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성 기행(1/7) 하문 일광암

2014. 2. 8. 19:30해외여행

 

 

중국 복건성(福建省) 기행(1/7) 하문(廈門 xiamen) 일광암(日光巖)

 

일광암은 중국 복건성 하문시 고량서에 있다.  

하문(厦門/샤먼)은 중국 푸젠 성[福建省] 남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 주룽 강[九龍江] 어귀 남서해안에 있다.

복건성 현지 방언으로 '아모이'라 발음되며, 전시 면적은 1,573평방키로 미터, 상주인구는 243만명이다. 

하문은 아열대성 온화한 기후 때문에 골퍼매니어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하문은 열국의 영사관이 많았던 관계로 중국에서 상해, 광주와 더불어 유럽식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전국문명도시>, <국제화원도시>, <국가위생도시>, <국가원림도시>, <국가환경모범도시>,

 <중국우수관광도시>, <전국10대 거주도시> 등의 특별영예 상을 받을 만큼

중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중국 5대 경제특구 중 하나로 하문은

아직까지 골퍼매니어를 제외하고는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한 여행지이지만 

무이산, 토루와 연계해서 매력적인 신흥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다.

인천공항에서 약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운무 속의 하문항의 풍경) 

하문(샤면)은 송(宋:960~1279)· 원(元:1279~1368) 시대에는 가목서(嘉木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주로 해적들의 소굴이었으며 밀 무역의 본거지였다고 한다.

샤먼이란 이름은 1394년 해적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 취해진 조처의 하나로

이 섬을 요새화했을 때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1600년대에 샤먼은 타이완을 장악하고 있던 반청 운동가 정성공(鄭成功:國姓爺, 1624~62)의 통치하에 있었다.

당시 샤먼은 사명성(思明城)으로 불렸다. 1680년 샤먼은 청(靑:1644~1911)의 군대에게 점령당했고,

그후 취안저우[泉州] 수군(水軍)의 방어사령부가 이곳에 설치되었다.

외국과의 교역은 1540년 포르투갈인이 이곳에 상륙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정성공이 통치하던 시절에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배들이 꾸준히 찾아들었다.

 그 가운데 영국 상인들은 청과의 무역장소가 광저우[廣州]로 제한된 1757년까지 때때로 샤먼을 찾아왔다.

그 이후에는 스페인의 배 몇 척만이 샤먼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가되었다.

1839~42년 영국과의 사이에 일어난 아편전쟁 결과 중국은 5개 항구를 개방하여

외국인의 무역과 거주를 허용했는데, 샤먼도 그중의 하나였다.

아편전쟁후 체결된 난징조약에 의해 열강의 침탈은 확대되어

 1942년 마지막으로 일본이 물러갈 때까지 서구 열강의 조계지였던 곳이 바로 하문이다.

일본은 1938년에서 1945년까지 이곳을 통치했다.

 

(고랑서로 가는 패리호 매표소) 

<바다 위의 정원>이라 불리울 정도 경치가 빼어난 항구 하문은

1942년 마지막 일본이 물러 갈 때까지 서구 13개국의 침탈장소가 되었던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하문 앞바다에 있는 많은 섬들이 있는데 이들 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귀에 있는 진먼 섬[金門島]인데 타이완의 국민정부가 장악하여 요새로 만들었다.

1921년에 설립된 하문대학은 중국의 명문대학으로 손꼽힌다.

 

 

 

 

 

유람선의 지붕이 특히하다.

 

고랑서(鼓浪嶼-구랑위-Gulanyu)선착장이다. 고랑서는 하문(廈門-샤먼)의 유명한 관광지다.

하문(廈門-샤먼)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고랑서(鼓浪嶼-구랑위-Gulanyu)에 가기 위하여 하문(廈門-샤먼)을 찾는다고 할 정도로

하문(廈門-샤먼)에서 고랑서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고랑서는 면적 1.84㎢, 해발 92.6m, 해안선 길이 8km 정도 되는 조그마한 섬이며

섬의 남서쪽에 있는 암초가 파도에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가

마치 북을 치는 소리 같다고 하여 현재의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고랑서 해변에서 올려다 본 풍경) 

 

(고량서 해안의 풍경) 

 

고랑서는 화강암으로 덮힌 황페한 섬이었나 명(明)나라 후기에

청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정성공(鄭成功)이 이곳에 군사거점을 두면서 주민이 늘어나고,

다시 청나라 말기인 광서 28년(1902)에 청(淸)나라 정부와 각국 영사 사이에 정해진

공공조계장정(公共租界章程)에 따라 섬 전체가 개방되었으며

그 뒤, 각국의 영사관·호상(豪商)들의 주택 등이 건립되면서 지금의 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고량서의 땅값은 홍콩이나 상해보다 높다고 한다.) 1년 내내 눈이 오지 않는 따듯한 지역이며

열대·아열대성의 수목과 꽃으로 덮여 <바다의 화원>이라고 부른다.

하문에서 고량서까지는 700m 거리지만 다리가 없어 페리호를 타고 가야한다.

하문페리호승차장에서 고랑서까지는 10분 정도 소요된다.

패리호의 2층 승선시 1층보다는 전망이 좋다고 해서 기본승선료 외에 1위웬화를 추가로 받는다.

