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안압지 야경

2014. 9. 14. 19:23명승지

 

 

 

 

 

경주 안압지(雁鴨池)의 야경(夜景)

한가위 날 느지막하게 추석 차례를 지내고 내연산의 관음폭포가 생각나 경주로 내려갔다.

모처럼 맞는 대체휴일, 나에게는 큰 보너스와 같다.

경복궁의 야경은 잘 알려져 있지만 경주 안압지의 야경도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경주 안압지의 야경에 대한 포토매니아들의 사진을 보니 한번쯤은 경주를 다녀와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리가 멀고 시간이 없어 여태껏 망설였는데 이번 대체휴일의 하루가 그 호기심을 채우는데 한 몫을 했다.

 

한국 인구의 절반이 움직인다는 한가위 명절.

귀성객들로 인한 고속도로 정체는 해마다 익히 습관화 되어있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추석 당일이라 내려갈 귀성객들은 거의 다 내려갔을 것이라 편하게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내 생각만큼 고속도로는 한산하지 않았다. 곳곳이 정체였다. 경주까지 무려 10시간 가까이 걸렸다.

 

 

 

 

 

옛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황룡사지에 위치한 안압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인 문무왕(文武王) 14년 674년에 만들어 진 연못이다.

큰 연못 가운데 신선(神仙)사상을 상징한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무산(巫山)을 나타내는 12개 봉우리로 구성된 산을 만들었다고 기록에 전한다.

섬과 봉우리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동물을 길렀다는 우리의 자랑 옛 신라의 원지(苑池)이다.

 

 

 

 

 

왕궁에 딸린 연못으로 서쪽에 별궁인 임해전이 있으며,

동쪽과 북쪽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고, 연못 안에는 3개의 성(섬)이 있다.

별궁인 임해전과 여러 부속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을 바라보면서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던 곳이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등에 나타나고 있다.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 이곳이 월지(月池)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신라 왕궁인 반월성(半月城)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며, 임해전의 이름도 원래는 월지궁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조선의 묵객(墨客)들이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삼국사기에 동궁을 임해전(臨海殿), 즉 바다에 면한 건물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기에서 안압지는 바다를 상징한다

 

 

 

 

 

@경주 황룡사지 서남 327km에 있는 문무왕 때 만든 안압지는

원래는 화려한 극치를 보여든 임해전(臨海殿) 앞에 판 못으로

신라의 지도를 본 딴 것이라고 한다.

지금 못가에 서있는 임해정(臨海亭)은 1926년 군수 박광렬(朴光烈)의 발의로 지은 것이며

옛 임해전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다.

 

 

 

 

 

@문무왕 674년, 삼국을 통일하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궁궐도 커지게 되어 신라 왕궁의 별궁이며,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안압지 남쪽에 신라 궁인 월성이 있어

이곳까지 자연스럽게 커진 것으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안압지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궁 안의 못>으로만 기록되었다.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었다.

본래 이름은 <달이 비치는 연못>이란 뜻의 <월지(月池)>라고 불렀다.

 

 

 

 

 

이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고

그 때부터 기러기 <안(雁)>자와 오리 <압(鴨)>자를 써서 <안압지>로 불리게 되었다.

 

 

 

 

안압지를 볼 때 주목할 만한 것은,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총 둘레 1000m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어느 곳에서 보아도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신라인들의 세련된 창의성이 돋보이며,

못 안에는 동양의 신선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섬 세 개와 열두 봉우리를 만들었고,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 장치나 배수구 시설 또한 교묘하고 세심하다.

 

 

 

 

또한, 신라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기와류, 화려한 금속 공예품들도 주목할 만하지만,

나무배와 나무로 만든 각종 건축 부자재, 나무편을 얇게 깎아 글을 기록한 목간 등도 매우 귀중한 생활 유물이다.

이 곳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만 무려 3만여 점으로, 왕실과 귀족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였던 실생활용품이 대부분인데,

예술성이 뛰어난 명품 700여 점을 선별하여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하고 있어

단일 유적지인 안압지에서 얼마나 대량으로 유물이 출토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전각

첫 번째 전각 안에 전시된 모형은 현재 월성 서남쪽에 복원중인 월정교의 모습인데,

월정교는 통일신라의 전성기였던 경덕왕 시절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의 궁궐 월성 남쪽에 있는 천을 건너던 다리이다.

