음보살을 신앙하는 관음신앙이 발생한 인도에서는 3~7세기 경에 북부에서 가장 성하였지만

 인도에서 서역(西域)을 거쳐 1세기 무렵 중국에 전해진 관음신앙은

3~5세기 무렵에 한역된 정토계 경전들에 근거하여 6세기경에 모든 불교사원에서 관음상을 모실 정도로 널리 퍼졌다.

설화로는 이보단 훨씬 이전 후한 명제 왕명 7(서기 64)부터 관음신앙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하서왕 저거봉손이 미파륵 보살의 권유에 의하여 보문품을 외우고 그 질병이 나으면서

그 공덕은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부터

축법호가 관음경의 전신인 보문품을 번역하여 관음신앙이 싹트기 시작 할 때(서기 480)

관선지가 옥중에서 관음의 전신을 친견하고 이튿날 방면되어 감옥에서 보았던 관세음을 그림으로 그려 모시고

신앙하게 되었다 이야기도 있다.




또한 <고승전>에도 배도(杯度)는 관음신앙으로 질병을 났고,

법순(法純)은 항해의 안전을 위하여, 백법교(帛法橋)스님은 물음을 있기 위하여 관음신앙을 하였다고 적혀 있다.

양무제(502~551)는 독실한 불자로서 절을 많이 짓고 탑도 많이 세워 48년간이나 대작불사를 하였는데

인도에서 건너 온 달마대사가 와서 문답하였으나 전혀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뒤에 보지공(室誌公)이 와서 물으니달마대사는 관음의 후신이다. 하여

먼저 친히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망처 치씨의 천도를 위하여서

관음 참예문(觀音參禮文)을 지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보아 보타산에 혜악스님이 관음불을 모시기 이전부터

관음신앙은 이미 중국 전역뿐만 아니라 보타산에도 보급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속리산 법주사의 원통보전에 보면

 普陀山上瑠璃界(보타산상유리계) 正法明王觀自在(정법명왕관자제)라는 주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정법명왕 여래이신 관세음보살이 보타산 정상 유리알같은 맑은 세계에 머물고 있다는 의미다.

정법명왕여래(正法明王如來)는 관세음보살이 과거세에 이미 성불했을 때의 이름이다.

이는 <관음삼매경>, <천수다라니경>, <무량수경> 등에도 기술되어 있으며

이 여래는 과거 전생에 석가모니불과 아미타여래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관음보살은 범어로 Avalokitesvara .

이를 번역하여 관세음(觀世音), 광세음(光世音), 관세자재(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관음(觀音)이라 한다.

밀호(密號)로는 정법금강(正法金剛) 또는 청정금강(淸淨金剛)이라고도 한다.



대자대비(大慈大悲)를 근본 서원으로 하는 보살의 이름으로 중생이 그 이름을 외우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한다고 한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보면 이 보살은 극락정토에서 아미타불의 협시(脇侍)로서 부처의 교화를 돕고 있다고 한다.

관세음(觀世音)은 세간의 음성을 관()한다는 뜻이고,

관자재(觀自在)라 함은 지혜로 관조(觀照)함으로 자재한 묘과(妙果)를 얻는다는 뜻이다.

또한 중생에게 온갖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無畏心)을 베푼다는 뜻으로 시무외자(時無畏者),

자비를 위주로 하는 뜻으로 대비성자(大悲聖者),

세상을 구제함으로 구세대사(救世大師) 라 한다.



이 보살이 세상을 교화함에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체로 나타난다.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하며 수능엄경에서는 32응신(應身),

법화경에서는 삼십삼신(三十三身)응신(應身)이 있다고 한다.

왼손에 든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나타내며,

그꽃이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성불한 것을 뜻하고

 그 봉우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나타낸다.



그 형상을 달리 함에 따라 육관음(六觀音: , 千手, 馬頭, 十一面, 準提, 如意輪) 등으로 나누는데

그 중 성관음(聖觀音)이 본신이고, 기타의 것은 보문시현의 변화신(變化身)이다.

통상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천수관음(千手觀音), 십일면관음, 32관음은 모두 변화신이다.

이 중에서 천수관음을 불상을 만들 때는 조형상 어려움이 따라 천개의 손을 42개로 만드는데 이를 42관음이라고 한다.

보타산의 관음불은 관음불의 성지답게 다향한 형태의 관음불이 조성되어 있다.



@관음주처(觀音住處) 신앙은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기초하고 있다.

선재동자(善財童子)28번째로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데, 그가 곧 관음이다.

관음보살은 남방 해상의 광명산(光明山), 곧 보타낙가산에서 상주설법하고 있었는데,

선재동자가 묻는 보살도(菩薩道)에 대해, 일체 중생들이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서원을 세워

대비법문광명행(大悲法門光明行)을 성취했다고 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관세음보살은 보타산에서 <십일면경>을 설했다고 한다.




관음의 주처에 관해서는 경전집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육십화엄(六十華嚴)에서는 광명산으로, 팔십화엄(八十華嚴)에서는 보타낙가산으로 되어 있는데,

팔십화엄은 의상의 열반(서기 702)에 가까운 699년에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646년에 쓰여진 현장(玄奘)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포달낙가산(布達 洛伽山) 산꼭대기에 천궁(天宮)이 있어서

관자재보살이 왕래하며 뵙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나타나 위유(慰喩)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타낙가산은 소백화산(小白花山)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삼국유사에서는 서역의 보타낙가산은 백의대사(白衣大士),

곧 관음보살이 머무는 곳이라 하여 이곳에서는 <소백화>라고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보타산 최초의 관음을 모신 불긍거관음원에는 백의관음이 모셔져 있다. 



@ 관음은 감로병을 들고 있는 데 이 감로병에는 감로수가 들어 있다.

감로수는 불사(不死)를 뜻한다. 영원히 죽음이 없는 불사의 물로써 중생의 열뇌(熱惱)를 깨끗이 씻어주고

사악한 기운을 서기(瑞氣)로 바꾼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관음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보타산의 남해관음불은 감로병 대신 법륜(法輪)을 들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3대 해조관음처로 불리는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 강화 보문사에 있는 해조관음불상과는

그 지물(持物)이 다르다.



@또한, 관음의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처는 아미타불이다.

관음은 아미타불을 본사(本師)로 삼고 항상 모신다고 하였으므로 이를 조형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남해관음 상의 보관에도 아미타부처상이 있는 것은 우리의 관음불상과 동일하다.


남해관음상 아래 층에는 이러한 유리관으로 된 둠안에 관음보살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둠으로 된 유리관 안은 습기 때문인지 무척 흐렸다.



1층 벽은 관음의 보타산 도래와 관련된 내용으로 한 이런 목각상으로 조성되어있다.

















































남해관음 아래 1층에 유리관에 전시된 관음불상들




남해관음상 아래의 이 둠의 역활의 덤으로 더위에 지친 참배객들에게 더위를 식혀주고 쉬어가는 아쉬람이 되었다.


남해관음에서 바라본 보타낙가산




남해관음에서 보타낙가산을 바라보니 바다위에 누워있는 관음의 모습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내려다 본 남해관음의 패루 앞 광장의 풍경


남해관음상 옆 전각


남해관음의 대종


~제5부 보타산제일사찰 보제사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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