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리고 여기에

2007. 4. 20. 22:29붓다의 향기

 

<내장산 서래봉 가는길> 

 

지금 그리고 여기에


사람이 동물 보다 더 불행해지는 것은

동물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항상 내일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대 자신을 보라.

어제 그대는 어제의 내일인 오늘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오늘이 되면

어제의 내일인 오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내일을 생각한다.

그대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항상 그런 식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항상 <지금 그리고 여기에> 존재한다.

내일에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럼으로 항상 내일을 바라보는 것으로

삶의 방식을 고정시켜 놓는다고 한다면

도대체 지금 현재의 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것은 꿈속의 삶이요,

마음만이 떠도는 구름 같은 삶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진정한 삶의 환희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이 불행하고 우울하고 답답해지는 것이다.

살인도 죄이지만 그 보다 더 큰 죄는

바로 내 삶을 놓쳐버린 그것,

그것이 더 큰 죄가 아니겠는가.


시간이 그대 마음에 옹아리틀게 되는 것은

바로 내일이란 미래가 개입되는 순간이다.

그때 그대는 현재를 잃어버리고

존재에 대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그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로봇트같이 살아오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 진정한 삶의 환희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이

모두 선(禪)이라고 한 육조대사의 가르침,

그것은 내일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바로 그대의 삶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도에 이르는 길이라고,

해탈과 열반의 유토피아에 이르는 길이라고

늘여놓은 번쇄한 수행의 가르침들,

그기에 그대의 진정한 삶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의 참 의미는

내일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으로 참된 옛 선지식들은 이른다.

『대도불유행득(大道不由行得)

설행권위범우(說行權爲凡愚)』라고.


대도란 수행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수행을 설함은

방편으로 어리석은 이를 위함이다 라고.


내일이란 죄를 짓지 말자.

내일이란 구름 같은 삶에 메이지 말자.

삶이란 내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에>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산다면, 천국도 지옥도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그렇게 깨어있는 삶의 화두로 산다면

진정 내일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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