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여행(1-1) 휘주박물관과 청대옛거리

2011. 8. 1. 22:30해외여행

 

황산여행(1-1) 휘주박물관과 청대옛거리

 

오전 12시 20분에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예정시간 대로 2시간 20여분만에 황산공항에 도착했다. 트랩을 내리니 찌는 듯한 무더위, 서울보다 더 덥다. 그기다 습기까지. 다행이 단체여행이라서 그런지 입국수숙은 그리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단체라야 고작 7명인데. 공항을 빠져나오니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팩케지 여행이라 이제부터 모든 일정은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오늘의 첫번째 코스가 휘주박물관, 그리고 청대 옛거리란다. 휘주는 행정구역상 황산시에 속한다. 황산은 중국 23개 성(省) 중 가장 면적이 적은 안휘성에 속한다. 황산시의 전신이 휘주이다. 황산시는 3개(툰시구, 황산구, 후이저우)의 시할구와 4개의 현이 있는데 휘주는 1987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의 비준으로 둔계구로 속했다가 황산시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안휘성의 성도(省都)는 허페이(合肥). 안휘성은 인구90%가 농업에 종사하며, 남쪽의 양자강 차오차호(巢湖)의 평야에서는 쌀, 보리의 2모작을 하고 북쪽은 밀, 참깨, 수수, 옥수수 등 밭작물을 재배하는데 특히 둔계구는 원래 예로부터 다무도회(茶務都會)라 불리만큼 차로서 유명했던 지역이라고 한다. 박물관의 규모는 우리네 향토박물관 보다는 좀 큰 정도. 한 지역의 향토문화박물관을 관광상품에 끼워 넣은 것은 아마도 여행사의 배려인듯. 우리네 인사동 거리와 같이 문방사우와 차, 한약재, 서화골등품, 도자기 등 명(明)청(靑) 시대의 옛 상가거리를 재현한 청대옛거리라 명명된 노가(老街)와 더불어.

 

 

 

 

 

휘주는 산으로 둘러쌓여 살아가기 척박한 지역이라 유일한 생계수단은 장사였고 아니면 과거급제로 출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적으로는 삼국지의 영웅 조조와 명(明)을 건국한 주원장, 그리고 작금의 장택민과 후진타오도 안휘성 출신이라고 하며 명청시대에 장원급제한 사람도 무려22명이나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상업도시로 잘 알려진 휘주가 그 당시 인구수에 비하여 서당이 유달리 많았든 이유도 여기에 연유 한다고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남편들은 물론 자식도 나이 12 내지 13세가 되면 강제로 외지로 내 보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감내해야하는 모성애와 여인으로서의 독수공방을 감내하는 문화가 마치 황산의 바위 위에 뿌린 내린 굽은 솔 마냥 그 강인성에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위 그림은 자식을 떠나보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런 휘주의 옛 풍습과 문화를 알리고자 만든 것이 이 박물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팩케지 상품중 하나로 등장하는 휘운가무쇼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휘주의 옛 사람들의 목각공예 기술은 중국 내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탁월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목각공예품 내지 작품들이 많다. 그 정교함과 탁월한 안목이 안둔패기 이 눈에도 비치니...

 

 

 박물관 뒤편의 연못이다. 별반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맘에 든다.

 

아래 사진들은 청대옛거리 풍경이다. 박물관은 더위 식히는 기분으로 돌아보고, 청대거리는 일정상 어쩔수 없는 코스라... 가이드 왈, 진열된 상품을 만지거나 사진 찍다가는 잘못하면  낭패 볼수 있으니 조심하란다. 설상가상으로 골등품 보는 눈은 아직 아둔패기라 마음도 따라가지 않고... 날씨도 덥고 해서 거리풍경만 몇 카트 담고는 호텔로 돌아왔다. 산과 바위, 강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게글스럽게 셧터를 눌러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