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성기행(5/7) 무이궁

2014. 3. 8. 22:07해외여행

 

 

 

복건성기행(5/7) 무이궁(武夷宮)

무이궁은 주희기념관 옆 대왕봉 남쪽에 있는 무이산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道敎)의 궁전으로

회선관(會仙館), 충우관(沖佑館), 만년궁(萬年宮)으로 불렸다.

도교가 유행한 것은 당(唐) 송(宋) 시대인데 무이궁은 당(唐)나라 때 742~755년에 건립되었으며

송(宋)나라 때에는 송의 6대 도관의 하나로 곱힐 정도로 웅장했으며

무려 300여칸에 이르는 도관으로 나라에서 <충후만년궁>이란 사액까지 받았던 대도관이라고 한다.

 

 

@당송(唐宋)시대에는 도교가 융성함에 따라 많은 도관이 건립되었는데

당나라 때에 건립된 현도관(玄都觀), 숭원관(崇元觀)과

송대에 건립된 상청태평궁(上淸太平宮), 옥천소응궁(玉淸昭應宮)이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네 절에서는 대개 대웅전(大雄殿), 관음암(觀音庵)과 같이 큰 전각들은 전(殿)을 사용하고

작은 것은 암(庵)으로 표기하는데 도교에서는 총괄하여 도관(道觀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도관은 또한 시대에 따라 도장(道場), 궁관(宮觀), 궁(宮), 총림(叢林),

묘(廟), 각(閣), 원(院)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무이궁 입구에는 남북으로 300m 정도 긴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송대의 건물을 본떠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송가(宋街)라는 패방이 걸려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대왕봉이 보이고 

조금 더 나아가면무이고대명인관(武夷古代名人館)이란 현판이 걸린 패방이 나온다.

여기에 과거에 무이궁이 있었던 모양이다.

 

 

입구에 걸린 지금의 패방(牌坊)은 송가(宋街)이지만

송나라 때에는 패방이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송나라 때에는 유학자들이 가을에 이곳에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만년궁, 삼청전, 용정 등이다.

현재의 만년궁에는 무이산의 명인들이 모셔져 있고

고대 무이산에 거주했던 원주민 월족(越族=閩族)관련 그림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초입에는 망선교(望仙橋)라는 다리가 있고, 본전인 삼청전(三淸殿)까지는 3겹의 문이 있다.

본전에 해당하는 삼청전은 무이정영(武夷精英)이란 현판이 걸려있고

그 앞에는 충정신도비(忠定神道碑), 동천선부(洞天仙府), 명공일청(明㠫一淸)이란

고대 비석 3점과 현재 문호인 곽말약(郭沫若)의 글이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다.

 

 

@무이고대명인전(武夷古代名人館)은 만년궁으로

주희의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교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마당 중앙에는 <민월부형정(閩越釜形鼎)>이라는 거대한 솥이 걸려 있다.

 

 

민월은 민월국(閩越國)을 의미하며 동월(東越)이 세운 나라이다.

동월은 중국의 진(秦), 한(漢) 시대의 푸젠성[福建省(복건성)] 민장강 유역에서 활약한

월족(越族)이 세운 국가(BC 202~BC 135)로 중국 춘추시대 이후 화남(華南)에서

베트남 북부에 걸쳐 널리 분포했던 민족이다.

 

 

민월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진나라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월왕 구천(句踐) 후손인 추무제(鄒無諸)를 폐하고, 이곳에 영중군(郢中郡)을 설치하였는 데

진나라 말기에 추무제가 한(漢)나라에 협조함에 BC 202년 한나라 고조는 무제를 왕으로 삼고

동야(東冶)를 서울로 삼아 민월국(閩越國)을 세우게 하였다.

무제(無諸)의 후손인 영(郢)이 동구(東甌), 남월(南越) 등의 주변 국가를 빈번하게 침범하자

한나라 무제(武帝)가 군사를 동원하여 민월을 공격하였다. 

영의 동생 여선(餘善)은 영을 죽이고 한나라에 항복하였다.

얼마 뒤 여선은 자립하여 동월국(東越國)을 세웠는데, 한나라에서도 이를 인정하였다.

 BC 110년 동월국도 건국한 지 약 20년 만에 멸망하였다.

 

 

@주전 동쪽에는 <천고풍류(千古風流)>라는 편액이 걸린 3칸자리 건물이 있다.

그 앞에는 주희(朱熹)가 심었다는 수령 900년이 된 고목 송계(宋桂)가 있다.

 

 

송계는 계수나무가 아니라 <금목서>라는 나무이다.

@송계가 있는 좌우측에 있는 2개의 비석은

무이산에 머물던 어느 시인의 시비이며

다른 하나는 송대 관료로 여기에 머물었던 사람으로 <영만정(詠幔亭)>이란 비(碑)라고 한다.

