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성(福建省) 기행(4/7) 무이구곡(2/2)

2014. 3. 2. 09:41해외여행

 

 

복건성기행(4/7) 무이구곡(2/2)

 

산은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않고

물은 산이 없으면 맑지 못하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고,

봉우리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돈다.

 

山無水不秀 水無山不淸

(산무수부수 수무산부청)

曲曲山回轉 峯峯水抱流

(곡곡산회전 봉봉수포류)

무이산이 아름다운 것은 천유봉의 경관도 일품이지만 아홉구비 계곡을 강을 따라 돌아가며 즐기는 풍유의 멋 때문일 것이다.

 불행히도 무이산을 찾은 때가 만산이 물드는 단풍철도 아니고 흰 눈이 펼펄 내리는 동짓달도 아닌

2월 초순 춘절에 그것도 비가 오지 않아 가물은 강의 수량때문에 기대만큰 풍광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늬 산보다는 매력적인 산임을 느껴본다. 

가이드의 설명이 따라 주었으면 좋았으려만 중국인 가이드에 뱃사공 또한 내국인(중국인)이라 

 돌아와서도 자료정리하는데 이래저래 수고를 더할 수 밖에... 5곡을 지나 이제 4곡으로 향한다.

 

이 풍경은 천유봉을 오르면서 본 아래 풍경인 모양이다.

 

 

 

 

물형이 조개처럼 생긴 바위 아랫부분에 <응접불가(應接不暇)>와 소구곡<小九曲>>이란 글이 암각되어 있다.

응접불가란 무이구경의 풍경에 취하여 손님을 맞이 할 수 없다는 말인 것같고

소구곡을 적은 것은 이곳이 무이구곡 중의 압축된 절경임을 말하는 듯...

 

 

4곡은 거대한 암봉인 대장봉(大藏峰)이 자리하고 있다. 대장봉은 도교의 경전을 숨겨놓은 곳이라고 한다.

강변에 가학선관(架壑船棺)과 홍교판(虹橋板)이란 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가학선관이란 배 모양으로 만든 관을 높은 암벽에 매달거나 암장(岩葬)하는 것을 말하며

홍교판은 그 선관을 받쳐주는 무지개모양으로 된 목판바침대이다.

 

 

무이산 선관(船棺)은 지금부터 3800여년전 중국 상(商)나라 때 복건성의 원주민이었던 월족(越族)의

문화유산이라고 전해진다. 목관의 재료는 무이산에서 나오는 녹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 대장봉의 선관은 전설에 의하면 신선이 승천하면서 유골을 남겼다고 하는데

그 선관은 천년이 지나도록 비바람에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복건성지역은 고대 월족(越族)이 거주했다. 키가 왜소하였다고 하며 강을 끼고 살았으며

 배와 뗏목을 건조하는데 능숙했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의 주파이도 여기에서비롯된 듯 하다.

기원전 202년 한(漢) 왕조의 유방이 복건성 지역을 민월국이라 하여

월(越) 나라의 구천(句踐)의 후손인 무제(無諸)를 왕으로 봉하였는데

무제는 무이산에 성을 쌓고 반기를 들자 한무제가 즉위 첫해(기원전110)에 대군을 파견해 민월국을 멸망시켜버렸다.

월나라는 우리에게 오월동주(吳越同舟) 의 고사로 익히 알려진 그 나라다. 

현제 복건성의 약칭은 민(閩)이다. 민은 뱀을 토템으로 하는 민족의 후예촌락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런지 무이산관광특구에는 뱀술 전문점이 많이 있다.

 

 

대장봉에는 2개의 작은 동굴이 있다.

윗굴은 구과암으로 불리며 천년이나 된 벼가 썩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아랫굴은 금계동(金鷄洞)이라 하며 홍교판(虹橋板)과 선관(船棺)이 있다.

 

 

 

 

대장봉 아래는 물이 푸르고 너무 깊어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와룡담(臥龍潭)이 있고 

대장봉 벽면에는 유하비추(流霞翡翠)와 금계동(金鷄洞)이란 글이 암각되어 있다.

