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여행의 백미 송성가무쇼(1/2)

2016. 8. 27. 16:44해외여행

  항저우 여행의 백미 송성가무쇼(1/2)





여름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이번 중국 여행은 출발지인 인천공항에서부터 혼잡스럽더니

첫 기착지인 상하이 푸동공황을 빠져 나오는 데도 밀려드는 여행객들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간신히 짐을 챙기고 공항을 빠져나와 전날 광저우에서부터 올라온 가족과 합류하여 바로 항저우로 이동했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생전처음 중국 내륙을 승용차를 이용한 우리가족들만의 개인 여행이었다.

상하이에서 항저우까지는 suv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속도로를 그것도 두 가족의 짐으로 가득 찬 비좁은 공간에

운전을 맡은 큰 사위를 포함하여 모두 6명이 곤역 아닌 곤역을 치렀지만

다행히도 어린 손주들이 어른스럽게 참아주어 그나마 걱정을 들어 주었다.




항저우에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식당을 찾았지만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다행히 그럴듯하게 보이는 곳이 있어 들어갔더니 타이랜드식당이었다. 타이랜드식당은 생전 처음이었다.

나오는 음식은 모두 남방 특유의 향을 지니고 있어 내 기호에는 맞지 않았지만 타이랜드산 맥주는 마실만 했다.








식사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카운터 옆쪽에 전시된 옛타이랜드 왕족들과 귀족계급이 사용한 왕관들이 눈에 띄었다.

당연히 모조품들이었겠지만 정말 화려했다. 우리의 신라금관도 유명하지만 그 섬세함 또한 대단했다.

쉬이 볼 수 없는 것들이라 눈여겨보다가 황금빛에 어우러진 코발트색 보석들이 박힌 왕관들을 보니

지난번 서산 무량사에서 본 다문천왕의 얼굴색이 왜 푸른색인지, 그리고 그 색상이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궁금했는데

이곳에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사천상은 어느 절에 가 보아도

형상과 보관(寶冠)은 달라도 얼굴색은 황색이기 때문이다.

 

  

타이랜드는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살아남은 유일한 동남아의 독립국가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만큼, 힌두교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와트라 불리는 사찰이 무려 27천개에 달하는 대단한 불교 국가다.







(송성가무쇼를 총괄하는 센터건물이다. 공연장은 뒤편에 있다.)



중국인들이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항주와 소주가 있다(上有天堂下有苏杭)고 자랑하는

항저우(한국어: 항주, 중국어: 杭州)는 장강 델타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저장성의 성도이다.

상하이에서 180 km 떨어져 있으며, 상하이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고속열차로는 30분 거리에 있지만

자동차로 움직인다면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송성은 중국 7대 고도(古都) 중 하나로 남송시대의 수도인 항주(杭州)를 의미하며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곳으로 7세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의 종점이기도 하다.

항저우에는 수()나라 때부터 성을 쌓기 했는데 남송의 수도였기에 남송의 성()이라고 하여 송성(宋城)이라고 불린다.

송성(중국어: 宋城)은 남송(南宋) 시대의 성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으로

저장성 항저우의 새로운 명물 테마파크이며 서호와 송성가무쇼로서 우리에게 더 알려진 도시다.

항저우(항주)는 중국의 성공적인 관광지 개발의 모델로 평가되며, 단지 건물만 복원한데 그치지 않고,

남송 때의 각종 문화, 복식이나 의상 등과 풍습 등을 재현한 항주의 대표적인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다.


(공연장 가는 길목에 늘어선 상점들과 광고판 역시 화려하다.)  

  

항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진대(秦代 : BC 221~206)에는 이곳에 처음 첸탕 현[錢塘縣]이 들어섰으나,

양쯔 강 삼각주에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4~5세기에는 크게 개발되지 못했으나

 609년 대운하의 남쪽 부분에 해당하는 장난[江南] 운하가 완성되자 항저우는 그 지역의 으뜸가는 중심지가 되었다.


  

오대(五代 : 907~960)에는 오월(吳越)의 수도였다. 중국 북부가 여진족(女眞族)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당시 중국 남부만 차지하고 있던 남송(南宋)은 항저우(당시 이름은 임안[臨安])를 수도로 삼았다.

그 무렵의 항저우는 상업 중심지였다. 13세기말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이곳을 방문했다.

그는 항저우를 킨사이(Kinsai : 또는 Quinsay)라고 불렀는데

이는 수도를 의미하는 중국어 징스[京師]가 와전된 것이다.

당시 인구는 100~15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항저우는 비록 남송(1126~1279)의 수도로서 누렸던 번영을

다시 재현하지는 못했으나 그 중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공연장 앞 광장) 


 

<송성가무쇼>4부작으로 공연된다.

@1부는 <항주의 빛>으로 5000년 역사를 거슬러 항주의 전설과 송나라 황제의 생일잔치 행사를 테마로 펼쳐진다.

 2부는 <금과 철마>로 금나라 침공에 대한 악비장군의 무용담으로 전개되고

3부는 (아름다운 서호, 아름다운전설)로 중국의 4대 민간전설 중 하나로 꼽히는

축영대와 양산백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서호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또 백사전(白蛇傳)에 나오는 뱀과 사공 허선에 대한 이야기를 테마로 하고 있다.

4부는 <세계는 여기로 모인다>라는 주제로 세계 속의 내일을 발돋움 하는 항주의 발전상과 미래를 그렸다.


(우리나라 사찰입구는 으레 일주문을 세우듯 중국은 명승지나 특별한 지역은 패루(牌樓)를 세우고

기둥을 세워 이를 경계로 삼아 기념한다. 이 기둥을 화표(華表)라고 하는데 주로 용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심천의 야외쇼, 상해의 쇼, 항주의 송성가무쇼(宋城千古情)

중국인들이 죽기 전에 가 보아야할 3대 쇼라고 자랑하는 쇼다.

송성가무쇼는 상업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일본을 주제로 한 1막과 한국 관광객들을 위해 한국의 장고춤과 상모돌리기도 가미되어 있다.



공연시간이 아직 남아 주변을 돌아 보았다.








인위적인 동굴까지 만들어 놓았다.























송성가무쇼 공연장은 두개의 별원과 소극장 형태로 여러개로 나우워져 있고 공연도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





송성가무쇼 공연장 주변에는 수로가 있고 이를 연결하는 여러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

위에서 보인 주홍교도 그 중 하나로서 제일 아름다운 다리다.







한쪽으로는 먹거리코너와 수공예품을 파는 가계들이 늘어셔 있다.



공연장 광장 한쪽에는 <비탐굴불>이란 불상을 모신 석굴까지 만들어 놓았다.

공연시간이 임박하여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이제 공연이 시작되려나 보다. 자리에 사람들이 차기 시작한다.


공연 1부는 황제의 축하연으로부터 시작된다. 



















~2부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