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성기행(4/7) 무이구곡(1/2)

2014. 3. 1. 13:52해외여행

 

 

 

복건성기행(4/7) 무이구곡(武夷九曲)(1/2)

 

유네스코 세계복합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중국 10대 명산의 하나인 복건성(福建省)에 위치한 무이산(武夷山)은

36개의 봉오리와 37(99?)개의 암봉을 자랑하는 산으로 중국 최고의 차로 꼽히는 대홍포(大紅袍) 차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대홍포차는 무이산 구릉의 절벽에서 바위의 이슬을 먹고 자란

수령 350년 이상 된 녹차나무에서 딴 것으로 원나라 때에는 황제의 공납으로 헌납 되어던 차라고 한다.

대홍포차는 차 중에 성인이라고 불리며(茶中之聖)

일년에 고작 6~7량(300~350g) 밖에 생산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대홍차를 생산하는 차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데 모두 6그루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동주에서 공자가 나왔고 남송에는 주자가 있으니 중국의 옛 문화는 태산과 무이로다 라는 말과 같이

무이산의 무이정사는 주자가 수학하든 곳으로 관광코스이기도 하지만

무이산의 최고봉인 천유봉 등정과 함께 구곡문화(九曲文化)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무이산의 절경 9구비를 강을 따라 유람하는 것이 무이산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강의 총 길이 62.8km 이지만 관광코스는 9.5km. 면적은 526평방키로미터 중 8.5평방키로미터가 된다.

삼보산(三保山)에서 발원하여 무이궁이 있는 1곡에서 성촌까지 9.5km에 달하는 구간이 관광명소가 된다.

<주파이>라고 불리는 대나무뗏목(竹筏/ 竹排)으로 만든 나룻배를 타고 유람하는 하는데

쥬파이는 해발 900m 이하에서 자란 대나무 16개를 엮어 만든 뗏목으로

그 위에 6개의 의자를 설치한 것으로 두 명의 사공이 앞과 뒤편에서 일조가 되어 운항한다.

현재 운항 뗏목수는 300척 정도이며 사공은 600명 그 중 80명은 여자라고 한다.

쥬파이 한 대에는 앞과 뒤에 각각 사공이 붙어 긴 대나무를 노를 삼아 운항하며

관광은 역으로 9곡에서 시작하여 1곡으로 마감한다.

강은 9곡에서 1곡으로 흘러가지만 무이구곡이란 곡명(曲名)은 역으로

무이궁이 있는 쪽을 1곡으로 시작하여 9구비를 명명하였다.

 

 

내가 점점 어질어저서 마음을 알게 되니

산수를 사랑하게 되는구나.

푸른 숲은 고금이 없고

시퍼런 계곡물은 하루에도 천리를 간다.

我漸仁知心 偶自愛山水

蒼崖無古今 碧澗日千里/(주희)

 

 

1179년 백록동서원을 일으켜 서원교육의 바람을 일으켰던 주희(朱熹 1130~1200)는

1183년 53세에 무이산에 들어와 무이정사(武夷精舍)을 짓었다.

그리고 여기에 은거하면서 무이정사 주변의 누정(樓亭)과 지형을 시로 쓴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1184년에 무이산 무이계(武夷溪)의 구곡 경치를 읊은 무이도가(武夷櫂歌) 즉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다.

이는 곧 구곡문화(九曲文化)의 바람을 일으킨 원조로서

우리나라의 조선조 학자인 율곡 이이가 해주석담에 은거하면서

무이정사가 있는 은병봉을 본따서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짓고

무이구곡가를 본따서 고산구곡가(孤山九曲歌) 지었고,

우암 송시열선생이 또한 화양구곡을 지은 것도 모두가

주희로부터 비롯된 것임은 잘 알려진 일이다.

 

 

성촌진(星村鎭) 나루터에서 쥬파이의 유람은 시작된다. 춘절이라서 그런지 관광 나온 내국인들이 너무 많다.

 9곡의 출발지며 상류인 백사탄(白沙灘)이란 여울은 온통 사람 반 주파이 반이다.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주파이(竹筏=竹排)들이 총 가동된 모양이다. 시장통 같다.

가물어서 그런지 강수량은 적은데 얕은 물길에 좌우 앞뒤로 이중 삼중으로 주파이가 엉켜서 출발한다.

성촌진 나루터의 풍광을 잡을 여유도 없다. 한 참을 내려가니 조금씩 시야가 열린다.

 

 

백운암(白雲岩)이 보인다. 백운암(白雲岩)은 남송 때 학자인 여조겸(呂祖謙)이

여기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다고 한다.

 

 

백운암 옆 바위 중간에 굴이 있는데 극락국(極樂國)이라 부른다.

극락이란 불교의 최고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이 극락국은 천애절애(天涯絶崖)인 바위 중간에 있는 굴이다.

