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복건성 기행(2/7) 무이산(2/2)

2014. 2. 15. 00:14해외여행

중국 복건성 기행(2/7) 무이산(2/2)

 

 

 

 

 

 

 

 

 

 

 

천유봉 정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분빈다.

상점들이 즐비하고 2층 건물인  천유각(天遊閣)이 우뚝 자리하고 있다.

 천유각은 도교의 천궁(天宮)을 모방하여 지었다고 한다.

 일층에는 팽조(彭祖) 팽무(彭武) 팽이(彭夷)라는 삼부자의

조상(彫像)을 모시고 2층은 대만의 총통이였던 장개석부인의 기념관이다.

 

 

 

무이산(武夷山)이란 이름은팽조(彭祖)의 아들인 팽무(彭武) 팽이(彭夷)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팽조의 조상)

도교의 신선으로 모셔진 팽조는 성은 전(錢)이고 이름은 갱이라고 한다.

중국전설의 오제 가운데 고양씨(高陽氏)의 현손(玄孫)이며 육종(陸終)의 3번째 아들이라고 한다.

신화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인 인물이다.

일찍이 요임금과 순임금과 하(夏)나라, 상(商)를 거쳐 은(殷)나라 말기 주(紂)왕 때 이미 767세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팽조는 800여세를 살았으므로 신선이면서 중국 고대 장수한 자의 대명사로 알려진 사람이다.

 

팽무의 조상

중국 역사상 확인된 최고(最古)의 왕조는 은(殷, B.C. 16세기~B.C. 11세기)이라고 한다.

중국의『신선전』이란 책에 따르면 팽조는

그보다 더 오랜 하(夏, B.C. 21세기~B.C. 16세기경?) 왕조의 황제의 증손자로서

은대 말에 이미 7백 살이 넘었지만 마치 소년처럼 젊게 보였다고 한다.

은왕은 팽조의 명성을 듣고 대부(大夫)1)라는 요직에 추천했지만, 그는 병을 구실로 궁전을 방문하지 않았다.

 

팽이의 조상 

팽조는 천상계에 오른 신선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지선(地仙 : 지상에서 사는 신선)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하늘에 올라가서 선배 신선들의 심부름이나 할 바에는

지상의 생활을 즐기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늘에 올라가면 직책을 받아 사람들의 염원을 이루어주는 입장에 서게 되지만,

지상에 있으면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팽조처럼 신격화를 통해 신앙의 대상이 됨으로써 입장이 불분명해지는 것보다

지상에서 경애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신선들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특별하게 유명한 신선 외에는 그를 모시는 중심적인 사당이 별도로 없이 조역으로 만족하는 신선도 있었다.

이런 신선들은 자유를 만끽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신선다운 신선이라고 할 수 있다. 

 

팽조 삼부자를 모신 전각의 천장이다. 용 2마리가 중앙에 조각되어 있다.

팽무의 수호신물은 호랑인데 용을 조각한 것은 천궁을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에서 팽조를 모시는 또 다른 한곳이 있는데 안휘성(安徽省)의 역양(歷陽)이다.

그곳에 '팽조의 선실(仙室)'이라는 석실(石室)이 있는데 여기에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그리고 기우제를 지내면 땅바닥에 호랑이의 발자국이 생긴다고 한다. 

우리네 산신각에서 보면 호랑이를 탄 신신이 조상되어 있듯 

팽조를 신봉하는 도교에서는 호랑이를 팽조의 선실을 호위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부터 하산길이다. 천유각 바로 밑인데 이런 이정표가 설치되어있다.

중국인들은 천유봉을 오르는 길은 공산당길이라고 하고 내려가는 이 길은

오르는 길보다 경사가 덜한 길인데 국민당길이라고 부른다. 

공산당길은 일방통로이고 춘절이라서 그런지 공안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천유봉을 오르는 가마꾼들은 국민당길을 이용하고 있다. 

오르는 길은 일방통로이고 또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인 듯하다.

 

하산길에 압벽에는 무수한 글이 암각되어 있다.

중국 명산의 암벽에는 으례이 그렇지만

여기 무이산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무이정사가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많다.


 

 

  

 

 

 

내려오는 길의 중정공원(中正公園)이다.

중정이란 말은  중국의 군인, 정치, 군사지도자로서

중화민국의 총통인 장개석(張介石, 1887~1971)의 본명에서 비롯된다.

 흔희 장제스라고 불리며 개석(介石) 은 그의 자(字), 

본명은 중정(中正) 아호는 서원이다.

 

삼앙봉(三仰峰)이다. 삼앙봉은 해발 717m로 무이산에서 제일 높은 봉오리라고 한다.

산봉오리가 첩첩이 계단식으로 쌓여 삼앙봉이라고 했다. 

 

하산길에서 본 구곡의 풍경이다.

 

하산길에서 만난 가마꾼이다. 사진을 담기가 조금 민망해서 빗겨서 찍었다.

 

하산길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저멀리 은병봉 아래 수월정도 보인다.

 

마란주라는 백사장이 있는 곳이다. 

 

 

 

마란주를 조금 내려오면 벽풍같은 절벽인 선장암이 우뚝서 있다.

절벽에 물이 흘러 내려 마치 길다란 천을 햇볕에 말리는 것과 같다하여

쇄포암(灑布岩)이라고도 불리는 병풍바위다.

쇄포암 밑에 만길이나 되는 바위란 뜻을 지닌 <벽립만인(壁立萬仞)>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벽에는 도교의 이상향인 진원화로 올라가는 동네라는 뜻을 지닌

 <승진원화지동(昇眞元化之洞)>이란 글도 새겨져 있다.

 

벽립만인(壁立萬仞)이란 만장이나 되는 천애절벽이 비바람에 끄덕없이 우뚝서 있다는 의미다.

아마도 도가 선비들의 기개를 상징하는 의미로 암각한 모양이다.

 

승진원화동천(承眞元化洞天)이란 도교의 극락인 진원으로 가는 하늘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란주 앞의 구곡풍경이다. 쥬파이란 대나무뗏목선을 탄 관광객들이 한가롭게 픙광을 즐기고 있다. 

 

은병봉 아래 수월정이란 정자가 보인다.

 

돌아 본 선장암, 이리저리 둘러바도 정말 거대한 바위다.

 

바위 전체가 글로 도배되어 있다.

은병봉 아래의 수월정, 장관이다.

 

올려다 본 선장암의 관폭정(觀瀑亭)이다. 정말 장관이다.

 

운관(雲關)이란 석문이다.

구름이 모여 일어나는 곳이라는 뜻인데 무이산골은 구름의 형태가 다양한 모양이다.

 

문초대(問樵臺)라고 암각되어 있다. 

도봉산 개울가 바위에 새겨진 문사동(問師洞)의 의미와 같을 것일까?

 

 

 

 

 

 

 

무이산 국민당길의 입구이다.

공산당 길에서 하산길의 출구가 된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무이정사가 있다.

 

 

 

 

 

아래 사진들은 전동차로 돌아나오면서 다시 본 옥녀봉과 대왕봉의 풍경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