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기행(1/4) .백제문화단지

2015. 7. 22. 00:48문화재

 

 

 

 

부여기행(1/4)  백제문화단지

궁남지의 연꽃축제의 마지막 날, 비소식을 알면서도 떠난 부여기행,

궁남지를 비롯하여 고란사와 정림사지 등을 둘러보느라 귀경길에 마지막코스로 백제문화단지를 찾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폐관시간이라 입장은 하지 못하고 입구에서 겉만 바라보다 귀경길에 올랐다.

 

우리문화의 근간일 뿐만 아니라 또한 고대 일본문화의 원류가 되었던 백제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1994년에 착공 17년간 6904억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330만 평방미터의 대지 위에 사비궁과 생활문화마을과 위례성, 백제역사문화관등을 조성하여

1400여 년 전 찬란했던 백제인의 기상과 그 찬란했던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한 것이

백제문화단지라고 하는데 이번 부여기행에는 인연이 닿지 않았나 보다.

 

 

 

 

 

@사비성은 별칭으로 반월성(半月城)이라고 한다. 소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사비성은 백제 때 도읍 자체의 명칭이기도 한다. 백제 때에는 부여 일대의 평야를 사비원(泗沘原)이라 하고,

금강을 사비하(泗沘河)라고도 하였다.

 

백제가 협소한 웅진(熊津)을 버리고 넓은 들이 있는 곳에 보다 큰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천도한 것은 538(성왕 16) 봄이다.

무왕은 수도의 건설을 위하여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공장(工匠)화사(畫師) 등을 청하였다.

사비성은 이때 새로 쌓은 것이 아니고 수축만 하였다.

 

이 성은 부소산을 감싸고 있고 양쪽 머리가 낮게 둘러져 백마강을 향해 초승달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반월성(半月城)이라고도 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성터의 길이가 13,000여척이나 되며, 치소가 성 안에 있었다고 한다.

 

백제가 망한 뒤 백제의 유민들이 모여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664(문무왕 4)에는 한때 사비성을 점령하여 신라군을 물리치기까지 했다. 당나라가 사비성을 점령한 뒤 이곳에 동명주도독부(東明州都督府)를 설치하였으며,

웅진노신(鹵辛)구지(久遲)부림(富林)4개 현을 예속시켰다.

 

신라가 이곳을 차지한 뒤 사비주(泗沘州, 또는 所夫里州)를 설치하였고(문무왕 11), 신문왕 때 군으로 바꾸었다.

경덕왕 때 부여군(扶餘郡)으로 바꾸어 웅주(熊州: 지금의 공주시) 관할하에 두었고,

석산(石山)열성(悅城)의 두 현을 예속시켰다.

부여의 명칭은 성왕이 이곳으로 천도할 때 남부여(南扶餘)라고 한 데서 유래된다.

고려 이후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사비의 지명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소부리(所夫里)는

서야벌(徐耶伐)과 같은 뜻의 동경(東京)’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설과,

사비(泗沘)가 소()와 같은 어형이고 부리(夫里)가 읍()을 뜻하는 것으로 수읍(首邑)’의 의미를 갖는다는 설이 있다.

지리적 위치로 볼 때 부여가 동경이 되기는 어려우므로 후자의 설이 타당한 것으로 본다.

 

 

 

 

 

 

 

@정양문(正陽門)

정양문은 백제재현단지의 정문이름이다. 정양은 백제 칠지도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말로

높이 솟은 태양 혹은 황룡을 상징한다

왕궁이나 도성의 실제 이름이 아니고 정양의 뜻을 취하여 새로 만든 문 이름이다.

 

 

정양문에서 바라 본 사비성 전경

 

@사비궁()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중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으며,

궁궐의 중심이 되는 천정전(天政殿 : 궁궐 중에서 가장 중심 부분)

동쪽의 문사전(文思殿), 서쪽의 무덕전(武德殿) 등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형태다.

백제문화단지에 조성된 사비성은 원래 부소산 기슭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었던

고대 삼국 중 백제의 왕궁성을 여기에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14개 동()에 걸쳐 4,492제곱미터 규모로 고대 궁궐의 기본배치 형식에 따라

왕이 직접 정무를 보는 치조(治朝) 권역을 재현했다.

 

 

천정전은 궁궐 내 으뜸이 되는 상징적 공간으로 신년하례식,

외국사신 접견 등 국가 및 왕실의 중요 행사에만 사용되던 공간이다.

높이 19m, 건축면적 337제곱미터(102) 2층 규모로 웅장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갖췄다.

 

 

 

천정문 우측

 

 

 

 

 

 

 

 

정문 좌측

 

 

 

돌아서는 길 문화단지 입구에 오석을 빚은 조각품들이 있어 둘러 보았다.

수석인이라면 최고 기호석인 오석, 부여의 오석에 잠시 눈길을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