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 23. 23:59ㆍ야단법석
참선(參禪)의 의미
선(禪)이라고 하면 스님들의 전유물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세속과 단절된 선방이나 깊은 암자 등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선은 세속과 단절된 것도 아니고 도피도 아닙니다.
선은 고립된 어떤 환경이나 단절된 어떤 행위를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禪)을 하는 것은 나와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사회는 의식주 이외에는 별로 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의식주에 대한 육신의 쾌락을 즐기지만
그것이 주는 쾌락 뒤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선(禪)에서 중요한 것은 정신과 마음의 질(質)입니다.
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위대한 사람, 유명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이나 계율을 숭상하는 윤리도덕군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살생이나 도둑질 하지 않는 그런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선(禪)을 하는 참 의미는 그 순수성을 통한 깨달음으로서
참 <나>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선(禪)을 함에는 순수하고 유연성이 있는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
선에서는 화두를 자주 거론합니다.
화두란 부정을 통하여 긍정적인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쌓아온 지금까지의 지식이나 경험으로서는
선의 그 순수한 참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두란 바로 그런 것을 타파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돌아서야 마음이 순수해지기 때문입니다.
선에서 <의심을 타파한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수단인 동시에 목적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지식이나 경험에 의해서는 결코 순수하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지식과 경험을 부정함으로서
비로소 사고에 의해서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순수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은 결코 순수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고 철학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허망한 알음알이에 불과합니다.
선이란 그런 지식과 경험적 사고에 종지부를 찍는 일입니다.
선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닙니다.
옛 선사들은 행주좌와(行住坐臥)가 모두 선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유연성과 그 순수성에 있습니다.
축적된 경험과 습관적 사고나 지식이 배제된 그 순수성에 있습니다.
그 순수성을 통하여 나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의 참 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손에 장미를 들고도 보지 못하는 장님과 같습니다.
그래서 중생을 일러 꿈속에서 꿈꾼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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