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여행/에필로그(epilogueo)

2010. 8. 17. 22:49해외여행

장가계여행/에필로그(epilogueo)

4박 5일의 장가계여행, 더운 날씨에 참 바쁘게도 돌아다녔다. 일년 중 260일 이상이 비가 온다는 장가계, 다행이도 머무는 동안 내내 맑은 날씨였다.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단지 한 차례 천자산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에 비가 내렸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인 관계로 비는 전혀 맞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대체로 팩케지여행치고 무난한 여행이였다. 잠자리도, 식사도. 단지 아쉬웠다면 두 가지. 차창관광이라는 백장협계곡과 황학루를 보지 못한 것. 내가 보고 싶은 든 것은 소수민족 이였던 토가족이 민중항기로 백번을 싸웠다는 그 백장(百丈)의 한 서린 협곡, 이백도 경탄한 한 시대 풍류를 즐겼던 한 시인의 그 허무감을 황학루에서 한잔의 차로 음미해보고 싶었는데... 백장협은 울창한 숲과 나무에 가리고, 황학루는 회색콘크리트 빌딩에 가려 보지 못했다. 옛 시인이 바라보던 그 양쯔강의 지류인 장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흘러가건만. 어리석은 중생 슈나이드의 cpl 필터까지 갖추어 갔었으니.....

 

숙소인 호텔 베란다에서 본 백장협곡 

천자산을 향해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본 백장협 입구 모습

▲▼돌아 오느는 길 버스 창가에 비친 빗속의 백장협 봉우리들

 

 

 황학루(黃鶴樓)

양자강에 걸친 장강대교를 건너 있는 황학루는 위양의 악양루, 남창의 등왕각과 더불어 중국 강남의 3대 명루로 일컫는다. 황학루는 삼국시대에 지은 것으로 3층 건물이었지만 지금의 것은 1985년 5층으로 증축된 것으로 엘리베이트가 설치되고 높이는51m 나 된다.

 

오나라 때 신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경치 좋은 이곳에 주막을 지어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왠 노인이 찾아와 술만 먹고 돈은 내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그 다음날도 그랬다. 후덕한 주인은 그래도 말없이 그 노인이 올쩍마다 싫은 기색하나 없이 잘 대접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노인은 귤껍질로 벽에다 학(鶴) 한 마리를 그려놓고는 『“술을 마시며 손벽을 치면 저 벽의 학이 나와 춤을 출 것이다.” 이것으로 술값 대신한다.』하고는 훌쩍 떠나버리고 그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이 주막에 와서 술을 마시면서 손뼉을 치면 정말 벽에 있는 학이 나와 춤을 추었다. 이 소문이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주막은 큰돈을 벌었다. 세월이 흘러 10년이 되자 그 노인이 다시 찾아왔다. 주인은 반가워 술과 갖은 안주를 내놓았지만 노인은 이제 필요다고 하면서 벽에 그려놓은 학을 타고 피리를 불며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 노인은 자안(子安)이라는 신선이었다고 전한다. 큰 부자가 된 주막 주인은 그 자리에 정자를 짓고 그 정자를 황학루라 이름했다고 한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황학루는 오나라 손권이 유비와의 싸움에 대비하여 223년에 지었다고 전한다. 뛰어난 풍광과 이런 고사와 더불어 황학루는 시인묵객들이 모여들어 시를 지었는데 그 중에 최호(崔顥)의 <황학루>가 수작이라고 한다.

훗날 이백이 황학루에 와서 이 시를 보고 명시라 하여 이 보다 더 좋은 시를 지을 수 없다고 하여 붓을 꺽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학루 옆에 <각필정 擱筆亭>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황학루에 시 한수를 남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다시 찾아 <앵무주 鸚鵡洲>라는 시한수를 짓고 붓을 씻었다는 세필지(洗筆池)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한다.

 

황학루(黃鶴樓)/최호(崔顥)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날아가 버리고

여기 황학루만 쓸쓸히 남았구나

한번 떠나간 황학은 다시 오지 않고

천고의 흰구름만 부질없이 떠 가누나

 

맑은 냇가에는 한양의 나무 그늘 무성하고

강 가운데 앵무주엔 봄풀이 무성한 데

황혼에 물든 내 고향은 어디쯤일까

강위에 물안개에 시름만 깊어지네

 

黃鶴樓/ 崔顥

昔人已乘黃鶴去 석인이승황학거

此地空餘黃鶴樓 차지공여 황학루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일거부복반

白雲千載空悠悠 백운천재공유유

 

晴川歷歷漢陽樹 청천력력한양수

芳草萋萋鸚鵡洲 방초처처앵무주

日暮鄕關何處是 일모향관하처시

煙波江上使人愁 연파강상사인수

@최호(崔顥.704~754):중국 唐나라 때의 시인. 허난성 開封 사람. 18세(722)에 진사에 급제. 재주는 뛰어났으나 행동이 경박했다고 한다. (시세말로 걸출한 난봉꾼인 모양인다.)젊어서는 들뜨고 화려한 가벼운 시를 주로 지었으나 만년에 風骨이 훌륭한 시를 지었다. 황학루의 이 시는 이백이 극찬을 하였다고 한다.

 

(황학루에 있다는 최호의 시) 

(장강대교를 건너오면서 버스 안에서 바라 본 장강)

 

앵무주/이백

 

앵무새가 오강에 날아와

강 모래성이 앵무주라는 이름을 전하게 되었다네

앵무새는 서쪽으로 날아 농산으로 가 버렸는데

향기로운 모래섬의 나무는 어찌 그리 푸르는고

안개 걷힌 난초잎에 향기로운 바람 따뜻하고

강 언덕 복숭아꽃에 비단물결 일렁인다.

폄첨된 나그네 부질없이 먼 곳만 바라보는데

긴 섬 외로운 달은 누구를 향해 비추는가

 

鸚鵡洲/李白

鸚鵡來過吳江水 앵무래과 오강수

江上洲傳鸚鵡名 강상주전앵무명

鸚鵡西飛隴山去 앵무서비농산거

芳洲之樹何靑靑 방주지처하청청

煙開蘭葉香風暖 연개난엽향풍난

岸夾桃花錦浪生 안협도화금랑생

遷客此時徒極目 천객차시도극목

長洲孤月向誰明 장주고월향수명

 

                (심천 중화민속박물관에 설치된 황학루모형도)

 

삶이란 바라는 만큼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는 것도 아니다. 운명이란 바꿀수는 없지만 그러나 도전해 볼만한  가치있는 것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그래서 태어난 자는 모두들 떠나게 되나 본다. 시간이란 열차를 타고.   여행이라는 것도 그런가 보다.  장가계 여행,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지닌 처녀림 같은 숲과 계곡, 억년의 풍상에도 오롯이 서있는 장엄한 봉우리들...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떠난 그 기대감과 낯설은 이국적인 풍취에 젖었다가도 돌아오면 가슴 한 구석에 무언가 맴도는  허전한 아쉬움.

무상(無常)- 그것은 지울 수 없는 내 삶의 화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