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가의 자비

2006. 10. 14. 23:16붓다의 향기

 


(낙산대불) 

 

 

아상가의 자비


유식학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아상가(한역명은 무착)는

인도 불교의 유명한 성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4세기에 활동했든 인물이다.

혼자서 은둔하기 위해 그는 산으로 가서 미륵불을 향한 명상수행에 전념했다.

그는 미륵불의 축복을 받아 가르침을 전수 받기를 강렬하게 염원했다.


아상가는 6년 동안 매우 집중해서 명상을 닦았지만, 단 한 가지 상스러운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는 실의에 빠져 미륵불을 만나려는 자신의 염원이 성공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은둔 생활을 포기하고 그곳을 떠났다.


(금산사 미륵불)


얼마가지 않아서 그는 커다란 철근 막대기를 비단 천으로 닦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아상가는 그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 남자가 말했다.

『나는 바늘이 없어서 이 철근 막대기로 바늘 하나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상가는 놀랐다.

『설영 백년이 걸려서 그것을 만들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 있을까?』라고 그는 생각했지만,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저토록 어리석은 일에 매달려 수고하는 사람들을 봐라.

너는 무엇인가 정말 가치 있고, 영적인 수행을 하고 있는 거야.

저 사람과 비교하면 너는 아직 수행이란 근처에도 못 간 거야.』

그리고는 곧 몸을 되돌려 은둔지로 돌아갔다.


(속리산 법주사 청동미륵불)


다시 3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륵불로부터 아무 신호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확실히 알았다. 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가 다시 은둔지를 떠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가는 길을 커다란 바위가 가로 막고 있었다.

하늘만큼 높은 큰 바위였다.

그런데 그 바위 끝에서 한 남자가 물에 흠뻑 적신 깃털로 바위를 부지런히 닦고 있었다.

아상가는 궁금증이 생겨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 남자가 답했다.

『이 바위가 너무 커서 내 집에 햇빛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위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아상가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크게 감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가 해온 헌신이 진실로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은둔지로 돌아왔다.


(송광사 미륵불)


다시 3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상서로운 꿈 한번 꾸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은둔지를 영원히 떠나기로 했다.


날은 저물어 가는 데 우연히 그는 길가에 누워 있는 개와 마주쳤다.

개는 앞다리만 있고 몸의 아랫부분은 썩어 문드러지고,

온 몸은 구더기로 뒤덮여 있었다.

이처럼 처참한 상황임에도, 개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달려들려 했고,

성한 두 다리로 땅을 딛고 몸을 질질 끌면서 애처롭게 물려고 했다.


(관촉사 은진미륵불)


이런 광경을 접한 아상가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비심이 솟구쳤다.

그는 자기 몸의 일부를 잘라내어 개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그리고 개의 몸을 파먹는 구더기를 입으로 떼어내기 위해 몸을 굽혔다.

그러나 그가 구더기를 손으로 떼어내면 그 구더기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덜었다.

구데기를 입으로 떼어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아상가는 무릎을 꿇고 끔찍하게 괴로운 광경에 크게 몸부림치면서 눈을 감았다.

그는 몸을 점점 기울여 혓바닥을 내밀었다.


(서산 마애삼존불 중 미륵마애석불)


그가 안 다음 일은 그의 혓바닥이 땅에 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쳐다보았더니 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바로 그곳에 빛나는 오로라에 둘러싸인 미륵불이 현현해 있었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아상가가 말했다.

『내가 그토록 갈망할 때는 왜 현현하지 않으셨습니까?』

미륵불이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이전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그대와 함께 있었지만,

그대의 부정적인 업과 미혹으로 인해서 나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대가 12년에 걸쳐 수행을 닦아 그것들이 어느 정도 소진되었기에

마침내 개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그대가 마음 깊숙이 자비심을 일으켰기에

온갖 미혹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그대 자신의 눈으로 그대 앞에 언제나 있었던 나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일 그대가 무슨 일이 났는지 믿지 못하겠거든

그대의 어깨를 내 몸에 대고 그대 말고

어느 누가 나를 볼 수 있는지 알아보라.』


(원주 미륵산 미륵마애불)


아상가는 자기의 오른쪽 어깨를 미륵불에 대고

시장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물었다.

『내 어깨에 무엇이 닿아 있습니까?』

대부분이 사람은

『뭐가 있어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하고는 자기 갈 길을 서둘러 가버렸다.

그런데 업이 어느 정도 정화된 오직 단 한 명 늙은 여인만이 이렇게 답했다.

『당신 어깨에 썩어문드러진 늙은 개의 시체가 닿아 있습니다.』


(무등산 무애암의 반가사유상을 한 마애블)


아상가는 자신의 업을 정화해 변화시킨 자비의 끝없는 힘을 그제서야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미륵불의 비젼과 가르침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그릇이 된 것이다.

<다정한 보살핌>을 뜻하는 그 미륵불은 아상가를 하늘 세계로 데려가

불교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숭고한 가르침들을 전수했다.

그의 가르침 바로 오늘날 우리가 <유식학>이라고 하는 하나의 거대한 학문의 틀을 만들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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