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기행(3/5) 예천 8경의 하나로 곱히는 초간정(草澗亭)

2016. 5. 22. 20:34명승지

예천기행(3/5) 예천 8경의 하나로 곱히는 초간정(草澗亭)

 

 

@초간정(草澗亭)은 예천 용문사 가는 길목에 있다.

예천 8경의 하나로 곱히는 초간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집필한 권문해가 지은 정자로 그의 호 초간(草澗)를 따서 지었다.

초간정의 원래 이름은 초간정사(草澗精舍)였는데, 후대에 잘못 전해져 초간정(草澗亭)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정사(精舍)’학문에 힘쓰는 집이란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여행도 연때가 닿아야 하는가 보다. 초간정을 방문하는 그날이 권씨 종친회를 하는 날이라

입구에서부터 혼잡하기 그지 없었다.

정자 앞 숲 마당은 노래자랑으로 굿판을 이루고 초간정은 권씨네 사람들로 법석이었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한 요란한 굉음이 이 아름다운 정자의 고요한 풍광을 여지없이 뭉게버렸다.

과연 이러한 행사가 조상을 흠모하는 것인지 내심 의아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초간정에 대한 나의 기대가 큰 탓일까?

  

 

 

 

  

@초간정(草澗亭)의 초간(草澗)이란 말은

당나라 때 위응물이란 사람의 저주서간 [滁州西澗]이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저주서간(滁州西澗>

~위응물(韋應物) (海山 飜譯)

 

개울가 홀로자란 외로운 초목에서

우거진 우듬지에 꾀꼬리 노래하네.

봄 호수 비 내리니 황혼이 빨리 오고

인적 없는 나루터엔 배만 홀로 일렁인다.

  

 

 

 

  

저주서간( 滁州西澗 / 韋應物 (海山 飜譯))

 

독련유초간변생 (獨憐幽草澗邊生)

상유황리심수명 (上有黃鸝深樹鳴)

춘호대우만래급 (春湖帶雨晩來急 )

야도무인주자횡 (野渡無人舟自橫)

 

  ...................

*황리 黃鸝 :꾀꼬리

*심수 深樹 :깊숙이 우거져 있는 수목

*우듬지 :나무 꼭대기 나무 끝

..........................

 

 

  

  

제목은 '저주(滁州)의 서간(西澗)'이라는 뜻이다.

저주(滁州)는 지금의 안후이성[안휘성 安徽省] 추현[滁縣]에 해당되며,

서간(西澗)은 당시 저주성滁州省 서쪽 교외에 있던 개울의 명칭이다.

 

 

 

  

  

위응물이 당나라 덕종(德宗) 때인 781년 저주의 자사(刺史)로 임명되어 재직할 때 지은 시이다.

위응물은 도연명(陶淵明)의 시풍을 계승하여 산수전원을 묘사한 시를 지었고,

우아하고 담백한 시세계를 이룬 시인으로 평가된다.

 

 

 

 

 

 

@권문해(權文海)1534(중종 29)1591(선조 24).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호원(灝元), 호는 초간(草澗). 아버지는 지()이다.

1560(명종 1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좌부승지·관찰사를 지내고 1591년에 사간이 되었다.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친교가 있었던 분이다.

그의 저서로는 우리 나라의 고금문적(古今文籍)을 널리 참고하여 단군시대로부터 편찬한

당시까지의 지리·역사·인물·문학·식물·동물 등을 총망라하여

운별(韻別)로 분류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과 문집으로 초간집이 있다.

  

 

 

 

  

@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대동(大東)’이라는 말은 동방대국(東方大國)’이라는 뜻이고,

운부군옥(韻府群玉)’은 운별로 배열한 사전이라는 뜻이다.

원나라 음시부(陰時夫)가 지은 운부군옥이 중국의 역사 기록을 수록하여 엮은 것에 대하여,

대동운부군옥은 우리나라의 운별 사전임을 밝힌 것이다.

 

 

 

@이 책은 권문해가 대구부사로 있을 때인 1589(선조 22)에 완성된 것으로

2020책으로 목판본으로 인쇄되어 보물 제878호 지정되어 있다.

우리 나라와 중국의 문헌 약 190종 가운데 우리 나라에 관련된 주요 내용들을

단군부터 선조 때까지를 다룬 내용들을 가려 뽑은 이 책은 선조 22(1589)에 완성되었지만

임진왜란으로 펴내지 못하고, 후손 권진락(權進洛)이 순조 12(1812)에야 간행하기 시작해

헌종 2(1836)에야 완간했다. 지금은 소실되고 없는 임진왜란 이전의 책들을 망라하여

사료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16세기 한글의 모습을 알 수 있어 국어학에서도 중요하게 쓰인다.

최근 남명학연구소 경상한문학연구회 주도로 2007년에 총 20권으로 완간되었다.

 

 

 

 

 

 

 

 

 

 

지방문화재로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