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과 니르바아나

2006. 6. 14. 22:15경전과교리해설

 

<오로라>

 

해탈과 니르바아나


지옥이란 두려움을 의미한다.

그대의 주관에 의해서 투사된 그 두려움을 뜻한다.


미래에 살고 있는 사람은 지옥과 천국을 만들어 낸다.

탐욕을 통해서 천국의 이미를,

그리고 두려움을 통해서 지옥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물론 그대 자신을 위해서는 천국을,

그리고 적을 위해서는 지옥을 만들어 낸다.


크리스찬은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

[자,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면

우리 주 그리스도는 그대를 구원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저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명심하라.

예수를 믿지 않으면 최후의 그 날이 올 때

그리스도는 결코 그대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기독교 뿐만 아니라

유일신을 받드는 종교는 다 이런 식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그대의 탐욕과 두려움에 고리를 걸고 있다.

그리고 다가와서 이렇게 속삭인다.


[우리 종교를 믿으시오.

우리 종교는 간편하고 현대적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가동되고

겨울에는 훈훈한 바람이 이는 히터까지

현대적으로 시설되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유명한 정치가, 연예인, 돈많은 기업인들도 많습니다.

만약 다른 종교로 개종하게 되면

당신은 틀림없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 누구도 그대를 구원하지 못한다.

탐욕과 두려움의 차원을 넘어가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대를 구원할 수는 없다.

이런 식의 종교라면

그 어떤 위대한 종교라 할지라도 그대를 구원하지 못한다.

탐욕과 두려움, 이것이 불행의 근본원인이기 때문이다.


지옥과 천국이 존재하는 곳은

그대의 탐욕과 두려움 속에서이다.

두려움과 탐욕이 사라질 때

그것의 투사현상으로서의 천국과 지옥도 사라져 버린다.

그리하여 그대 마음속에 두려움과 탐욕이 없을 때

진짜 파라다이스가 발견된다.


불교는 이에 대하여 보다 나은 이름을 붙이고 있다.

해탈과 열반이다.


기독교나 회교도에는 이런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단어 대신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그 이상은 절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그런 점에서 어느 종교의 가르침 보다 앞서 있다.

붓다는 이렇게 말한다.

[천국과 지옥은 심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둘을 넘어가라.

그럼으로써만 그대는 영적인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열반의 경지이다.

니르바아나(nirvana)의 경지이다.

두려움과 탐욕은 없고

그대 의식만이 그 자각성만이 있을 뿐,

이는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가능하다.


천국은 죽고 난 다음이다.

지옥 역시 죽고 난 다음이다.

그러나 해탈과 니르바아나는 지금 여기에서 가능하다.

흐르는 곡: 녹야원의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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