오르기가 무척 힘들어서 무릎으로 기고 뱀처럼 엎드려서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슬행사복(膝行蛇伏)>의 길이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백사탄 여울 위쪽에 있는 바위다. 청와석(靑蛙石)이라고 한다.

바위 색이 푸른 색이 아니고 검다. 형상은 그럴듯하다.

 

 

강을 따라 주파이는 8곡을 향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거대한 바위가 강을 가로 막고 있다.

고루암(鼓樓岩)이란 바위다. 마치 북의 옆 모습처럼 평평한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고루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루암 밑에는 사자바위, 거북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앞이 가려 찾지 못했다.

 

고루암(鼓樓岩) 뒤편에 우뚝 솟은 바위다. 구곡도를 보면 인면석(人面石) 같기도 한데..

 

 

삼앙봉(三仰峰)이다. 삼앙봉은 해발 717m로 무이산에서 제일 높은 봉오리라고 한다.

산봉오리가 첩첩이 계단식으로 쌓여 삼앙봉이라고 했다.

 

 

품자암(品字岩) 바위다. 8곡 북쪽에 위치하며 3개의 바위가 品자 모양의 봉오리를 이루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삼교봉(三敎峯)이라고도 하는데 삼교는 유교(儒敎), 불교(佛敎), 도교(道敎)를 가리킨다.

유가(儒家)로는 주자의 무이정사를, 불가(佛家)로는 극락국을, 도가(道家)로는 도원동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반석(磨盤石)이란 바위다. 멧돌바위라는 뜻이다. 이명으로 대소늠석(大小廩石) 늠석암(廩石岩)이라 하며

늠(廩)은 고대식량창고로서 신선들의 곡물 창고를 의미한다고 한다고 한다.

마반석 밑의 담은 방생담(放生潭)이라 하고 주변에 수어석(水魚石), 낙타봉(駱駝峰), 상비암(象鼻岩)등의

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찾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9곡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바위에 구곡이란 글과 주희의 무이9곡 중 9곡의 시가 암각되어 있다. 

 

九曲將盡眼豁然 (구곡장진안활연)

桑麻雨露見平川(상마우로견평천)

漁郞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除是人間別有天(제시인간별유천)

 

아홉 굽이 모두 다해 눈이 훤히 열리니

이슬 맺힌 뽕나무 삼나무 평천을 보누나

뱃사공이 다시 무릉도원 길 찾지만은

이 인간 별유천지를 빼놓을 수 있으랴

 

 

부용탄(芙蓉灘)이다. 이 부용탄은 8곡으로 이어진다. 

 

 

 

주파이는 대나무 7~8개를 엮어 만든 나룻배 2척을 연결한 것이다.

 

상하수구(上下水龜)라 불리는 바위다. 강가에 두마리 거북이가  있는 형상을 의미한다.

 

            

 

 

 

8곡은 물살이 빠르고 동물형 바위들이 많다. 

8곡의 부용탄을 지나면 7곡의 달공탄(獺控灘)으로 이어진다. 

 7곡에는 이런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상수사석(上水獅石)인듯 한데..

 

 

 

 

 

 

 

 

 

 

 

 

 

좌측에는 지나 온 품자암이 보이고 우측에는 쌍유암이 나탄다.

 

쌍유봉(雙乳峰)을 크로즈업했다,

 쌍유봉은 옥화상제의 둘째 부인이 첫째 부인의 투기에 의해 독수리에 의해 죽음을 당해 땅으로 떨어졌는데

그녀의 두 젖가슴이 바위가 되어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다.

또 그 형상이 연꽃 봉오리가 나란히 있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병연봉(幷蓮峯)이라고도 한다.

 

 

 

7곡에서 바라 본 갱의대(更衣臺) 정상 뒤 모습이다.

신선이 잔치에 갈려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은 곳이라고 하며,

선인이 신선이 되어 승천한 곳이라고도 한다.

 

 

 

7곡의 도원동(桃源洞)입구인 것같다.

 

선조대(仙釣臺)다. 신선이 낛시를 드리웠다는 바위다.

 

 

 

 

무이구곡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6곡에 들어서면 앞은 미란주라는 백사장이,  뒤로는 벽풍같은 바위가 있다. 

신선의 손바닥과 같다고 해서 선장암(仙掌岩)이라 불리는 바위다.

선장암 옆은 향성암(響聲岩)이고 그 뒤에는 은병봉(隱屛峰)과 접순봉(接筍峰)이 연이어 있다. 

주희의 무이정사가 있는 곳도 여기다.

선장암은  절벽에 물이 흘러 내려 만들어 진 골이 마치 길다란 천을 햇볕에 말리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쇄포암(曬布岩)이라고도 불리는 천애절벽의 병풍바위다.

쇄(曬)는 햇볕에 말린다는 의미다.