 

 

 

 

 

무이정영 오른쪽에 만세유방(萬世流芳)이란 편액을 단 건물인데 용도를 알 수 없다.

아래사진은 무이궁내 박물관에 전시된 무이구곡관련 사진들이다. 

 

 

 

 

 

가축까지 잡아 먹었다는 무이산에서만 발견되었다는 특이한 개구리인데 전시된

사진이 너무 흐리고 모호하여 그 형상을 잘 알 수 없다.

 

(대왕봉을 배경으로 한 월족)

 

@무이궁은 무이산에서 오래 도관이라고 하는데 불행하게도 도교와 관련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아래사진은 무이궁 박물관에 전시된 월족의 고대 장례문화인 

가학선관(架壑船棺)과 홍교판(虹橋板)의 흔적을 담은 것들이다.

 

 허공에 배모양으로 생긴 것이 가학선관이다.

보통 티벳트와 같은 산악지대의 고대 장례의식도 이와 유사한 풍장(風葬) 의 습관이 있는데

시신을 관이나 짚에 말아서 바위 굴이나 야산에 방치하여 자연풍화시키는 것이다. 

무이산에서 거주한 월족은 당시 유행하던 신선사상과 관련하여 그런지 높은 암굴에다 암장(巖葬)하였다고 한다.

그 관을 가학선관이라고 하고, 그 선관을 받치는 바침대를 무지개처럼 만들었기에 홍교판이라고 했다. 

 

 

 

고대 선관과 홍교판

 

 

 

@도교를 종교로 처음 수립한 사람은 후한(後漢)말의 장릉(張陵)이라고 한다.

그 후 북위(北魏)의 구겸지(寇謙之.365~448)에 이르러 노자를 교주로,

장릉을 천종(大宗) 으로 하여 도교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

그리고 도교의 여러 경전을 종합 정리하여 도장(道藏)이라고 했다.

 

가학선관

 

홍교판

 

@도교에서 받드는 신은 잡다하고 시대에 따라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널리 제사지내는 신으로는 원시천존(元始天尊)과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있고

이는 다시 무형천존(無形天尊)과 무시천존(無始天尊), 범형천존(梵形天尊)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노자는 노군(老君)으로 원시천존의 화신으로 여긴다.

그 밖에도 현천상제(玄天上帝, 북극성) 무창제군(文昌帝君, 후토(后土) 서낭신(城隍神)

조군(竈君: 五祠 중 한분임) 화합신(和合神), 삼관(三官), 재신(財神), 개격신(開格神)

동악대제(東嶽大帝: 泰山神) 등 많은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다.

무이산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무이궁에는 이런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참고로 도교에서 말하는 도사(道士)라는 호칭은 원래는 도술(道術)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으나,

 나중에 도교신도를 가리키는 말로 변한 것이다.

한대(漢代) 동중서(董仲舒)의 〈춘추번로 春秋繁露>의 순천지도편(循天之道篇)에 나오는

 '고지도사'(古之道士:옛날의 도사)‘라는 말과 〈한서 漢書〉 왕망전(王莽傳) 하편에 나오는

 '도사서문혜군'(道士西門惠君) 등은 모두 도술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도교에서 고대의 신선방술(神仙方術)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후로 도교신도를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도사는 「황관(黃冠)」·「우사'(羽士)」「우객'(羽客)」「'우의'(羽衣)」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여자도사는「여관(女冠)」이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우(羽)자가 많이 사용된 것은 도교에서 바람을 싫어하고 구름을 숭상했는데

이는 구름을 천궁으로 가는 계단으로 여겼기 때문에 새깃을 뜻하는 우(羽)를 사용한 것이다.

또한 경전(經典)과 도교계율에 능통한 도사를

<법사(法師)> 또는 <율사'(律師)>라고 하였으며, 수양을 많이 쌓고 덕망 있는 도사를 <연사(煉師)>라고 했다.

그리고 위의(威儀)에 숙달된 도사를 <위의사(威儀師)>라 했고,

도행이 넓고 깊은 도사들은 <선생(先生)>이라 불렀고 <진인(眞人)>이라고 불렀다.

경전을 익힌 정도에 따라 도사 사이에도 다른 등급과 호칭을 두고 있다.

송대(宋代) 이후로 도사에는 출가도사(出家道士)와 재가도사(在家道士)의 구분이 생겼는데,

도관(道觀:도교사원)에 거주하며 결혼하지 않은 채 종교생활에 전념하는 전진파(全眞派)의 도사를 <출가도사>,

결혼할 수 있는 정일파(正一派)의 도사를 <재가도사>라 했다.<자료출저: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