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법

2006. 12. 19. 00:12경전과교리해설

<보리암의 해수관음> 

 

 

 

12연기법


무명은 청정심이 움직이고 가려지는 것이다.

무명은 어둠이다. 어둠은 단지 빛의 부재다.


넓은 들판에 집을 짓는다고 하자.

집이 완성되면 밖과 안이 구별된다.

그러나 그 공간은 본래 안과 밖이 없었다.

사람은 집을 인하여 안과 밖이라 경계를 가지게 된다.

안과 밖은 본래 없었다.


빛과 어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둠은 본래 없었다. 빛도 본래 없었다.

빛이 곧 어둠이요, 어둠이 곧 빛이다.

우리는 한쪽을 빛이라 정하자 그 상대는 어둠이 되었다.


무명이란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의 본질은 곧 우주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를 들판의 집 모양 개체로 받아 드리는 순간

안과 밖이란 의식이 흐른다.

이 흐르는 의식의 본질은 생명의 본질을 영속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것이 곧 무명(無明)이다.


생명의 본질이 움직이는 데는 의지가 필요하다.

<~을 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것이 행(行)이다.


의지가 움직이기 위해선 그 대상이 알려져야 한다.

알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하고자 한다』는 <그 무엇을 아는 능동적 인식>

그것이 식(識)이다.


식(識)은 어디에 있는가? <나>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나라는 것은 오온(五蘊)이다.

물질인 육체와 감각기관으로 구성된 <나>가 필요하다.

이것이 명색(名色)이다.

名은 정신적이고, 色은 물질적인 면이다.

이 <나>라는 것은 이제 감각기관을 의지한다.

그것이 곧 입처(入處)다.

우리의 감각기관들이다.

이 감각기관이 있으면 대상이 필요하다.

감각은 6근(根)이라 한다.

그 감각의 대상은 6경(境)이라 하고 또 6진(塵)이라 한다.

진(塵)이라고 한 것은 티끌과 같이 무수히 많다는 의미다.


눈이 볼 수 있는 사물이, 귀에는 소리가, 코에는 냄새가,

혀에는 맛을, 몸에는 촉감을, 마음에는 관념이 필요하다.

눈이 사물과 만나는 것, 이것이 촉(觸)이다.

혀가 맛을 만나는 이것이 촉(觸)이다.


이렇게 눈이 사물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혀로 맛을 봄으로써,

이것은 좋다, 이것은 싫다, 앉아야 되겠다,

서야 되겠다 등등의 느낌이 따른다.

이 느낌이 바로 수(受)다.


수(受)는 곧 즐거운 느낌(樂受), 괴로운 느낌(苦受),

행주좌와와 같은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이 느낌이 일어난다.


그럼으로 좋은 것은 매달리고, 싫은 것은 빨리 떨쳐 버리려고 한다.

애착이 생기는 것이다. 갈애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애(愛)다.


애(愛)가 있으면 소유할 마음이 생긴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것>이 되어야 마음이 풀린다.

결혼식을 보라. 식장의식에 따라 신랑은 신부의 면사포를 벗긴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바로

『이 여자는 나의 여자다. 이 여자는 내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나의 여자>를 가지려 해서는 안 된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갈애는 소유를 불러오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취(取)다.


내 것이 된다는 것은 이제 구체적인 형상을 갖는 것이다.

개별적인 하나의 틀이 아니라 종(宗)의 개념으로 형상화 된다는 의미다.

이것을 존재라고 한다.

존재란 또 유(有)라고 한다.


있다는 것은 이제 유형적이지만 완전히 구체화된 형상은 아니다.

남녀가 아니라 인간의 차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사과나무, 배나무가 아니라 나무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제 이렇게 유형화 된 것은

이제 완전히 개별적 구체적 형상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나무는 사과나무, 배나무 등등으로 구체화 된다.

사람은 남자, 여자 이렇게 구체화 되고, 개별화 된다.

이것이 생(生)이다.


그럼으로 생(生)은 개인적이다.

전체적인 것이 아니다.

그럼으로『태어난 자는 스스로의 지은 업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생(生)이 있기 때문이다.


유(有)의 형태에서 업이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업(共業)의 형태를 지닌다.

이에 반해 개인이 짓는 업을 불공업(不共業)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生)이 있으면 따라서 변화가 일어난다.

물건은 부서지고, 다시 고치고 그러다가 마모되어 없어진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물건이 부서지듯, 병이 들고,

마모되어 없어지듯 늙어서 죽게 되는 것이다.

소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12연기의 의미다.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사

로 이어지는 연기법의 의미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도

아메리카 대륙은 있었듯이

12연기법은 부처가 깨닫기 전에도 있었다.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이 5가지만으로도 하나의 연기가 된다.

삶에 있어서 이를『갈애연기(渴愛緣起)』라고 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는

인연법은 공(空)에 대한 유위법(有爲法)의 세계다.


무위법(無爲法)에서는 연기법이 없다.

공(空)이 아니요, 공공(空空)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경공(畢竟空)이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