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求道)의 길(5)

2006. 5. 8. 23:38붓다의 향기

 

 

 

 

구도(求道)의 길(5)


수행의 최대걸림돌은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육신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대의 아버지란 그대 육신의 아버지다.

그대가 자신을 하나의 육신으로 생각한다면

그때 그대는 그대의 아버지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대 자신이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 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인가?

그대 어떻게 그와 관계를 맺을 있을 까?

어머니는 그대 육신을 낳아 준 것이지

<그대의 영혼>를 낳아 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대는 육신과 그대 자신을

너무나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 어머니가 자신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대가 육신과 자시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을 때,

그 육신으로서 자신을 확인하지 않을 때,

그때 그대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그대의 어머니가 낳아 준 것은 <그대>가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할 그대의 육신이다.

그럼으로 그대의 어머니는 그대에게 생명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그대에게 또 하나의 죽음을 준 것이다.


그대의 아버지는 그대에게 생명을 준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죽음의 가능성을 주었다.

한 번 그대가 육신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게 되면

그대는 가족으로부터 분리된다.


가족은 분명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이다.

그러나 구도의 길은 먼저 가족을 넘어서 가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가 가족에 반대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핵심이 아니다.

또 그대가 가족과 대립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것 역시 핵심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어쨌든 일어 날 것이다.

일단 그대가 그대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그때까지 존재하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거기 혼돈이 일어 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그들은 그대를 되돌리려고 애를 쓸 것이고,

그대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낡은 방법,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그들로부터 달아나는 방법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건데

그런 출가란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못된다.

다른 하나는 그들과 함께 살면서 배우가 되는 방법이다.

그들에게 그대가 그들을 넘어서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움직여 가라.

그러나 그것을 그대 내면의 여행으로 만들고

바깥의 모든 형식들을 지켜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발을 만지며 경의를 표하라.

좋은 배우가 되어라.

낡은 방식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없다.

세상이 종교적으로 될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도대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달아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게다가 그들이 사회로부터 달아난다 하드라도

사회는 다시 그들을 돌보아 주어야만 한다.

붓다의 시대, 위대한 조사들의 시대, 예수의 시대에

수천의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을 떠났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수천 명에 불과하다.

수백만 사람들은 뒤에 남아서 그들을 돌보아 주어야만 했다.

만일 그러한 방식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이 세계 전체는 종교적으로 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방법도 아니다.

보다 아름다운 방법으로 그것을 실현할 수가 있다.

그 아름다운 길은 곧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다.

구도자는 좋은 배우가 되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좋은 배우란

그대가 전혀 관계를 맺지 않고 있으면서

형식을 채워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대가 떨어져 나와 있다는

암시조차 그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깊은 곳에서는 그대는 등을 돌리고 있으면서

어떤 암시를 주어야 무슨 소용이 있을 까?

암시를 받으면 그들은 그대를 변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기회도 주지 말라.

내면의 여행으로 숨기고 외면적으로는 형식에 맞게 살아라.

그들은 형식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매우 행복할 것이다.

그들은 바깥에서만 살아간다.

그들은 그대 내면의 예배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대 내면의 사랑 같은 것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단지 연극으로만 보여주면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두 가지 길이다.

하나는 예수와 붓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유마의 길이다.


유마의 길이 곧 나의 길이 되어야 한다.

유마는 마누라도 있었고, 딸도 있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 이래 그 유마를 능가하는 보살은 없었다.

<유마경>은 그래서 위대한 경전으로 우리에게 회자하는 것이다.


그대가 있는 곳에 머물고 있으라.

그대가 변화고 있고

진실로 종교적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밖으로 드러내 보이지 마라.

그것은 싸움을 유발시킬 수도 있고,

남의 시기심이나 비난을 불러올 수도 있다.

게다가 아직 그대는

그에 대적할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드러내는 그것이 아니라

내면에 그 투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럼으로 바깥으로 그것을 드러내려 하지 말라.

내면의 투쟁만으로도 더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그대에게 필요한 성장과 성숙을 자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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