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마(是甚麽)(5)

2008. 6. 12. 00:08붓다의 향기

 

(보타산 불교박물관소장)



시심마(是甚麽)(5)


악마 파이피야스가 유혹한다.


『중생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누가 중생을 만들었는가.

중생은 어디서 왔으며, 중생은 어디로 가는가.』


바지라아 비구니가 말한다.


『너는 중생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곧 악마의 소견이다.

오직 빈 쌓음의 무더기거니 중생이라는 것 거기는 없다.


마치 여러 가지 재목을 한데 모아 세상에서 수레라 일컫는 것처럼

모든 쌓임의 인연이 모인 것을 거짓으로 중생이라 부르느니라.


그것이 생기면 괴로움이 생기고, 그것이 머무르면 괴로움이 머무른다.

괴로움을 내는 다른 법은 없다. 괴로움이 생겼다 스스로 멸하느니


모든 욕망과 괴로움을 버리고 온갖 어둠을 모두 여의고

지극히 고요함 몸으로써 증득하면 모든 번뇌 다하여 편안히 사느니라.


나는 이미 네가 악마인 줄 알았거니 지금 곧 스스로 사라져 가라.』

                       ~<잡아함 권45 시라경에서>~


중생이 무엇이냐고 묻고자 하는가?

그대는 악마의 의견에 홀려 있도다.

그것은 오직 諸行의 集合 일뿐,

이 속에 有情(이라는 고정관념)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마치 여러 재목이 합하여 車라는 이름이 있듯이.

그처럼 오직  오온이 있음으로서

잠시 중생이라는 명칭이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내장산 서래봉 가는 길>

 

삼라만상 그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 있던가?

아니, 실체라고 하는 그것이 있던가?

허망하고 공한 것이 일체 존재다.

그저 머물다 사라지는 허망한 존재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허망하다.

중생이란 존재, 삶도, 육신과 마음도

모든 것이 공하고, 허망한 허깨비 놀음에 불과하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것만이 진실이 다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무상한 존재를 통해서 그 실체를 알고,

그 실체가 공함을 통하여 참된 존재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유(有)에 나아가서 공(空)을 밝히는 것을 묘공(妙空)이라 하고,

공(空)에 나아가서 유(有)를 밝히는 것을 묘유(妙有)라 한다.』

그것을 증득(證得)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도, 우리들이 말하는 일체 존재도 아무리 따져 보아도

무상하고 공한 것이다. 그것은 찰나에 변하고

어느 한 순간도 머물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만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에 연하여 일어나는 존재이기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실체(자성)가 없으니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으로 공은 공이로되 단멸(斷滅)된, 거짓된 공이 아니라

눈앞에 전개되는, 지극히 오묘한 것이기에 묘공(妙空)인 것이다.


허깨비 같은 이 존재들이 그 실체가 없는 공이지만

공(空)을 연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니 진실로 없는 것이 아니다.

실체(자성)가 없는 것이 연기법을 따라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

존재하지만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기에 묘유(妙有)인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들 인생이란 존재로 본다면 묘공(妙空)이요,

삶으로 본다면 묘유(妙有)인 것이다.

왜냐하면 무상(無常)하기 때문이다.


무상(無常)한 것은 곧 공(空)이니 잡을 것이 없고(無執着),

잡을 것이 없으니 머물 필요가 없고(無住), 머물 필요 없으니

지을 필요도 없는(無作), 그런 삶을...


여보시게, 다 마셨으면 잔 돌리게나.

녹수청산을 저리 잘 펴놓았으니

쉬엄 쉬엄 즐기다 가세나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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