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8. 17:14ㆍ국내 명산과 사찰
양평나들이 다산 정약용 박물관
양평의 두물머리와 세미원은 자주 가는 편이다.
두물머리는 사계절 어느 때 가더라도 좋고 세미원은 연꽃이 피는 계절이라면 매년 거의 들리는 편이다.
오늘도 딱히 갈 곳이 없어 두물머리로 방향을 정했다.
두물머리만 들리기는 시간이 남을 것 같아 가는 길에 다산 정약용의 박물관을 들려 보았다.
언제나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곳을 오늘 처음으로 들려보는 것이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너무나 잘 알려진 분이다.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 저술가 시인 철학자 과학자 공학자로 알려진 분.
시세말로 다재다능한 분으로 알려진 분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이며,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중농주의 실학자로 전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起重架說)에 따른 활차녹로(滑車轆轤)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다.
문집으로 유배 생활 중 대부분이 저술된 여유당전서가 있다.
정약용의 가계를 보면 정조 생모 혜경궁 홍씨의 다른 최측근인 홍국영과 인척관계이기도 하다.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재(현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난 후
진주 목사를 지낸 부친 정제권에게서 학업 하였다.
정제권은 첫 부인 의령 남씨와 사이에 큰아들 약현을 낳았고,
둘째 부인인 고산 윤선도의 오대손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 약종, 약용 3형제와 딸 한 명을 낳았으니
정약용은 부친 정제권의 넷째 아들인 셈이다.
양평대교의 상류 풍광이다. 가을 하늘빛이 강물에 어렸다.
큰 고목나무 아래 가지런히 놓인 의자들이라면 웬지 이런 풍경에 내 눈길이 머문다.
풍광에 취한 사이 가을 빛이 어린 강 위로 모타보트가 지나간다.
물빛이 고와서 담았다.
다산 문화관 입구에 설치된 천일각
가을은 역시 국화의 계절인 모양이다. 어딜가나 국화꽃이 눈길을 잡아끈다.
다산문화관 전경,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와 그의 저서들이 진열되어 있다.
거대한 돌을 빚어 쌓은 수원성 건설이 가능했던 것은 다산이 발명한 거중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다산의 금의환향을 묘사한 모양이다
임금을 알현하는 모습도 만들어 놓았다.
옛적에는 선비가 여인의 긴 앞치마폭에 시를 남기는 것이 풍류였던 모양이다.
강진 유배당시 지은 다산초당의 모형인 모양이다.
다산의 건의로 만들었다는 배다리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잇는 배다리
다산의 생가인데 보수중인가 보다.
요 묘비 위에 다산의 묘가 있다. 사신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묘지 위에서 바라 본 생가의 모습
왼쪽 켠에은 장독간과 우물까지 만들어 져 있어 고풍스러운 맛을 더했다.
생가은 여유당이라 하며 여유당이란 그 연유를 기록한 안내판까지 걸어 놓았다.
수질관리본부 운동장에서 직원들의 축제가 있는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출입도, 사진촬영도 금지다.
국가 보안시설이라고. 단풍이 물든 이 아름다운 풍광을 담지 못해 아쉬웠다.
여름철 무성했던 숲도 이제는 가을빛에 퇴색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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