 

          

 

 

 

四曲東西兩石巖 (사곡동서양석암)

巖花垂露碧氈毿(암화수로벽전삼) 

金鷄叫罷他人見(금계규파타인견)

月滿空山水滿潭(월만공산수만담)

 

사곡의 양쪽에는 바위산이 두곳인데

바위틈속 꽃들에는 이슬 맺혀 더욱 곱고

금닭(金鷄) 울어 아침온다는데 본 이는 없었나니

달은 빈 산에 가득하고 물은 못에 가득하더라

 

4곡에는 거대한 암산인 대장봉과 선조대가 마주하고 있다. 위의 시는 무이구곡의 4곡을 노래한 것이다.

 대장봉 중간에는 금계동굴(金鷄洞)이 있어 새벽을 알리는 금닭이 있었다고 하고

그 아래에는 무이구곡에서 제일 깊은 와룡담(臥龍潭)이 있다.

새벽에는 금닭이 울고 밤에는 달빛이 와룡담에 비추는 사곡을 노래한 것이다.

사곡을 돌아들면 거대한 바위산이 바로 대장봉(大藏峯)이다. 도가의 대장경을 숨겨논 곳이라고 한다.

대장봉에는 두 개의 굴이 있다. 하나는 벼가 자란다고 하는 구과암이고

다른 하나는 선관을 모신 금계동(金鷄洞)이다. 무이산에는 400여개의 마애석각이 있다고 하는데

대장봉 건너편의 제시암(題詩岩)이 대표적이다.

무이동천(武夷洞天), 승진원화지동(昇眞元化之洞) 등의 글이 붉은 글씨로 암각되어 있다.

승진화는 도교의 이상향을 뜻하며 승진원지동이란 이상향으로 들어가는 골짜기란 뜻이다.

여기에 주자의 4곡의 가사가 새겨져 있다. 맞은 편에는

신선이 낛시대를 드리운 곳이라고 하는 선조대(仙釣臺)가 4곡의 북쪽에 있다. 대장봉은 맞은편에 위치한다.

 

신선이 낚씨를 했다는 선조대(仙釣臺)다,

 

 

 

제시암(題詩岩)

 

 

 

 

 

 

 

 

 

 

 

 

3곡의 소장봉(小藏峰)이다. 여기에도 가학선관(架壑船棺)과 홍교판(虹橋板)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4곡 와룡담을 지나면 3곡이다. 여기에도 대장봉과는 또다른 암봉인 소장봉이 있는 곳이다.

3곡이란 글과 무이구곡의 3곡의 시가 암각되어 있다.

 

三曲君着架壑船(삼곡군간가학선)

不知停棹幾何年(부지정도기하년)

桑田海水今如許 (상전해수금여허)

泡沫風燈堪自憐(포말풍등감자련)

 

삼곡에 매어둔 배를 그대는 보았는가

노젓기를 그만둔 지 몇 해인지 모르겠네

상전이 바다 된 것이 지금부터 언제런가

물거품 풍등 인생 가련하기 그지없다.

 

 

 

 

 

소장봉 아래 물형의 바위들인데 이름을 알 수 없다.

 

소장봉의 밑부분

 

 

 

 

 

 

 

사발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의 바위들이 연이어 있다. 특이한 모습이다.

 

 

 

 

 

 

 

 

2곡으로 접어들자 옥녀봉이 보인다. 좌측은 면경대 우측은 철판장이란 암봉이다.

 

오후 때라 해는 기울어 역광이지만 옥녀봉이 올연히 자태를 뽐낸다.

옥녀봉 아래에는 선녀가 목욕했다는 목향담(沐香潭)이 있다.

 

 

 

돌아 본 명경대의 뒤 모습

 

 

 

2곡을 알리는 이정표, 여기에도 2곡이란 글과 무이구곡의 2곡의 시가 암각되어 있다.

