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24. 07:29ㆍ국내 명산과 사찰
오련사의 전설따라(1/3) 강화 청련사
인천광역시 강화군에는 연꽃과 얽힌 5개의 고찰(古刹)이 있다.
오련산(五蓮山) 오련사(五蓮寺)로 불리는 사찰이 바로 그것이다.
오련산(五蓮山)은 지금의 고려산이라 불리는 산의 옛 이름이다.
강화 8경으로 불리는 적석사의 멋진 일몰을 담기 위해 오후에 흐리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가 운무가 짙어 강화대교를 건너면서 일몰보기를 포기하고
대신 오련사의 전설이 얽힌 5개의 사찰 중 규모가 큰 청련사, 적석사, 백련사 3개의 사찰을 둘러보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고려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중북부에 위치한 해발 436m의 산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전등사의 마니산, 보문사가 있는 락가산과 더불어
주변의 고인돌 군락과 진달래 군락지로 알려진 산이다.
고구려 장수왕 4년 천축(인도)조사가 이곳 오련산(고려산)에서 가람 터를 찾던 중
정상의 연못에 피어 있는 5가지 색상의 연꽃을 따서 불심(佛心)으로 날려
꽃이 떨어진 장소에 꽃 색깔을 따라 절을 지었는데 백색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백련사,
흑색연꽃은 흑련사, 적색연꽃은 적석사, 황색연꽃은 황련사, 청색연꽃은 청련사라 했다.
그러나 청련사만은 조사가 원하는 데에 떨어지지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 이라는 절을 지어
현재 3개의 사찰과 1개의 암자가 천 년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이 원통암은 1984년 청련사에 합쳐져 원통전으로 되었다.
연못을 오련지(五蓮池), 이 산을 오련산(五蓮山)으로 그리고 5개의 사찰을 묶어 오련사(五蓮寺)라 불리었다고 하며,
오련산은 몽고의 난을 피하기 위해 고려가 강화로 천도하면서 고려산(高麗山)으로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 증개축으로 드러나 있는 사찰은 4사(寺)인데 흑련사는 그 위치조차 알려진 것이 없다.
고려산에는 원래 크고 작은 5개의 연못(五井)이 있었는 데 이는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4세기 이전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정상의 큰 연못은 하늘에 제(祭)를 올리는 제단으로 사용 되었고
작은 연못 4개는 연개소문이 군사훈련 시 말에 물을 먹이던 곳이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고려산 오련지(五蓮池)는 원래 산 정상에 있던 것을 실제 크기로 복사된 된 것으로
2003년 고려산 진달래축제를 시점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첫 번째로 들린 사찰이 청련사다.
청련사 창건에 대한 연혁은 다른 사찰들처럼 제대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기록으로 보이는 것은 조선 순조(純祖)21년 비구니 포겸(包謙)스님에 의해 중창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 후 고종(高宗) 18년 부급(富給)스님이 탱화들을 조성하고
광무 10년 계근(戒根)스님이 법당을 중수하는 등 근현세의 기록들이 전부이다.
유추해 본다면 원통전에 모셔진 부처님뿐이다.
이 부처님은 2012년 강화청련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란 이름으로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고려시대 불교미술의 경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
@고려산 오련사의 전설 중 청련사의 창건설화에 관한 색다른 이야기가 전해 온다.
<천축에서 온 스님이 절터를 찾기 위해 오련산 오련지에서 다섯 색깔의 연꽃을 따 허공에 던졌는데
청색연꽃만 원하는 곳에 떨어지지 않아 원통하다는 뜻에 원통암(圓通庵)을 세웠는데 뒤에 청련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원통암은 1984년 대웅전을 지으면서 청련사와 합쳐져 원통전이 되었다.
@원통암의 아미타여래좌상은 13세기 즉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했던 고종(高宗) 19년(AD1232)에서
원종(元宗) 11년 사이에 개경(開京)에서 건너온 우수한 장인들이 조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미루어보면 청련사의 연혁 또한 고구려 장수왕 이후 희미해 졌다가
고려의 강화 천도 이후 불상이 조성 되는 등 사세가 다시 커졌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당시 원통암은 주불로 아미타불을 모셨는데 이 역시 고려산을 극락으로 여겼기 때문에
극락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청련사가 대웅전을 지어 큰법당으로 삼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데 비하면
원통암의 후신인 원통전이 오히려 고려산 기슭에 세워진
여러 극락도량들과 시대정신을 함께하는 불전이라고 할 수 있다
@청련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일주문이나 해탈문, 천왕문 등 문루들은 없다.
그러나 천년 고찰을 암시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수십 그루가 입구에서부터 사찰을 두르고 있어 이를 대신한다.
대웅전 앞은 절터를 조성하느라 축대들을 쌓았는데 높이는 낮지만 작은 석성처럼 유난히 돌들이 돋보이고
축대 주변 곳곳은 화단이 아름답다 비구니스님들의 정성이 엿보인다.
@큰 법당 안에는 석가삼존불이 봉안돼 있다.
극락을 상징하는 고려산에 있는 사찰의 금당으로서는 모신 부처님이 아미타불이 아니라 석가여래이다
1979년에 신축해 부처님도 새롭게 조성해 모셨으나 탱화들은 구법당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상계(上界)교주 천장보살(天藏菩薩)과 유명(幽冥)교주 지장보살(地藏菩薩) 음계(陰界)교주
지지보살(地持菩薩)을 그린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와
현왕탱은 고종 18년에 조성됐고 감로왕탱(甘露王幀)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성되었다고 한다.
@종무소는 큰법당을 새로 짓기 전까지 법당으로 사용하던 구법당이었다.
푸른 연꽃인 청련(靑蓮)은 범어 utpala. 우발라(優鉢羅) 연꽃이다. 그 잎이 윤택(潤澤)하고 넓어서 청백(靑白)이 분명하여 대인(大人)의 안목(眼目)의 상(相)이 있으므로 이를 취(取)하여 부처님의 눈(眼)에 비유한다. 법화경 묘음품(妙音品)에 「눈이 광대한 청련화(靑蓮華)의 잎이다.」하였고, 유마경 불국품(佛國品)에 「눈이 정(淨)하고 길고 넓음이 청련(靑蓮)과 같다.」하였으며, 주(注)에 「皐(고)가 말하기를 천축(天竺)에 청련화(靑蓮華)가 있다. 그 잎은 길고 넓다. 청백(靑白)이 분명하여 大人의 目相이 있으므로 이것에 비유한다.」고 했다.
청련화는 연(蓮)의 일종으로 범어로는 優鉢羅華(우발라화)이니 곧 수련(垂蓮)이다.
연꽃은 대개 진흙탕에서 뿌리를 내리지만 쇠똥에서 피는 연꽃도 있다.
대일경소15(大日經疎 15)에서는 이 연꽃을 구물두(俱勿頭)연화로 부르며 赤과 靑의 두가지 색이 있다고 했다.
이 푸른 연을 구물두연화라 하며 지극히 향기로우며 문수보살이 들고 있는 청련화가 바로 이 연꽃이다. <불광불교대사전>
수령 318년 된 느티나무, 청련사에는 수령 300년 이상 된 이런 느티나무가 많다
구 법당이었던 이 요사채 앞의 느티나무는 수령이 688년이나 된다.
산신각
원통전
빛바랜 원통전의 탱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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