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대의 신비를 알려주는 천연의 석굴 태백 구문소(求門沼)

2015. 11. 7. 15:47명승지

 

 

 

 

고생대의 신비를 알려주는 천연의 석굴 태백 구문소(求門沼)

 

@구문소(求門沼)는 낙동강의 상류인 철암천에 합류하는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황지천 하구에

하식지형(河蝕地形)로 만들어 진 소()이다.

카르스트 지형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중국의 천문산 천문과 버금가는 비경으로

전기고생대의 지질학을 연구하는 중요한 곳일 뿐만 아니라

천연기념물 제417(2000424)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구문소는 낙동강 상류 황지천의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면서

석문(石門)을 만들고 깊은 소()를 이룬 곳인데, 구문소는 <구무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구무><구멍> 또는 <>’의 옛말이다.

다른 말로는 강이 산을 뚫고 흐른다고 해 <뚜루내>라고 하며,

세종실록지리지대동여지도등의 고문헌에는

구멍 뚫린 하천이라는 뜻의 <천천(穿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문소는 주위의 낙락장송과 어우러진 자연 경관이 일품이다.

구문소 높이는 2030m, 넓이 30정도 되는 커다란 석회동굴로 석문 위에 자개루가 있고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예로부터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특이한 도강산맥(渡江山脈)은 지금으로부터 약 15천만 년에서 3억 년 전 사이에 형성되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형을 찾기 힘든 기이한 곳이다.

구문소 자개루에서는 마당소, 삼형제폭포, 닭벼슬바위 등 구문팔경을 볼 수 있다.

고생대 화석들과 5억년 전 바닷가의 다양한 지질구조 등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자연 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른 아침에 떠난 길, 태백정선으로 가는 길에는 마땅한 휴게소가 없다. 유일하게 만난 휴게소. 새벽하늘을 담아 본다.

 

 

 

길은 한산한 데 산을 가을물이 들어가고 있다.

 

 

 

 

 

 

 

@사군다리

구문소는 황지천이 흐르는 하상(河床)에 해당하는 데 옛날 이 마을에 사방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 사개통(사거리)이라 하였고

여러 지방의 사람들이 왕래하며 이곳 주막에서 싸개통(싸움질)이 곧잘 벌어졌다.

그래서 사방으로 통하는 <사개통>이요 싸움이 잘 벌어지는 <싸개판> <싸개질> 의 들 (드리, 다리)이기에

사개드리, 싸개드리로 불리다가 <드리><다리>로 변하여 <싸개드리><싸군다리>가 되고

<싸군다리>, <사군드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윤순석씨의 사군다리의 小考>

 

 

 

 

 

 

 

 

구문소의 형성 및 변천 과정을 보면,

태백시 동점동(銅店洞)을 흘러내리는 혈내천은 본래 마을 쪽으로 크게 휘돌아 흐르는 감입곡류하천(嵌入曲流河川)이었다.

감입곡류하천에서 미앤더(meander)의 잘록한 목 부분이 지속적인 침식을 받아 절단되면,

새로운 하도와 구하도(舊河道) 사이에 원추형의 미앤더 핵()이 떨어져 남게 된다.

구문소는 이렇게 형성되어 두 개의 석문이 조성되었다.

하나는 새로 만들어진 자동차 도로인 지금의 석문이며 또 다른 석문은 구길에 있다.

 

 

 

@@감입곡류하천(嵌入曲流河川)이란 산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하천를 의미하는 말이다.

지반이 융기하거나 침식 기준면이 하강하면 자유 곡류하던 하천은

하천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하방 침식을 시작한다.

이로 인해 하도가 더욱 깊게 패여 협곡을 만들며 곡류하는 현상을 감입 곡류라 하고,

이러한 하천을 감입 곡류 하천이라고 한다.

감입 곡류 하천은 고위 평탄면과 함께 우리나라가 신생대 제3기 경동성 요곡 운동 이전에는

침식을 받아 평탄한 지형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구문소의 형성과정에서 지질조건은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구문소 일대에는 석회암이 넓게 분포하는데, 석회암은 물에 잘 녹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통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구문소의 암벽이 유수에 쉽게 녹아

새로운 물길이 생겨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앤더(meander)는 자유곡류하천(自由曲流河川)을 의미한다.

자유곡류하천은 감입곡류하천(嵌入曲流河川)에 대비되는 용어이다.

곡류하천은 하천의 측방침식이 진전되어 범람원이 넓게 형성된 지역에서 잘 발달한다.

 

 

 

넒은 범람원을 흐르는 하천은 유속이 느리기 때문에 장애물을 만나면 이를 피해 돌아서 흐르게 되고,

이때 유로가 한 번 꺾이게 된다. 이와 같이 하천이 유로(流路)를 자유롭게 변경하며 흐르는 하천을

자유 곡류 하천 또는 사행천(蛇行川)이라고 하며, 하천의 중 · 하류에서 잘 나타난다.

