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천성 기행(2/8) 청두의 숨은 비경 구채구 황룡가는 길

2013. 8. 3. 19:15해외여행

 

 

 

중국 사천성기행(2/8) 청두의 숨은 비경 구채구 황룡가는 길

 

늦은 밤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새벽 4시에야 청두(成都)에 도착했다.

예정된 스케줄에 따라 청두의 가이드와 미팅 후 호텔에 들어 한 두시간 잠시 눈을 부치는 둥 마는둥

다시 구황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나갔다.

이렇게 아침 일찍 서두른 는 것은 청두에서 구황공항까지는 50여분 거리지만

구황공항은 해발 3500m가 넘는 고원지대에 위치하여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날씨가 바뀌기 때문에

예정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서두른 것이라고 한다.

 

 

청두에서 태양을 보는 것을 일년에 채 60일도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스게 소리로 청두의 개도 태양을 보면 (낯설어)짖는다고 한다.

비가 많고 항상 구름 낀 날이 많아 태양을 보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구황공항은 아직 국제공항은 아니지만 옛적에는 군사목적으로만 이용되었는 데

구채구와 황룡이 풍경구로 지정되면서 특정 민간 공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구황공항을 오가는 파이롯트들은 궂은 날씨 때문에 중국 내에서도 최고의 베트랑이라고 한다.

어제도 궂은 날씨 때문에 비행기의 이착륙이 어려워 모두 회항했다고 가이드 사설을 붙인다.

 


 

 

청두에서 구채구와 황룡가는 길은 두 길이다.

하나는 버스로 이동하는 것인데 적어도 7~8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둘은 비행기인데 이는 또한 날씨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운이 좋아야 한다.

공항에서 내리면 다시 버스로 1시간 정도 송판의 천주사를 거처가야 하는데

중간에 해발 4000m 가 넘는 고원지대를 넘어가야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치않은 고산병 증세가 따르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장사 속인지, 배려깊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황룡 가는 길

어느 여행사 가이드 이든 이름 모를 약병과 산소가스통을 들고 일장 사설을 늘어놓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좋은 게 좋다고 행여나 하는 생각에 나도 가스통 두 개를 사서 배낭에 챙겨 넣었다.

 

 

 

 

 

 


 


공항을 내리니 비가 내린다. 여기서부터 송판 천주사를 거쳐 황룡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구채구의 날씨는 일기예보도 믿을 바 못댄다는 말이 실감이 간다.

 

천주사에 도착하니 날은 개였다. 참 오락가락하는 날씨다.

천주사도 해발 3000m나 된다. 여기서 중식을 하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우려했던 고산병 증세는 아무도 없다. 다행이다.

 

천주사에서 중식을 했던 곳이다.

구채구와 황룡 그리고 여기 음식은 조악하다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심했다.

허름한 식당에 한국식을 가미했다고 하는데 나온 음식은 완전 국적불명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중국여행을 한 가운데 최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천주사 식당 앞에 있는 개인집인 것같다.  여기 주민은 중국의 소수민족의 하나인 티벳트계 장족이다.

장족의 집은 대개 고산지대에 위치하며 돌집에 거주한다.

불교의 한 종파인 라마교를 신봉하며 집 문앞에는 오색깃발을  세우는 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담벼락과 창문벽에 그려진 묘한  문장이 눈길을 끈다. 라마교의 문장들인가 보다.


 

 

 

언덕에 세워진 송판고성이이다.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높은 곳에 망루처럼 성을 쌓았다.

 

송판 고성 앞의 건물인데 옛모습 그대로 보존된 모양이다.

 

 

 

당의 옛명칭은 송주였던 모양이다.


 

고성의 후문은 관양문으로 되어있다. 성문을 세운 시대가 다른 모양이다.



송판고성의 거리다. 지진의 여파와 최근의 폭우로 청두에서 오는 길이 끊어져서 그런지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다. 관광객이 없으니 거리도 한산하게 보이고 철시한 상점들도 많다.