고랑서의 건물 각 구간은 자전거나 전동차를 제외한 일체 화석연료 차량운행은 금지되어 있다.

 

 

고량서의 또하나의 볼거리는 일제에 정복 당한 대만을 피해 나온 림이가 란 분이

1813년 고향을 그리며 지은 것이라고 하는 숙장화원(菽莊花園)이 있고

피아노박물관, 일광암사와 일광암등이 유명하다.

1월인데도 고량서의 기온이 25도나 되어 더위와 야간비행을 탄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아

우리일행은 전동차로 일광암만 들리기로 했다.

 

 

 

고량서 해변에서 망원으로 잡은 일광암풍경 

 

일광암으로 오르는 길 

 

일광암(日光岩)

속칭 “암자산” "황암(晃岩)"이라 불리는 일광암은 고랑서 중부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92.68m로 고랑서 최고높이의 봉우리에 해당한다.

일광암 밑에 위치한 사찰 일광암사의 바위에는 이 산 이름이 용두산이라고 암각 되어있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1647년 정성공(코싱가/鄭成功)이 이곳에 왔을 때,

이곳의 경치가 일본의 일광산(日光山)보다 더 아름답다고 여겨,"晃(밝을 황)"자를 일(日)와

 광(光)자 둘로 나누워 일광암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일광암은 직경 40여 미터의 거석으로, 이곳에 서면 하문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일광암은 하문의 상징이기도 하여 이곳에서는

 "일광암 위에 서지 않으면 하문에 오지 않은 것과 같다"는 말까지 있다.

일광암 주위에는 일광암사, 고벽서동, 정성공기념관 등의 여러 볼거리가 함께있다. 

아래 사진은 일광암사의 전경들이다.

일광암사의 일주문인 격이다. 일주문이 따로 없다.

 

 

 

 

 

 

 

관음을 모신 원통전

 

(일광암사의 종루) 

 

일광암으로 오르는 길에 설치된 포대


 

 

 

 

 

 

 

 

 

 

 

 

 

 

일광암에서 조망한 풍경. 운무 때문에 시야가 맑지 못하다.

멀리 가운데 둥근 빨강 지붕이 피아노박물관인가 보다.

가이드가 따라오지 않아 대충 둘러보는 것으로 끝냈다.


 

 

 

 

 

 

 

 

 

일광암 밑에 전시된 청동조각상


 

 

 

정성공(鄭成功) 조상인듯 하다. 대만의 독립영웅으로 숭앙받는 정성공은

하문과 복주지역을 근거로 상업을 하던 아버지와 일본인 여자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 사업을 이어가면서 몰락한 명나라 회복을 위해

청나라와 투쟁을 벌린 해상무역업자이면서 또한 군인이었다.

1662년 직접군대를 이끌고 반청운동을 벌렸던 사람으로

청나라의 세력약화로 38년간 네델란드 조차지로 있던 대만을 해방시킨 분으로

대만에서는 영웅으로 받드는 사람이다.

고량서는 그의 군사주둔지역이었다. 하문에서 진먼(金門)은 직선거리로 150lm라고 한다.

 

 

 

일광사를 내려오면서 바라 본 원통전 위에 세운 관음의 배면 입상 

 

 

 

 

 

고량서에는 용(榕 banyan)나무라 불리는 이런 나무가 많다.

수명도 길고 뿌리가 수염처럼 지면위에노출되어 있다.


 

 

 

(일광암사의 관음불, 아래는 협시불)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한 컷만 간신히 담아 크롭했다. 

복건성 아래에 있는 절강성 보타산은 관음의 성지다.

그래서 그런지 하문에는 남보타사가 유명하고

따라서 여기서도 관음신앙이 주불로 모셔지고 있는 모양이다.

 중국북방지역의 관음사상은 중국의 토속신인 낭낭여신과 결합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아직 그런 교류가 없었던 것같다. 남방불교 답게 불상들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토굴처럼 바위굴에 만든 암자가 눈길을 끈다. 옛적에 수도승이 있었나 보다.

 

바위 암굴에서 내려다 본 일광암사의 풍경

전면은 일광암사라는 현판인데 뒤면은 원통지문이라고 되어 있다.

관음을 주불로 모신 절이라는 의미다. 

 

용을 형상화한 처마가 화려하다.

 

 

 

 

 

구랑서에서 가장 오래된 천주교라고 한다.

 

복음당 주변을 둘러싼 열대성 꽃인데 이름은 알 수 없다.

 

구랑서의 일광암사 반대로 내려 오는길은 먹자골목이라고 한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페리호를 타러 가기전 숨고르기를 하면서 둘러본 고량서 해안풍경

 

하문과 고량서에는 공장이 없다. 그래서 대개는 청명한 날이라고 하는데

 오늘같은 이런 운무가 낀 날은 더문 현상이라고 가이드가 말한다. 연때가 맞지 않았나...

 

 

 

 

 

 

 

 

 

 

 

 

 

 

 

 

 

 

 


수영복은 물론 캡(cap)도 구량서의 일정 중 일광암을 제외하고

 모두 생략하는 바람에 하문으로 돌아 와 남은 시간을 온천장에서 보냈다.

하문의 일월곡온천장은 잘 알려진 유명한 야외 온천장이다.

 겨울철 하문을 관광한다면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이곳 일정이 잡혔다면 수영복과 캡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