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착(放下着)(3)

2007. 6. 30. 23:34붓다의 향기

 

 

 

 (보연사 청동대불)

 

방하착(放下着)(3)


『몽환공화 (夢幻空華)를

하로파착 (何勞把捉)하는 가

득실시비 (得失是非)를

일시방각 (一時放却)하라.』


이는 삼조 승찬대사의 신심명(信心銘)의 한 구절이다.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얻고 잃음을,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버려라.』라는 뜻이다.

 

(아미산 시방보현불)


고인(古人)들은 말한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은 뜬 구름과 같다.』고.


돈과 재물, 명예와 권세 등은 현실의 문제다.

이는 죽은 자가 찾는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뜬 구름과 같다고 말하는가.


현실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진실이란 무엇인가?


현실이란 그대 주의에 쌓여 있는

욕망, 사념(思念), 계산 따위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진실이라는 것, 진리라는 것은 그저 그렇게 있는 것이다.

현실이라는 것은 그대의 이해를 통해서 형성된다.

현실이라는 것은 진실 내지 진리에 대한

그대 자신의 주관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은 갖가지 다른 분리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진리와 진실은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현실은 수많은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현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고

애써 쌓은 모래성과 같아서 파도가 밀려오면

흔적 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도 우리는 진실과 진리를 제쳐놓고

현실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욕망 때문이다.

현실과 진리의 경계는 바로 욕망이다.

욕망이 개입되면 현실이 되고

욕망이 사라지면 진리가 된다.


『사람이란 내가 꿈꾸고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꿈꾸고 있지 않다고 증명할 수도 없다.』는

버트랜드 러셀의 이 말을 한번 반추(反芻)해 보라.

 

(보연사 청동대불)

 

 

유식(唯識)에 의하면 우리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고

대상을 판단하는 방법에는 각각 3가지가 있다고 한다.


무엇이 개입되지 않은 임의(任意)로 분별하는 자성(自性)분별,

기억에 의지하는 수념분별(隨念分別),

헤아려 보는 계탁분별(計度分別)이다.

자성분별로 대상을 판단하는 것은

무분별지(無分別智)로 현량(現量)이라 하고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쌓인 기억으로

비교 판단하는 것을 비량(比量)이라 하고,

미혹된 마음으로 헤아려 판단하는 것을 비량(非量)이라고 한다.

 

 

(홍법사 와불)

 

자성분별과 현량(現量)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알음알이가 된다.

그 알음알이란 곧 식(識)이요, 이것이 바로 욕망을 부추기게 된다.

비교하는 마음,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마음,

아닌 것을 그렇다고 믿는 마음, 잘못된 것을 옳다고 여기는 마음

좀 더 높이, 좀 더 많이, 좀 더 오래 누리고 싶어 하는 그 마음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인식하고 판단하는 알음알이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주인 없는 집에 객(客)이 주인 노릇하듯이

알음알이가 참 마음을 가리고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허망한 것이요, 진실이 아니다.

 

(육용사 삼불)

 

 

꽃이 피고 지듯, 구름이 바람 따라가듯

삼라만상은 모두 인연을 따라 생하고 멸한다.

듣고 보는 그 모든 것이 인연따라 생하고 멸한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인연이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인연이라고 한다.

실체가 없는 공(空)이다.

 

자동차의 부품이 모여 자동차란 것이 인식되듯

본래 자동차란 없는 것이다.

부품이 조합되면(인연이 닿으면) 자동차가 되고

그 부품들을 분리하면(인연이 사라지면)

한갓 고철이요, 잡동사니에 불과하다.

그래서 모든 대상들은 허망한 것이다.

그 허망한 것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우리의 마음도 또한 허망한 것이다.

현실이란 단지 마음이 마음에 그려놓은 허상을 보는 것이다.

하물며 그런 부귀공명이 진실이 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유식은 전식득지(轉識得智)하라고 한 것이다.

대원경지(大圓鏡智:제8식의 전변)니,

평등성지(平等性智:제7식의 전변)니,

묘관찰지(妙觀察智:제6식의 전변)니,

성소작지(成所作智:전5식의 전변)니

각가지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이는 모두 유루(有漏)의 지혜

곧 알음알이와 그 종자를 놓아버리고 참 다운 지혜

즉 무루(無漏)의 지혜를 얻으라는 것이다.

 

(원통사 석가모니불)

 

그 참다운 지혜는 바로 정각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도

보살도,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도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니 

곧 참다운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버려야 한다. 비워야 한다.

거짓된 것이 자리한 만큼 진실한 것을 담을 수 없다.

분별하는 모든 알름알이는 버려야 참된 온전한 지혜가 들어 올 수 있다.

그래서 승찬대사가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얻고 잃음을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버려라.』라고 한 것이다.

 

 


 

(설악산 청동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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