 

 

 

곡류가 시작되면 하천이 쏠리는 공격면은 측방 침식이 진행되고 그 반대편은 퇴적이 진행된다.

이러한 측방 침식이 점점 심해져 구부러진 하도가 서로 접근하게 되면 하도 사이의 간격은 좁아지게 된다.

측방 침식이 계속 진행되면 결국 하도가 서로 만나 새로운 직선의 하도가 만들어지는데,

이때 하천() 중간()에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섬을 하중도(河中島)라고 한다.

 

 

 

 

 

하천이 다시 직선으로 흐르면 곡류했던 부분이 하천과 끊어지면서

() () 모양의 호수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우각호(牛角湖)라고 하며, 시간이 지나 호수의 물이 사라져 육지화 되면,

물이 흐른 흔적만 남게 되어 구하도(舊河道)가 된다.

 

 

 

 

이 동굴안에는 오복동천자개문이란 글이 암각되어 있다.

 

 

 

@오복동천자개문(五福洞天子開門)

구문소의 암벽에 새겨진 오복동천(五福洞天)자개문(子開門)의 의미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유토피아로 그려진 무릉도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나,

우리나라 청학동설화 靑鶴洞說話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비유는 다르지만 같은 테마로)

오복(五福)이 고루 갖추어진 오복동이란 이상촌(理想村)이 있는데

그 오복동에 들어가는 하늘 문은 자시(子時; 23:00~01:00)에 저절로 열린다고 하는 의미다.

동굴에 암각된 이 글은 아마도 어느 이름 모를 묵객이 남긴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오복(五福)이란 말은 시인묵객들이 즐겨쓰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출처는 書經(서경) 周書(주서) 洪範篇(홍범편)에 근거하고 있다.

五福(오복)은 수(), (),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의미한다.

()는 장수하는 것을 의미하고, ()는 부유한 것, 강녕(康寧)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을 의미하고,

유호덕(攸好德)은 좋은 덕()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고종명(考終命)이란 일생동안 평안하게 살면서 천수를 누리다가 생을 마치는 것을 의미한다.

민간에서 바라는 오복은 통속편(通俗編)에 나오는데 수··(강녕·자손중다(子孫衆多),

서경에 나오는 오복과 다소 차이가 있다.

 

 

 

 

 

 

석문의 뒤편이 혈내천의 상류다. 자개루는 석문과 동굴의 뒷편의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석굴 위에 있는 자개루 가는 길

 

 

 

 

 

 

 

 

 

 

 

 

 

 

 

 

 

 

 

 

 

 

 

 

 

 

 

 

 

 

 

 

 

구문소의 백구백병(白狗白餠)설화

옛날에 황지천이 머물다 가는 구문소 옆에 엄종한이라는 사람이 노부모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고기를 잡으러 구문소로 갔다가 그만 실족하여 소()에 빠졌는데, 그 곳이 바로 용궁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모양이다.

용궁으로 끌려간 그는 물고기를 잡은 죄로 문초를 받게 되었는데 자신의 죽음보다

집에 남겨 둔 늙은 노부모와 자식들이 걱정되어 삼일 동안을 꼬박 울면서 애원하며 용왕에게 용서를 빌었다.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들은 용왕은 그의 효심을 가상하게 여겨 용서해 주면서 주연(酒宴)을 베풀어 주었다.

난생처음으로 진수성찬을 마주한 그는 집에 홀로 남은 노부모가 생각이나 음식이 차마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노부모를 생각하며 떡 한 조각을 몰래 주머니 속에 감추었다.

주연이 파하자 용왕은 백구(白狗: 흰 강아지) 한 마리를 주면서 이 강아지를 따라가면

용궁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용왕이 준 그 흰 강아지 따라 물 밖으로 나오자 그 흰 강아지는 바로 죽어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니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고 노부모와 가족들로부터 크게 환대받았지만

가난했던 집이라 먹을 것은 없었다. 문득 용궁에서 주머니 속에 숨겨둔 떡이 생각나 꺼내 보니

하얀 차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돌처럼 하얗게 굳어버린 떡은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빈 쌀독에 넣어두고 빈 배를 움켜잡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쌀독을 열어 보니 비었던 쌀독에 쌀이 그득하게 차 있었다.

놀랍고 이상하게 여긴 그는 바가지로 쌀을 퍼내보니 퍼낸 그 만큼 쌀이 다시 불어나는 것이 아닌가.

마치 화수분(河水盆: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처럼 퍼낸 만큼 쌀이 불어나

그는 온 동네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계속 불어나는 그 쌀로 인하여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구문소표지석에 기록된 백구백병의 설화를 토대로 편집했음을 밝혀둔다.

석비의 백구백명(白拘白尤)의 한자(漢字)도 내용과 다른 오자(誤字)같아서 수정했다.)

 

 

 

 

 

 

 

 

 

 

 

 

 

 

 

 

 

바위의 형상이 마치 곰이 누어있는 것 같다.

 

 

 

 

 

신길이 열리기 전 이용했던 구길의 석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