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향수를 그리며 걸어보는 경주 양동마을

2014. 9. 23. 22:29명승지

 

 

 

 

 

고향의 향수를 그리며 걸어보는 경주 양동(良洞)마을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 줄기로 갈라진 능산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데,

양동민속마을은 내곡(內谷), 물봉골(勿峰谷), 거림(居林), 하촌(下村)의 4골짜기와

물봉 동산과 수졸당 뒷동산의 두 산등성이, 그리고 물봉골을 넘어 갈구덕(渴求德)으로 마을이 구성되어있다.

이런 골짜기와 능선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포함하여 500여년이 넘는

전통의 향기를 품은 총150여 호의 고가옥(古家屋)과 초가집들이 우거진 숲과 함께 펼쳐져 있는 큰 마을이다.

마을의 진입로 쪽은 경사가 급한 산에 시선이 차단되고,

골짜기 밖에서는 마을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마을 입구에서는 그 규모를 짐작하기가 어렵고,

고가(古家)들도 접근해야만 볼 수 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자연환경과 집들이 잘 조화를 이루어 정감어린 모습으로 다가오고,

숲속의 산새소리에 젖어드는 안온한 분위기가 양동마을의 큰 특징이다.

 

 

 

 

 

양동마을의 안내서에 따르면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양대문벌로 이어 내려온 동족마을로

경주에서 형산강 줄기를 따라 동북 포항쪽으로 40리 정도 들어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유네스코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는 양동마을은

넓은 안강평야에 풍수지리상 재물복이 많은 지형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제법 큰 양반 가옥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종가일수록 높고 넓은 산등성이 터에 양반들의 법도에 따라 집을 배열하고 있는데

오랜 역사를 지닌 큰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어 경주의 또 다른 관광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집들의 기본구조는 대개 ㅁ자형이거나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고

간혹 대문 앞에 행랑채를 둔 예도 있다.

혼합배치 양식으로 ㄱ자형이나 一자형도 있지만

대체로 집의 배치나 구성 따위가 영남지방 가옥이 지니는 특색을 띠고 있다.

 

 

 

 

양동마을의 홈피에 의하면, 양동마을이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 정확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청동기 시대 묘제의 하나인 석관묘가 마을의 안산인 성주산 정상의 구릉지에 100여기나 있었으나

고고학자들의 보고로 보아 기원전(BC 4C 이전)에 사람의 거주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또 이웃 마을 안계리에 고분군(古墳群)이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미 삼국시대인 4~5세기경에 상당한 세력을 가진 족장급에 속하는 유력자가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에서 조선초기에 이르기까지는 오씨(吳氏). 아산 장씨(牙山 蔣氏)가

작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나 확인할 만한 자료는 없다.

 

 

 

 

 

경북 지방 고문서집성(영남대 발간)에 의하면

여강 이씨(驪江 또는 驪州 李氏)인 이광호(李光浩)가 이 마을에 거주하였으며,

그의 손서(孫壻)가 된 풍덕 류씨(豊德 柳氏) 류복하(柳復河)가 처가에 들어와 살았고,

이어서 양민공(襄敏公) 손소공이 540여년 전 류복하의 무남독녀와 결혼한 후 청송 안덕에서 처가인 양동으로 이주하여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이곳에서 살게 되었고, 후에 공신이 되어 고관의 반열에 올랐다.

 

 

 

 

 

또, 이광호의 재종증손(再從曾孫)으로 성종의 총애를 받던 성균생원 찬성공(贊成公) 이번(李蕃)이

손소의 7남매 가운데 장녀와 결혼하여 영일(迎日)에서 이곳으로 옮겨와서 살고

이들의 맏아들이자 동방5현의 한 분인 문원공 회재 이언적(文元公 晦齋 李彦迪 1491-1553)선생이 배출되면서

손씨, 이씨 두 씨족에 의해 오늘과 같은 양동마을이 형성되었다.

 

 

 

 

 

양동민속마을이 외손마을이라 불리는 것도 이러한 연유이며

조선초기까지만 해도 실제 남자가 처가를 따라 가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풍덕 류씨의 후손은 절손되어 외손인 손씨 문중에서 제향을 받들고 있다고 한다.

 

 

 

 

 

 

 

 

 

 

 

 

 

 

 

 

 

 

 

 

 

 

 

 

 

 

 

 

 

 

우물체험지로 안내되어 있어 들어간 본 집, 여기서 간단한 음료수를 즐길 수 있다.

 

 

 

 

 

 

 

 

 

 

 

 

 

 

 

 

오랜 옛적의 마을 우물이었나 보다. 복원만 해 놓았다.

 

 

 

 

 

 

 

 

 

 

 

 

 

 

 

 

 

 

 

 

 

 

 

 

 

 

 

 

 

 

 

 

 

서백당(書百堂)

중요민속자료 제23호로 지정된 서백당은 안골 중심의 산중턱에 자리잡은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으로

 이 마을의 입향조라 불리는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 1433~1484)공이

성종 15년(1454년)에 지은 월성(月星) 손씨(孫氏)의 종가집이다.

서백당(書百堂) 또는 송첨이라 부르며, 서백당(書百堂)은 하루에 참을 인(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堂號)이다.

 

 

 

서백당 의 마당 뒷쪽에 또 다른 건물 한채가 있고 그 앞에는 족히 몇백년의 수령을 지닌 고송이 서 있다.

 

 

 

 

 

 

 

서백당의 정문이다. 주인이 거주하고 있었다.내가 마지막 객이었나 보다.

내가 나오자 마자 바로 대문을 닫았다.

 

 

 

 

서백당 외에도 양동마을에는 국가지정 대표 문화재로 국보 제283호로 지정된 통감속편[通鑑續編],

보물제 411호로 지정된 무첨당, 보물제 442호로 지정된 관가정(觀稼亭),

보물제1216호로 지정된 손소영정[孫昭影幀] 등이 있지만 보경사와 내연산12  폭포를 보고 경주로 돌아가는 길이라

몸도 지치고 시간이 없어 세세히 둘러 보지는 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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