 

 

 



 


 



 


 

장족은 수렵으로 살아가는 중국의 소수민족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피류를 다루는 상점들이 많다. 





 

티베트의 최초왕국을 세운 송첸캄포왕의 동상이다.


 



 

 


 

고성광장에 세워진 문성공주와 송첸캄포의 동상이다.

문성공주의 당고조 이 세민의 딸이요, 송첸캄포는 티베트의 최초 왕국을 세운 티베트의 영웅이다. 

장족인들은 이 둘을 영웅으로 숭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문성공주와 송첸캄포의 동상

 

 

황룡 가는 길의 주변풍경, 운무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고대 티베트인의 최초 왕국인 토번에 관한 정확한 활약상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수(隋) 나라때 이다.

6세기경 토번왕국은 현재 라싸 남쪽의 얄룬지역을 근거로

한 씨족이 중앙티베트의 많은 지방 호족을 굴복시키며 여러 지방 세력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된다.

토번국을 일으킨 손첸캄포는 티베트를 근거로 하여 청해성 일대의 토욕혼까지 복속시키며 세력을 크게 확장 시켰다.

이에 자신을 가진 손첸은 634년 처음으로 당(唐)에 사신을 파견하고,

국제적인 위신을 세우기 위해 당에 결혼동맹을 요구하였다.

 

7세기초 중원지구를 평정한 당고조 이연 이세민 부자는 중원지구를 평정하고

제국을 통일하여 618년 당나라 제국을 세웠지만

주변 국가들이 강성해질까 두려워 소수민족교류에 눈을 돌려야 했다.

이에 당태조 정관 8년에 송첸캄포가 토번왕에 즉위하자마자 토번을 통일하여 강성해지자

 즉위 후에 적극적으로 대외관계에 힘써 당과 화친관계를 유지하였다.

송첸캄포는 634년에 사신을 파견하여 당황제로부터 신부감을 구하였는데

 641년 당태종은 이에 응하여 보낸 공주가 바로 문성공주이다.

 

 

손첸의 뒤를 이은 쿵송쿵쩬에게 시집을 가게 된 문성공주는

 번화한 성도였던 장안(지금의 섬서성 서안 서북)을 떠나 3000 km 에 이르는 먼 길을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도착한 곳은 눈 덮힌 고원지대였다.

당과 송첸캄포 사이에 화친의 희생양으로 간 것이었다.



 

출가후 문성공주의 활약이 대다하여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의 문물을 전파하고

그로 인해 양국간의 교류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토번왕국 국민들에게는 존경을 한 몸에 받았지만

그러나 3년 후 쿵송쿵쩬은 죽고 다시 손첸캄포가 정권을 잡게 된다. 

문성공주는 남편의 3년상을 지내면서 남편을 기리기 위해 라싸에 라모체(小照寺)를 짓고

당에서 불상을 가져와 안치했다.

3년상을 마친 문성공주는 다시 왕에 오른 손첸캄포와 결혼을 하게 되나

 다시 3년 후 손첸캄포도 죽고 말았다.



 

이런 재혼의 풍습은 왕비나 후궁까지도 재혼을 금하고 있는 우리네 옛풍습과는 다소 이질적이지만

티베민족은 높은 고원지대에서 수렵으로 지내는 민족이라

여자가 귀해 일처(一妻)다부제(多夫制)를 숭상하는 풍습이었다고 한다.

이제 송판고성을 벗어나 황룡으로 다시 떠난다.

4000m의 고원지대를 지나서. 날은 다시 흐려지기 시작한다.

고갯마루를 오르면서부터 짙은 운무가 길을 가린다.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풍경을 담아 본다.

 

  


만년설산의 풍광을 보고 싶었지만 안개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민산산맥의 이 산줄기는 모두 4000m 가 넘는 준령이라고 한



다. 

 



 


 



 



 



 



 



 



 



 

 



 


 


 

 



 

 

 

 

 

               지루한 여정은 끝나고 이제 황룡으로 오른다.

         비는 그친것 같은데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