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4. 22:17ㆍ국내 명산과 사찰
철원기행(4/6) 도피안사(到彼岸寺)
@직탕폭포 다음에 들린 곳이 도피안사(到彼岸寺)다.
사찰이름이 불자(佛者)들에게는 매혹적이다. 그것도 비무장지대에 가까운.
도피안(到彼岸)이란 말은 바로 해탈처요, 열반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날은 여전히 흐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도피안사는 불사 중이었다.
일주문에서 부터 크레인을 세우고 작업을 하고 있어 조금 어수선했다.
도피안사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화개산(花開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에 속한다.
865년(경문왕 5)에 도선(道詵)이 향도(香徒) 1,000명과 함께 이 절을 창건하고
삼층석탑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수록되어 있는 사적기에 의하면,
도선이 철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려고 하였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았더니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으므로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도선은 이 절을 800의 비보국찰(裨補國刹) 중의 하나로 삼았으며,
화개산이 마치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석탑과 철불로 산세의 약점을 보완하여 국가의 내실을 굳게 다지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오래도록 국가의 비보사찰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898년(광무2년) 봄에 큰 화재로 전소된 뒤
주지 월운(月運)이 강대용(姜大容)의 도움을 받아 법당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였으며,
승료(僧寮)와 누헌(樓軒) 등을 중수하였다.
6·25 때 소실된 뒤 주지 김상기(金相基)가 중건하였으며,
1959년에는 15사단 장병들이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창건 당시 조성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연지가 있지만 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다.
종루
사찰안내판에는 천불전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현판은 극락보전이다.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협시불로 대세지보살과 관음불을 모시고 있다.
여늬 사찰의 극락보전의 부처와 달리 도피안사의 부처님은 검정색으로 장엄되어있다.
이는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이 원래 검은 철불로 조성되었기 극락보전의 부처도 이와 조화를 이룬 듯한다.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관음불
@1962년에 대한민국의 국보 제63호로 지정된 도피안사의 비로자나불은
머리에는 육계가 있으나 뚜렷하지 않다. 불상의 얼굴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높고 안정된 이중 대좌(二重臺座) 위에 앉아 있으며, 불상의 높이는 91cm이다.
비로자나불을 확대한 것으로 원래는 철불로 금색도금이 되었던 모양이다.
현재 도피안사 대적광전에 모셔진 이 비로자나불은 보존처리된 것이라고 한다.
원래 비로자나불
(출처:펌)
도피안사의 비로자불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달리한다.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온 평가는:
『육계(肉髻)의 표현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얼굴은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보다 훨씬 빈약하며,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보다도 좀 더 섬약하다.
코의 평탄적인 처리는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하지만 보다 빈약하다.
눈이나 입 같은 세부적인 표현 또한 섬약하다.
어깨는 아주 움츠린 모습이 아니고 무릎에 비해 넓은 편이어서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다르다.
하지만 대체로 신체는 평판적이고 섬약한 편이며, 가슴·손·다리에는 양감이 표현되지 않았다.
불의는 통견의(通肩衣)로 가슴이 넓게 터졌으며, 승각기 같은 내의의 표현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주목된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 또한 불상의 양식적 특징과 동일하다.
전체 형태는 이 시대에 유행한 팔각연화좌(八角蓮花座)이며,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는 단판앙련화문(單瓣仰蓮花文 : 홑잎의 연꽃잎이 위로 향하고 있는 무늬), 중대는 8각형,
하대는 단판복련화문으로 조성되었다.
긴 귀꽃과 중대 받침의 능형과 내곡(內曲)한 몰딩적 처리는 이 시대 대좌의 가장 대표적인 형식적 특징이다.
이 불상은 신라시대에 유행하던 철조불상으로, 섬세하고 평판적인 양식이나
형식적 특징에서 9세기 후기 불상의 한 형식을 정립한 불상이다.』
고찰임을 말해주는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푸른 이끼가 참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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