 

 

二曲亭亭玉女峰 (이곡정정옥녀봉)

揷花臨水爲誰容(삼화임수위수용)

道人不復荒臺夢(도인불부황대몽)

興入前山翠幾重(흥입전산취기중)

 

이곡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옥녀봉아 꽃처럼

예쁜 단장 누구를 위한 꾸밈인고

도인은 황대몽(荒臺夢)을 다시 꾸지 않는데

흥에 겨워 앞산드니 푸르름이 첩첩이네

 

 

 

 

옥녀봉을 뒤로 하고 2곡의 면경대(面鏡臺, 鏡臺라고도 부른다)로 향한다. 

왼쪽  봉오리는 두무봉(兜鍪峰)이다. 두무는 투구라는 말이다.

 

우측 철판장을 돌아서면 두무봉과 면경대가 나타난다.

 

 

 

오른 쪽은 면경대 왼쪽은 두무봉이다.

 

두무봉을 클로즈업했더니 여기에도 암굴이 있다. 무이산에는 이런 암굴이 많다.

 

거대한 암봉의 위용을 자랑하는 철판장이다.

 

철판장의 옆 모습 

 

올려다 본 철판장의 모습

 

 

 

1곡으로 접어들자 대왕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철판장을 다시 한번 돌아 본다.

 

 

무이산의 명물 대왕봉(432m)은 1곡 북쪽에 위치하며 왼쪽에 만정봉(曼亭峯)이 붙어있다.

만정봉은 해발 500m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오르기 힘든 봉오리이다.

전설에 의하면 진시황 2년 도가(道家)의 신선 무이군(武夷君)이 허공에 무지개 다리를 놓고

신선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고 한다.

대왕봉은 무이산에서 가장 웅장한 바위산으로 해발 300m 정도이며 옥녀봉 맞은 편에 있다.

 

 

대왕봉은 위왕봉(魏王峰), 사모암(紗帽岩)으로도 불리며 높이는 해발 300m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오르기가 힘든 봉이다.

 허리부문이 정상부분 보다 크고 사면이 깍아지른 절벽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1곡 대왕봉이 있는 여울가에는 암각된 글이 즐비하다.

 여기에 암각된 천애만학(千崖萬壑)이란 글도 그 중 하나.

천애만학이란 천길 절벽에 만개의 골짜기란 뜻으로

천애절벽의 거암(巨巖)에 둘러쌓인 깊고 깊은 산이란 의미다.

 

 

 

 

돌아본 2곡 옥녀봉이 있는 풍경이다. 가운데 봉이 옥녀봉, 왼쪽은 면경대,

오른쪽 언덕에 길게 늘어선 병풍같은 바위가 철판장이다.

철판장(鐵板障)은 옥녀과 대왕을 서로 마주 보지 못하도로 옥화상제의 명을 받고 내려온 철판도인이

도술로 병풍같은 장벽을 세워 둘이 마주 보는 것을 막았다고 하는 천애절벽의 암봉이다.

대왕봉은 이 철판장을 돌아가야 보인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관음보살이 옥녀봉 맞은 편에 면경대(面鏡臺: 鏡臺)을 두어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이나마 마주 비추어 바라볼 수 있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수광석

 

 

수광석(水光石)이란 불리는 바위이다. 일명 청천석(晴天石)이라고도 부른다.

이 바위 밑에 1곡이란 표시가 있고 난삽하리 만큼 많은 글이 있다.

진환별계(塵寰別界), 벽수단산(碧水丹山), 수신위본(脩身爲本), 명산대천 산수기관(名山大川 山水奇觀) 등등.

진환별계란 속세를 떠난 별유천지란 의미다. 벽수단산은 푸른 물에 붉은 산이라는 뜻이며,

수신위본은 몸을 수행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우리네 습행과 비교한다면 우리 산에도 너럭바위 같은 곳에 낙서(?)같은 것을 많이 보는데 

자기의 이름을 써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기에 비해 중국은 고사성어 또는 풍광을 읊을 글을 써놓은 것이 다르면 다르다고 할까.

낙서는 낙서인데 말이다.

 

 

 

 

 

 

 

 

 

 

 

 

 

무이구곡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하선(下船)할 때이다. 주파이는 무이궁 하선장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