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애사(哀史)가 서린 주천강의 정자 영월 요선정(邀僊亭)

2016. 3. 6. 12:03국내 명산과 사찰

단종의 애사(哀史)가 서린 주천강의  정자 영월 요선정(邀僊亭)


요선정은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에 위치하며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 41호 지정되어 있는 정자이다.

 邀僊(요선) 또는 邀仙(요선)이라 쓴 글씨의 뜻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요선정은 불교 전성기인 통일신라시대 철감국사 도윤과 징효대사가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사자산 기슭에 흥령선원을 개원하고

자주 이곳에 와서 포교를 하던 곳으로 그 당시 작은 암자가 있던 곳이라 한다.





현재의 정자는 대대로 이 지방에 살고 있던 마을 유지인 원세하(元世夏), 곽태응(郭泰應), 이응호(李應鎬) 등이

단종을 기리며 내린 숙종, 영조, 정조 세분의 왕의 어제시(御製詩)를 봉안하기 위하여 1913에 건립한 것이다.

본래 이들 시판은 예전에 주천 현루였던 청허루에 있었던 것인데,

누각이 폐허가 되어 일제강점기 때 일인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이를 김병위(金炳緯)1909년에 환수하여 보관하게 되었다.

건물은 3단의 자연석 기단위에 덤벙 주추를 놓고 정면 2, 측면 2칸 규모로 지은 정자건물이다.

정자의 바닥은 우물마루로써 그 높이는 기단에서 30cm이고 출입은 좌측에 마련되었으며, 난간이 돌아간다.

~출처: 한림대학교박물관·강원도·영월군, 1995,영월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요선정에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하나는 요선정(邀僊亭)이고 다른 하나는 모성헌(慕聖軒)이다.

정자 주변에는 마애여래좌상과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석탑 1기가 남아있고,

요선정 내 인근 바위에는 <石明瑄(석명선)/丁巳二月太守行(정사이월태수행)>이라 글이 암각 되어 있다.

 


   

 

@@여기에 암각된 정사이월이 어느 때를 가리키는 지, 또 석명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닌

석명선(石明瑄, 일본식 이름: 石川明瑄, 1870년 음력 3~ ?)이라면

바위에까지 이름을 새겨 이를 후대에 기억케 한다는 것은 다소 문제가 되지 않을까 사료된다



 

 

참고로 석명선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는 강원도 강릉군 출신으로 1884년에 내부 주사를 지내는 등

대한제국의 관료로 근무하였고, 1906년에는 군수로 임명되어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시점까지 재직 중이었던 분이다.

그러나 1910년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총독부 체제가 수립되었을 때 그대로 총독부 군수로 남아

강원도 강릉군과 인제군, 영월군, 철원군, 횡성군 군수를 차례로 역임하였다고 한다.

만약 위의 석명선이란 분이 이 사람이라면 이 때에 새긴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참고로 석명선의 내력을 보면

1926년에는 강원도 참여관에 임명되어 승진하였고, 1933년에 퇴직한 뒤 곧바로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1920년대부터 국민협회에 참여하는 등 여러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다.

동민회와 구일회에 가담하였고,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그의 부인까지 총독부의 조선중앙정보위원회가 사주하여 1937820

일제 수작자의 처와 사회중견 여류인사를 망라하여 조직된 친일단체인 애국금(愛國金)차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석명선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과 도 참여관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중추원과 관료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바위에 음각된 불상, 무릉리 마애불좌상>

요선정 옆 바위 한 면에 음각으로 새겨 놓은 마애불좌상은 1982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강원도 내 마애불상은 많지 않다. 철원군 동송면에 있는 마애석불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예는 2구에 불과하다.

이곳에 있는 마애불은 그 중의 하나로 얼굴은 양각으로 되어 있으나 그 밖의 부분은 선각으로 음각한 좌상이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양감이 풍부하며 머리는 소발로 육계가 있다.

상체는 길고 원만하지만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하체는 상체에 비해 크게 조각이 되어 조금은 균형을 잃고 있다.

두 손은 가슴에 표현하였는데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펴서 손등을 보이고 있고,

왼손은 오른손에 평행이 되게 들고 있다.





   

광배는 두신광을 표현하였으며, 그 중 두광은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고, 신광은 두 줄로 선각해 놓았다.

밑으로 연꽃 문양의 대좌가 있어 그 위에 부처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높이는 3.5m이다.

