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

2007. 3. 4. 16:01경전과교리해설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


한가위 밝은 달도 둥근 만월이요

정월 대보름달도 둥근 만월이다.

달마다 있는 만월이지만 사람들은

정월과 한가위 만월을 유독 찿는다.


달이란 보는 자의 인연 따라

반달도 되고 만월도 됩니다.

정월 대보름달이라도 한편에서는 만월이요

다른 편에서는 반월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월유품(月喩品)>에서 이르길

『한 편에서 반월을 보지만 다른 편에서는 만월을 본다.

그러나 그 달의 성품은 실로 이지러지고 찬 것이 없다.』

고 했습니다.

 

우리가 반달이니 만월이니 하는 것은 이는 연에 따라 반월

또는 만월로 보이기 때문에 증감(增減)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달의 성품은 항상 만월도 아니고,

항상 반월도 아닙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도 그러합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따로 없습니다.

인연 따라 한쪽은 생시(生時)오,

인연 따라 한쪽은 멸시(滅時)가 됩니다.

생시가 멸시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삶의 시작은 죽음의 시작이요

죽음의 시작은 삶의 시작입니다.

생시(生時)가 곧 멸시(滅時)인 것입니다.


생멸이 동시에 모든 것을 이루기 때문에(同時俱成)

그런 까닭으로 불교에서는 비밀(秘密)이란 말을 씁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준거틀 안에서만 사물을 봅니다.

가려지고, 숨겨진 것들을 보지 못합니다.

드러난 반달을 보면서 숨겨진 반달은 보지 못합니다.

 

검은 칠판에 쓴 흰 백묵글씨는 보이지만

검은 칠판은 보이지 않습니다.

연못에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은 보이지만

진흙탕의 그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와 대화에서는

언제나 한계가 있고 이름도 많이 두게 됩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어떤 특별한 준거틀로부터 한 대상을 정의하고

그 존재의 총체성으로부터 단지 일부분만을 유도해 내고 있습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이렇게 유도되거나 강조된 것을

화엄에서는 드러난 것(顯) 또는 주인(主)이라고 하고,

무시되거나 경시된 것을 숨겨진 것(隱),

또는 손님(伴)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드러난 것을 보고 그에 집착하면서도

숨겨진 것에는 보통 장님이 되어 버립니다.

그 누구에게도 어떤 주어진 존재의 모든 양상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며

그것은 사실상 인간의 손길을 넘어서는

무한성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고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 밝으면 달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달이 밝으면 태양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밝다고 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달이 밝다고 해서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삶이 밝으면 어두운 것은 가려지게 됩니다.

삶이 어두우면 밝은 것은 가려지게 됩니다.

삶은 밝으면 어두운 곳이 있고

삶이 어두우면 밝은 곳이 있습니다.

삶의 밝음과 어둠은 동시이며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알지 못한다고 해서,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삶은 무상한 것도, 허망한 것도 아니요.

기쁘고 즐거운 것만도 아닙니다.


그래서 화엄은 십현문에 이르기를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이라 했나 봅니다.

어리석은 중생들 눈 좀 뜨고 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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