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광한루원

2014. 4. 23. 21:27명승지

 

 

 

남원 광한루원(廣寒樓苑))

@4월의 두 번째 토요일 구례로 떠났다. 일요일 당일코스로 다녀올까 생각해 보았지만 너무 먼 거리라서 구례에서 일박을 하기로 하고 토요일 오후에 출발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늦은 밤에 도착한 구례는 섬진강 벚꽃축제기간이라 숙박할 장소를 찾지 못해 부득이 순천으로 빠저서 일박했다. 아침 일찍 모텔을 나와 사성암과 화엄사와 연기암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수락폭포를 들렸다. 돌아오는 길을 검색했더니 남원 광화루원가 있기에 들려 보기로 했다. 벚꽃 축제로는 조금 지난 것 같은데 여기도 벚꽃축제를 하는 것인지 광한루원 주변은 온통 사람과 차들로 북새통이었다. 귀경길이 멀어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모처럼 내려온 먼 길이라 수박 겉핱기라 할지라도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이상기온으로 금년 벚꽃은 일찍 피고 일찍 진다고 하지만

4월의 남원 봄은 아직 여운이 있었다. 벚꽃으로 수놓은 차도와 푸른 하늘.

연못 위에 어리는 광한루원의 누각들의 풍광이

귀경길 지체를 걱정하는 내 조급한 마음을 위로해 준다.

 

 

 

 

 

 

  

광한루(廣寒樓)는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보물 제 281호 지정된 우리나라 제일의 누각으로 일컬어지는 조선시대의 누각이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자연과 어우러져 쉴 수 있도록 경치 좋은 곳에 지은 건물을 말한다. 원래는 1419년 남원에 유배된 황희 정승이 선조인 황감평이 지은 일재라는 서실을 헐고 그곳에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세종26년(1444년) 전라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한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강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烏鵲橋)>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에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한,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광한루와 방장정)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봉래(蓬萊:금강산)섬, 방장(方丈: 지리산)섬, 영주(瀛州: 한라산)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영주섬과 영주각) 

현재의 광한루는 인조4년(1626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영주각)

 

광한루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누마루 주변에는 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4면 모두 문을 달아 놓았는데,

여름에는 사방이 트이게끔 안쪽으로 걸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한 누의 동쪽에 있는 앞면 2칸·옆면 1칸의 부속건물은 주위로 툇마루와 난간을 둘렀고

안쪽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뒷면 가운데 칸에 있는 계단은 조선 후기에 만든 것이다.

 

 

 

 

춘향전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넓은 인공 정원이 주변 경치를 한층 돋구고 있어

한국 누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방장정, 영주각, 방장섬)

 

 

(방장정) 

 

 

 

 

 

 

 

 

 

(오작교)

 

 

 

 

 

 

방장섬이다. 놓인 다리가 너무 평면적이다. 구름다리였다면 더 운치를 더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신선이 사는 방장섬인데. 도교에서 구름은 천상으로 오르는 다리로 여기는데. 

 

 

 

 

 

 

 

 

 

 

 

 

 

 

남원의 춘사월이라

꽃은 피고

버들은 푸른데

 

님 떠난 오작교는

흐르는 물소리

실없는 길손뿐이다.

 

바람 없는 방장섬

푸른 대는 저 홀로

올연한 데

 

정자에 서린 향기

옛 추억 못 잊어

연못 위에 드리운다.

 

아지랑이 피어나듯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

님의 옛 향기련가

 

누대는 의연하고

하늘빛 물빛도

저토록 푸르건만

 

귀 달구던

광한루의 옛 이야기

봄꿈처럼 아련하구나

  (광한루에서/현림)

 

 

 

 

 

 

 

 

 

 

(완월정)

@완월정(玩月亭)의 완월(玩月)이란 세인들이 달을 벗삼는다는 말이며,

 1971년 광한루를 확장하면서 이 연못에 누각을 세우고

천상의 달과 수중의 달을 그려보는 정자로서

해마다 남도향토문화제인 춘향제를 펼치는 무대가 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옥화상제게 계시는 옥경(玉京)에는 광한전이 있고 은하수 위에 오작교가 놓여있다.

계관(달나라 궁전)의 절경 속에서 선녀들이 노닐었다고 한다.

이를 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廣寒樓)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다.

완월정은 이 달나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누각이다.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통적 조선 건축양식이다.

 

 

@월매집(月梅집)

월매는 춘향전의 주인공인 춘향이의 어머니이며, 월매집은 춘향이와 이도령이 백년가약을 맺은 유서깉은 곳이다. 고전소설 춘향전의 배경이 된 이 월매집은 월매가 거처하는 안채와 춘향이가 거처하는 부용당을 지어

조선시대 전통가옥으로 꾸며 놓았다.  

 

 

 

 

 

(행랑채)

 

 

(규방)

 

 

 

 

 

서재 

 

 

(춘향이와 이도령이 백년가약을 맺은 규방) 

 

 

 

 

 

 

 

부엌에서 불을 지피는 향단이

 

 

 

 

 

 

 

 

 

 

 

 

 

 

 

 

 

 

 

 

 

 

 

갈길이 멀어 춘향관을 스킵하고 서문으로 나왔다. 서문쪽 대장간이 정겹게 느껴진다.

조금 현대식으로 탈바꿈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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