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서호불교의 효시 항저우의 고찰 영은사(1/2)

2016. 9. 1. 21:44해외여행

 17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서호불교의 효시 항저우의 고찰 영은사(1/2)


@항저우의 역사를 보면 2,200년 전 진나라 때 건립되었으며, 중국의 7개의 고도(古都) 중 하나에 속한다.

항저우는 7000년 전의 중국 신석기시대에는 양저문화(良渚文化;기원전 3300~2000)의 발상지이기도 하며,

벼농사 유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인 신석기 문명의 대표유적인

하모도 문화(河姆渡 文化: 기원 전 5000 ~ 4500) 유적이 있는 도시다.

@이런 역사를 지닌 항저우의 북서쪽에 자리 잡은 영은사(靈隱寺)

326년 동진(東晉) 시대에 지어진 사찰로 중국 선종의 10대 고찰 중의 하나에 속한다.




@동진(東晉, 317~ 420)은 중국의 서진(西晉) 왕조가 유연(劉淵)의 전조(前趙)에게 멸망한 후,

사마예(司馬睿)에 의해 강남(江南)에 세워진 진()의 망명 왕조이다. 서진과 구별하여 동진이라고 부른다.

영은사가 창건된 시기는 바로 동진의 위세가 제일 높은 때에 해당되며

동진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교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준 나라로서

384년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마라난타도 동진출신이다.



(영은사 일주문 옆에 삼축공몽(三竺空濛)이란 편액을 단 패방이 있는데 그 용처를 알 수 없다.

공몽이란 말은 이슬비나 안개 따위로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매우 흐릿하다는  의미인데...)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인도의 승려인 혜리(慧理)가 이곳에 왔다가

산의 기세가 매우 아름다워 仙靈所陰(선령소음: 신선의 영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는 의미)라고 감탄하여

이 사찰을 건립했다고 한다.



@혜리스님에 대한 자료가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서력기원 전후였으며,

처음 전해진 불교는 인도 불교가 아닌 서역 불교였다는 점과

후한(後漢: 25~220) 말인 2세기 후반부터는 서역과 인도에서 많은 스님들이 중국으로 들어와

역경사업에 동참하여 불경(佛經)이 한역(漢譯)되기 시작하였는데

혜리스님도 이 시대에 인도에서 건너 온한 분이 아닌가 사료된다.



(영은사 일주문 앞에는 지척서천이란 글이 쓰여진 황색벽이 있다.

서천이 바로 코 앞이라는 의미인데...)



(영은선종이란 비, 입구쪽에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항저우(항주)에서 서호불교의 효시(嚆矢)이자

 역사가 가장 오래된 사찰인 영은사는 10세기 오대십국(五代十國) 중의 하나인 오()나라 때 제일 크게 융성했으며,

당시에는 72, 18, 9()의 전각이 있었고 수행하는 승려도 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영은사의 일주문에 걸린 현재의 현판은 중국공산당 제3주석으로 지낸 강택민의 글씨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대부분 일주문 편액을 <ㅇㅇㅇㅇ>라고 표기하지만

중국의 사찰은 거의가 <ㅇㅇ>이라는 표기가 없다



 

영은사기행은 편의상 2부로 나누어 포스팅 한다.

1부에서는 비래봉 석굴을 중심으로, 2부에서는 영은사의 전각 위주로 포스팅한다.





<비래봉의 석불>


@석굴의 원조는 인도에서 시작한다.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된 이래 불교석굴은 중요한 수행처이자 기도처였다.

본래 인도의 석굴은 고온다습한 기후를 피해 최적의 수행환경을 찾기 위해 비롯되었다.

인도에서는 기원전 2세기 경 부터 인공적인 석굴사원을 개착하기 시작했고,

이는 서역을 거쳐 중국에까지 이어졌다. 물론 인도 석굴은 중국에 들어와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상품상생인을 한 아미타3존불상, 수인의 위치가 무릎 위가 아니고 가슴위다.)

  

@3세기경에 시작된 중국석굴은 5~8세기경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중국의 석굴은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형태로 분포 되어있다.

중국최초의 석굴로 알려진 서쪽의 둔황(敦煌)석굴에서 출발해 란저우(蘭州)의 빙링스(炳靈寺)석굴,

톈수이(天水)의 마이지산(麥積山)석굴, 산시(山西)의 윈강(雲岡)석굴과 텐롱산(天龍山)석굴,

허난(河南)의 룽먼(龍門)석굴과 공센(鞏縣)석굴, 스촨의 다주(大足)석굴 등의 유명한 석굴뿐 만이 아니라

무수한 중형 소형의 석굴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영은사의 비래봉 석굴도 이들과는 규모가 적지만 그 중 하나에 속한다.

  


  

@영은사 입구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입구 좌측에 비래봉(飛來峰)의 석굴과 암벽에 새겨진 조각들이다.

비래봉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높이가 209m, 둘레 800m 정도의 바위 봉우리다.

