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자

2006. 8. 2. 22:58붓다의 향기

 

 

<혜원 신윤복>

 

자연으로 돌아가자


자연을 신뢰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찾아 간다.

그러나 자연을 신뢰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혼란된다.

그렇지만 자연적이 된다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오직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적이 될 때

그대의 에고가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밖에 다른 어려운 점은 없다.


배고프면 음식을 들라. 단식은 자연과의 충돌이다.

베고프지도 않는데도 먹는 것 또한 자연에 대한 투쟁이다.

사랑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하려고 하는 것,

아내가 바라고 사회가 바라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

이 또한 자연에 어긋나는 일이다.


자연이란 단지 내적인 존재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고가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내적인 존재가 느끼는 대로 따를 때

그것이 에고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동물처럼 살아라.

단한가지 동물과 달라야 할 것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동물이 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에고는 그것을 좋은 목표라고 생각한다.


성은 인간들을 완전한 동물이 되게 한다.

다른 일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동물이라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없다.

그들은 모든 것에 색칠을 하고 가면을 씌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의식(儀式)을 만들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식탁은 배고픔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에게 먼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모든 것이 거짓이다. 허위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면 완전히 동물이 되어 버린다.


물론 사람들은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

사람들이 오직 밤에만 성행위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직 인간만이 밤에 성행위를 한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은 낮에 한다.

낮에 사랑행위를 하면

그것은 더욱더 깊은 에너지의 교류를 가져온다.

태양 속에서 인간은 더욱더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밤은 휴식을 위한 시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밤에 성행위를 한다.

그 이유는 동물들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에고이스트들이 하는 일이 다 이런 식이다.

인간은 불을 쓰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면서도

성행위를 할 때에는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한다.

동물과 같이 행동하고 있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의무적인 일을 일찍 해치우는 것처럼

서둘러 성행위를 마친다. 성에 반대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고는 그때 안심한다.


자연을 그대로 따를 때 사람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전체의 청사진이 그대 속에 씨앗으로 존재하고 있다.

작은 씨앗 속에

미래에 피어날 줄기와 잎과 꽃들이 모두 계획되어 있다. 

단지 그 본성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씨앗에게

『움직여라, 이것을 키우고 저것은 없애라.

그리고 이런 것은 남겨두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고 가르칠 필요도 없다.


씨앗은 개인적인 지성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씨앗은 보편적인 의식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말하자면 신의 씨앗이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은 그 시초이다.

그것은 성장하고 성장하여

그 자체가 우주가 되는 지점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신조나 교리, 수련, 또는 종교도 필요치 않다.

본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대는 단지 그것을 허용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신뢰하고 수용하기만 하면 된다.

오직 신뢰 속에서만 그대는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장애물을 만들고 눈을 감으면 존재를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존재는 항상 존재하고 있다.

오직 그대만이 눈을 감고 앉아서 존재를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의심,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의심이 눈을 감게 하고 가슴을 닫게 한다.

마치 잠에 빠진 것처럼 의심에 중독 되어 있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인위적인 것을 버려라.

그대 의식에 가식이 남아있다면 남아 있는 만큼 자연과 멀어진다.

그대의 본질과 멀어진다. 그럼으로 그 어떤 의심도 버려라.

삶을 신뢰하라. 그대 본질의 완전함을 신뢰하라.

진정한 자유는 그 신뢰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 <숨은 조화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