  



  

전체적으로 상하의 균형을 잃고 있으나 힘찬 기상이 잘 표현되어 있는 마애불상으로

옆에 있는 청석탑과 함께 고려 시대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요선정 아래는 아름다운 주천강이 흐르고 있고, 강 하류에 돌개구멍으로 유명한 요선암이 있다.




<어제시(御製詩)를 내린 사유>

영월 땅에 세분 군왕의 御製御筆詩文(어제어필시문)이 내려진 것은 숙종 말년인 17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숙종대왕께서는 1446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된 후 사약을 받고 승하하신 선대왕을 단종으로 복위하고

종묘에 모시는 한편 노산묘를 장능으로 추봉하는 등 조선초기의 왕조애사를 바로 잡기 위해 힘쓰신 분으로,

영월 유배길의 소상한 일들을 물어 살피시다가

1698(숙종24) 정월에 憑虛,晴虛兩樓詩(빙허,청허양루시) 한수를 써서 당시 강원감사 심정보에게 내리니

어제어필 시문이 주천 현루인 청허루에 간직되었다.

 

그러나 청허루에 화재가 있어 어제시는 누대와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그 후 청허루를 중건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영조대왕께서는 선왕의 시문을 먼저와 같이 그 자리에 보존하기 위해

숙종대왕의 어제시를 손수 쓰고, 그 뒤에 다시 시 한편을 더 보태어

당시의 강원감사인 林鏶(임집)에게 내리니 새로 중건된 청허루에는 두 임금의 어제시를 봉안하게 되었고,

그 후 다시 정조 대왕께서는 청허루에 봉안된 두 분 선왕의 어제시를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敬吹酒泉縣樓所奉 序(경취주천현루소봉 서)>를 지어 두 분 선왕의 어제시옆에 걸게 하니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주천은 옛 고을로서 지금은 원주에 속해 있으며 청허와 빙허의 두 누각이 있는 경치 좋은 곳으로

옛날 심정보목사가 있던 고을이다. 숙종대왕께서 지으신 시의 현판은 그간 화재를 입었는데

무인년 고을을 지키던 신하가 중건하였음을 영조대왕께서 들으시고 原篇(원편)을 찾아 손수 쓰시고

서문을 지으시어 근신에게 명하여 달게 하니 한 누각이 이루어지고 훼손되는데 따라 무겁고 가벼움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글과 글씨가 황홀하기만 하니 이 누는 이것으로 빛나고 그 고을의 산천 또한 이 누로 인해 빛나니

이 누각이 이 고을의 자랑이 아니겠는가.

기와를 잇고 수리하는 일은 가히 힘쓸 줄 믿으니 공경해서 시를 짓고 대략을 적어 그 곁에 달게 하노라하는

내용의 서문과 함께 정조대왕은 어제시 한편을 내려주셨다.


  

  

그러나 이 자랑스러운 두 누각은 오랜 세월 속에 퇴락하여 마침내 무너졌고,

세 임금의 보묵(寶墨)은 민가에서 보존되니 이를 봉안하고자 무룽리에 요선정을 짓고 어제어필시문을 봉안하게 되었다.

 

요선정에 봉안되어 있는 어제시는 두 틀 板額(판액)에 보존되어 있으며,

그 중 하나에는<숙종대왕어제시> <영조대왕어제어필시>를 담았고,

다른 한쪽에는 정조대왕의 친필서 문과 어제시를 담고 있다. (출처: 영월군 수주면 홈피)

 

 

  

@빙허 청허양루시憑虛淸虛兩樓詩 / 숙종肅宗(1661~1720)

 

聞說雙樓在酒泉(문설쌍루재주천) 듣거니 쌍으로 된 누각이 주천에 있다던데

幾經葺理尙能全(기경즙리상능전) 몇 번이나 지붕을 이어 아직도 온전한가

峨峨石壁靑雲接(아아석벽청운접) 높고 높은 석벽은 푸른 구름에 닿아있고

漾漾澄江碧水連(양양징강벽수연) 출렁출렁 맑은 강은 푸른 물로 이어졌구나

山鳥好禽鳴樹上(산조호금명수상) 산새 예쁜 새 나무 위에 울고

野花春草映階前(야화춘초영계전) 들꽃 봄풀은 섬돌 앞을 덮었다

携登官醞呼兒酌(휴등관온호아작) 술 지니고 누에 놀라 아이 불러 따르게 하고

醉倚欄干白日眠(취의난간백일면) 취해 난간에 기대 대낮 잠을 잔다







미륵암이다. 이 암자를 중심으로 오른쪽 언덕길은 요선정으로 오르는 길이고,

좌측 아래쪽 강쪽은 요선암으로 내려가는 길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