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東村作驢-여마(驢馬)

2006. 7. 1. 06:00경전과교리해설

 

여마(驢馬)

東村作驢 西村作馬

동촌작려 서촌작마

<장사(長沙)스님>


동쪽 마을에 가서 나귀가 되고 서쪽 마을에 가서 말이 되리라.


해설 ; 이 글은 장사(長沙)스님의 유명한 말씀인데 간화선의 제1지침서의 저자인 대혜(大慧;1089-1163)스님이 서장(書狀)이라는 강원의 교과서에서 소개하여 널리 알려졌다.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딱히 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불교인이라면 관심이 가는 문제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위 전백장((前百丈)과 후백장의 문답에서 “수행을 잘 한 사람이 인과에 떨어지는가? 떨어지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함께 생각해야 그 이해가 깊어지리라. 그 답은 "인과에 미혹하지 않는다[不昧因果]."라고 하였다.

대혜스님이 소흥칠년(紹興七年)에 쌍경사(雙徑寺)에 계실 때 법사스님인 원오극근(圜悟克勤,1063-1135)스님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글을 지어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저녁 소참(小參)에 장사스님이 하신 남전보원(南泉普願,748-835)스님의 열반법문을 들어 원오스님의 열반을 거량하였다.

대혜스님이 소개한 그 전말의 내용은 이렇다.

어떤 승려가 장사스님에게 묻기를,

“남전스님이 열반에 들었는데 어디로 갔습니까?”

“동쪽 마을에 가서 나귀가 되고 서쪽 마을에 가서 말이 되리라.”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올라타게 되면 곧 올라타고 내리게 되면 곧 내려온다.”

대혜스님은,

“만약 경산(徑山[대혜])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승려가 묻기를 ‘원오스님이 열반에 들었는데 어느 곳으로 갔습니까?’라고 한다면, 그에게 대답하기를 ‘대 아비지옥에 갔느니라.’ ‘그 뜻이 무엇입니까?’하면 ‘배가 고프면 구리물을 먹고 목이 마르면 쇠 즙을 마신다.’라고 하리라. 또 어떤 사람이 ‘그를 구제할 수 있습니까?’하면 ‘구제할 사람이 없다.’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늙은이의 평소에 늘 하는 다반사이기 때문이라고 하리라.”

이 얼마나 통쾌한 명언인가.

함부로 거론하기는 좀 어려운 문제이지만 이 말은 도를 깨달았으나 사는 일과 죽는 일은 모두가 인연을 따라서 흘러간다는 뜻이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지 않고 모든 전후 사정들을 다 알고 미혹하지 않은 상태에서 삶을 영위할 뿐이다. 그 삶이 어떤 모습이든 인과에 미혹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 때 지옥은 이미 지옥이 아니고 여우의 몸도 여우의 몸이 아니다. 나귀가 되고 말이 된들 무슨 상관이겠으며 구리물을 먹고 쉬 즙을 마신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평소의 다반사일 뿐이다.

깨달음의 삶이란 자신의 업과 인연을 잘 알고 그것에 순응하여 혼연 일치하게 사는 일이다. 나귀가 되든 말이 되든 뒷산의 여우가 되든 마찬 가지다. 하물며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는 것이 수행과 깨달음에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불교공부란 신선도를 닦아서 연년익수(延年益壽)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유루복(有漏福)을 많이 지어서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를 잘 해서 큰 절의 주지가 되고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신도단련을 잘 해서 여기 저기 절을 수십 개 짓는 것도 아니다. 부귀영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진리, 즉 참되고 바른 이치를 잘 알뿐이다. 소산(疎山)스님은 크게 깨달으신 분이지만 박복(薄福)하여 당신이 사는 산에는 땔 나무마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이 나무가 여기 저기 어쩌다 하나씩 있다고 하여 소산이다. 크게 깨닫고도 이렇게 사신분이 무수히 많다. 도를 깨달은 일과 삶의 외적 모습과는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연이 그렇게 되어 동쪽마을에 가서 나귀가 되고 서쪽마을에 가서 말이 되면 나귀노릇하고 말 노릇을 하는 것이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無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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