안압지에는 현재 연못과 세 개의 건물이 복원되어 있지만,

발굴 당시 이곳에서, 무려 스물여섯 곳의 건물터가 발견되었는데

앞쪽에 보이는 주춧돌은 모두 건물들이 있었던 자리로,

현재 복원된 세 개의 건물은 안압지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고 한다.

 

 

 

 

 

안압지 안에는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용왕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안압지를 발굴 할 때 발견 된 <심신용왕> 이란 글씨가 새겨진 토기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심신용왕이란,<새로운 제물을 용왕께서 굽어 살펴 주소서>라는 뜻으로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도 이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임해전으로 추정되고 있는 두 번째 전각은

당시 안압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모형과 연못을 발굴할 때 나온 유물들의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어

크고 화려했던 안압지의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연못 바닥에서는 무덤 등에서 출토되는 껴묻거리와 달리, 각종 토기와 특이한 기와,

나무로 만든 빗, 글씨가 쓰인 나뭇조각 등의 생활용품들이 많이 발굴되어

통일신라시대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선도 발견되었는데, 이 목선은 배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입수구

안압지 서쪽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가 있는데, 이곳에는 백제의 조경기술 녹아 있다.

백제는 일찍이 연못을 꾸미는 조경기술이 발달해 부여의‘궁남지'를 비롯해 많은 연못들을 만들었다.

 

 

 

 

 

안압지에도 백제의 조경기술이 접목되어 신라 속에 고구려,

백제의 문화가 녹아들면서 지금처럼 아름답고 과학적인 연못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안압지의 물길이 시작되는 입수구는 물을 끌어들이는 장치인데,

북동쪽에 있는 하천에서 물을 끌어와서, 이 장치를 거쳐 안압지로 들어간다.

마치 거북이를 음각한 것 같은 두 개의 수조가 아래위로 위치해 있는데,

이런 구조는 물에 섞여 있는 자갈이나 모래를 걸러내기 위한 것이다.

 

 

 

 

 

물은 수조를 지나 안압지 안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낙하지점에 판판한 돌을 깔아서,

바닥의 침식과 구정물이 생기는 것을 방지했다.

그리고 입수구 근처에 작은 인공 섬은 입수구를 통해 들어온 물의 흐름을 느리게 만들어서,

연못의 침식을 막아주고 물이 자연스럽게 순환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못의 반대쪽에는 물을 배출하는 배수구가 있고 배수구에는 3개의 구멍이 세로로 나 있는데,

이 구멍에 나무마개를 끼워 수위를 조절했다. 이렇게, 안압지는 세심한 부분까지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이다.

 

 

 

 

 

@주령구

1975년, 안압지를 발굴하던 중, 연못 바닥의 진흙 속에서 <주령구>라는 나무로 만든 주사위가 발견되었는데,

아이 주먹크기 정도의 14면체 주사위로 참나무로 만들어진 이 주사위 위에는 각 면마다 재미난 벌칙들이 새겨져 있었다.

술 석잔을 한 번에 마시는 삼잔일거 (三盞一去), 여러 사람 코 때리기 벌칙으로 중인타비 (衆人打鼻),

노래 없이 춤추기 벌칙인 금성작무 (禁聲作舞) 등 각 14면에는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는데

특히 신라인들의 음주 습관과 풍류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주령구는 정다면체가 아니기 때문에 각 면이 나올 확률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목제 주령구를 이루고 있는 면의 넓이를 계산해 보면 정사각형 면이 육각형 면과 거의 같아서

각 면이 나올 확률은 거의 비슷한데 이런 주사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한다.

 

 

 

 

 

한편, 출토된 진품은 유물 보존 처리도중 불타 버렸고, 지금은 복제품만 남아있다. 

@안압지 출토 유물

유물은 와전(瓦塼)류를 포함하여 3만 여 점이 나왔다.

안압지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부장품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신라 무덤의 출토품과는 달리

왕실과 귀족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였던 실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출토 유물 가운데 예술성이 뛰어난 명품 700여 점을 선별하여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하고 있다.

단일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로 전시관 하나를 다 채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출토된 나무배는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외에도 많은 것이 발굴된었다. 

목간, 금동, 초심지 가위, 금동삼존판불, 금동 봉황 장식, 금동비로자나불입상문고리 장식, 목제 주령구

※  임해전지(안압지)는 2011년, 7월에 경주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자료출처: 문화재청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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