중국 절강성 안희성에 위치한 황산의 명물 중에도 비래석이 있듯

영은사의 이 비래봉은 인도에서부터 날아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항저우 서북쪽에 위치한 이 비래봉 암벽에는 오(),(), ()에 이르는 시기동안

115개의 작은 굴속에 334분의 불보살이 조각되어 있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고 마모되어 그 수가 200여기 정도만 완벽하지 않지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석상들은 석굴이란 명칭 대신 <()>으로 표기되어 있는 석굴 벽에 조성되어 있다.

이 석굴조각들은 강남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석굴예술로 꼽힌다.

다만 일부는 문화혁명 탓인지, 종교상 이념이나 관리부실 탓인지는 알 수 없어나

낙양의 용문석굴과 같이 훼손과 마모가 심하여 다소 안스러운 느낌이 든다.


@옥유동은 일명 편폭동(박쥐편. 복 박쥐, 살무사)

또는 적차동(:고기거물에 물고기 매달릴 적. : 물갈라질 차)에는

6감실(龕室)18아라한과 선종 6조사들을 포함하여 모두 39불보살를 조성해 놓았다.

이는 모두 북송(960~1127)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몇개의 동굴을 요약하면..



@청림동(靑林洞): 금광동(金光洞)으로도 불리며

동굴 입구는 호랑이의 입(虎嘴:호취)을 닮았다 하여 속칭 노호동(老虎洞)으로 불린다.

동굴 안에는 서방삼불로 불리는 미륵, 관음 대세지보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5대 오월국시대(公元951)에 조성된 것이고,

이 외에 116불상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북송(北宋:960~1127) 원년에 조성된 것이다. 

 


@용홍동(龍泓洞) 일명 관음동, 통천동(通天洞)이라 불리며 27개 감실에 43불이 모셔졌다.

원대에 조성 된 것이며 일부는 북송 때로 조성되었다.

보장신(寶藏神) 금강수보리. 수월관음, 미륵 등이 조각되어 있다.









원나라 때 조성된 아미타불

선종 육조 상





석굴 밖에 세워진 <이공지탑>. 영은사 창건자인 혜리스님을 기리는 탑




(냉천계)

@냉천계(冷泉溪)는 일명 북간(北澗: 계곡 간) 또는 석문간(石門澗)이라 불리는 계곡이다.

비래봉에서 내천정자까지 일대를 말하며, 간수(澗水)의 물이 고여 유리알처럼 맑아서 붙인 이름이다.

여기서는 37감실에 72불이 조성되어 있다. 원대(1260~1368)에 조성되었다.

냉천계는 특히 비가 올 때면 사원 전체가 안개에 쌓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하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 무려 40도에 가까운 무더운 날씨라 기대도 하지도 못했다.

계곡 옆의 바위에는 바위마다 불상 조각들이 있다.



냉천계 옆에 세워진 정자 편액은 춘종정(春淙亭: 물소리 종)으로 되어 있다.






석가모니불


포대미륵화상. 조성시기는 원대. 중국은 포대화상을 미륵불로 여기고 숭상한다.






보합을 든 약사여래






비단 잉어들이 노리는 냉천계. 


포대화상







<다보천왕(多寶天王)>

다보여래(多寶如來)를 중국불교에서는 다보천왕으로 불리는 모양이다.

다보여래는 동방보정세계(東方寶淨世界)의 교주로 보살로 있을 때

내가 성불하여 멸도(滅度)한 뒤에 시방세계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서는

나의 보탑(寶塔)이 솟아나와 그 설법을 증명하리라고 서원한 부처님이다.

과연 석존이 영산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에 땅속에서 다보탑이 솟아나고

그 탑 가운데에서 소리를 지르며 석존의 설법이 참이라고 증명하였다고 한다.




영은사 동경당

<()>

@우리나라에서는 ()은 불보살(佛菩薩)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는 장엄용 불구(佛具)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으로

중생을 지휘하고 마군(魔軍)을 굴복시키는 상징물로서도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당()은 불전 앞에 깃발 모양의 번()을 달아두는 당간과 같은 종류이지만,

당이라고 하면 대체로 불전 안에 두는 소형의 당간을 지칭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당()은 간두(竿頭)의 모양에 따라 당의 이름이 달라진다.

용머리 모양을 취한 것은 용두당(龍頭幢), 상부에 여의주를 장식하면 여의당(如意幢) 또는 마니당(摩尼幢),

사람의 머리 모양이면 인두당(人頭幢)이라고 부르게 된다.

영은사의 당()은 우리나라의 당과는 현저하게 다르고

 형상도 석탑형식을 갖추고 있어 다소 이색적이다.


영은사 량경당


영은사전각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영은사 전경 조감도

이 조감도 옆에는 중국어, 영어, 일어, 그리고 한국어로 사찰안내가 설명되어 있다.


<영은사의 한글판 안내도>


~2부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