그 밑에 만길이나 되는 바위란 뜻을 지닌 벽립만인(壁立萬仞)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벽에는 도교의 이상향인 진원화로 올라가는 동네라는 뜻을 지닌

승진원화지동(昇眞元化之洞)이란 글도 새겨져 있다.

 

 

 

 

 

선장암과 앞에 있는 북랑암(北廊岩)

 

 

6곡에는 선장암을 비롯하여 거대한 바위가 둘러쳐저 있다. 

6곡에 들어서면 양쪽에 높은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데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가 절벽에 메아리가 되어 멀리 퍼저나간다는 향성암(響聲岩)이 있다.

향성암 절벽에는 송(宋), 원(元)대의 마애석각 20개가 있다.

그 중에서도 주자가 쓴 서자여사(逝者如斯)란 글도 있다.

서자여사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물의 흐름에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을 인용한 것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나무(南無)는 귀의를 의미함으로 아미타불에 귀의함을,

공곡전성(空谷傳聲)은 텅빈 골짜기가 소리를 전한다는 뜻이다.

무이산에는 이런 류의 글 외에는 불교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6곡을 돌아서면서 본 향성암의 뒷편 모습 

 

 

 

 

가운데 보이는 봉오리가 은병봉이고 그 옆은 죽순봉 선장암 위에 정자는 관폭정이다.

 

  

선장암, 정말 그대한 바위다.

 

좌측은 선장암, 우측은 은병봉과 수월정이다.  

 

아래 3컷은 위의 풍경을 천유봉 등정시 하산 할 때 담은 사진이다.

 

 

 

 

 

6곡에서 바라 본 은병봉

 

앞의 정자가 석소정인 모양이다.

 

 

6곡을 돌아나오면서 본 은병봉

 

 

 

 

 

 

 

 

앞의 봉은 갱의대(更衣臺)이고 뒤에 삼각형으로 우뚝 솟은 봉은 천주봉(天柱峰)이다.

 갱의대는 신선이 잔치에 갈려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은 곳이라고 하며,

선인이 신선이 되어 날아 간 곳이라고도 한다.

갱의대 중간 벽면에 옥황대천존(玉皇大天尊)이라는 마애각이 있다고 하는데 찾지 못했다.

전설에 의하면 위(魏)나 왕자 건(騫)이 여기서 옷을 갈아입고 하늘로 승천했다고 한다. 

천주봉은 주담봉(酒壜峰)이라고도 하는데 주담은 호리병같은 술단지를 의미한다.

주변에 만대봉(晩對봉)과 시검석(試劍石)이 있다.

 

 

 

6곡을 빠져나오면서 돌아 본 선장암과 은병봉

 

6곡을 빠져나와 5곡으로 향한다.

무이산(武夷山)은 원래 무이산(武彛山)이였는데

신선 무이군(武夷君)이 살아다 하여 무이산(武夷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무이산 계곡은 一曲 승진동(升眞洞), 2곡 옥녀봉(玉女峰), 3곡 선조대(仙釣臺), 4곡 금계동(金鷄洞)

5곡 무이정사(武夷精舍) 6곡 선장봉(仙掌峰) 7곡 석당사(石唐寺) 8곡 고루암(鼓樓岩) 9곡 신촌시(新村市)이다.

 

노아탄(老鴉灘)에서 고추탄(古錐灘)으로 이어지는 5곡을 알리는 바위에는

유계진(幼溪津)글과 5곡의 시가 함께 암각되어 있다.

 

五曲山高雲深處(오곡산고운심처)

長時烟雨暗平林 (장시연우암평림)

林間有客無人識(임간유객무인식)

欸乃聲中萬古心(애내성중만고심)

 

오곡의 산은 높고 구름 기운 깊은데

오래동안 안개비 내려 평림이 어둡구나

숲 사이 나그네를 알아보는 사람 없는데

사공의 노래 소리 만고 근심 어렸네

 

 

 

 

 

갱의대를 돌아 5곡으로 들어간다.

 

천유봉을 등정시 지나갔던 첫번째 다리, 여기가 5곡의 시작인 모양이다.

 

 

 

저 멀리 다리 사이로 호리동(狐狸洞)이 보인다

 

갱의대를 지나 절벽 위에 작은 집이 하나 보이는 이 집이 있는 곳을 호리동(狐狸洞)이라 한다.

호리동이란 여우굴이란 뜻인데 주자를 사랑하여 사람으로 둔갑하여

주자의 제자 행사하다가 발각된 여우가 죽임을 당했는데

그 시신(屍身)을 거두어 주자가 여기에 묻었다고 한다.

또한 명(明)나라 때 학자이면서 선인인 남명정(南溟睛)이 여기서 학문을 닦고 수행했던 곳이라고도 한다.

 

 

 

 

 

 

 

목어석(目漁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