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4. 30. 10:26ㆍ경전과교리해설
사랑의 불이공(不二空)
임제선사 어록에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란 말이 있다.
모든 일에 주인이 되면
부딪치는 일 마다 진실해 진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에 주인이 되는 길
그것은 깨어 있는 마음이다.
깨어있지 못한 마음은 항상 선택이 따른다.
그래서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나는 아주 거친 방법입니다.
이는 남성적인 지배방법입니다.
힘과 권위 부로서 다루는 방법이다.
이는 마치 얼음 밑에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서
위는 복종하고 아래는 분노와 원한의 물이 흐른다.
다른 하나는 미묘한 방법이다.
이는 여성적인 지배방법이다.
지배가 아니라 흐느끼는 방법이다.
강한 남성은 상대적인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여성은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녀는 전혀 논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정성스럽게 차를 끊여서 가져온다.
그녀는 전혀 그대의 주장을 반대하지 않는다.
대신 거기 정성스러운 차 한 잔이 있다.
이것은 미리 짜여진 계획에 의해서 행해지는 행위다.
그대는 그녀와 도저히 논쟁을 벌일 수 없다.
그녀는 단지 한마디의 말대꾸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논쟁은 이렇게 미묘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 둘은 양극단이다.
동전의 앞과 뒤와 같다.
남성적인 방법은 굳은 어름이다.
주인의 힘과 권력이 강하게 드러난다.
여성적인 방법은 부드러운 물이다.
그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인처럼 드러나지 않는 그 속에 음모가 숨어있다.
하나는 강하고 하나는 유연할 뿐이다.
강함과 부드러움,
강요함과 애원,
지배와 순종,
앞이 주인이 되면 뒤가 하인이 되고
뒤가 주인이 되면 앞이 하인이 될 뿐이다.
진정으로 자유롭고자 한다면
누구도 그 무엇도 그대의 주인으로 섬겨서는 안 된다.
이 양극단을 피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의 주인도 아니요
또 누구의 하인도 아닐 때 거기 진정한 자유가 있다.
그렇다고 사랑조차 하지 말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사랑 속에는
진정한 사랑 속에서는 그런 주인이 없다는 말이다.
사랑 속에는
그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하인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랑은 자유다.
사랑은 자유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사랑은 자유 속에서 넘친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길은
단지 깨어있음만이 필요하다.
깨어있는 마음은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어(禪語)에 이런 말이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이는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다.
부처도 조사도 그대의 주인으로 섬기지 말라는 의미다.
그대 마음의 주인이란 것이 없을 때
그 마음이 바로 깨어있는 마음이다.
깨어있는 마음은 분노도 사랑이 되지만
잠들어 있는 마음은 사랑도 저주가 되는 것이다.
깨어있어야 진정한 주인이 되고,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있음을 <혼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말하는 불이공(不二空)의 세계다.
둘이면서 둘이 아닌 세계다.
주인과 하인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상대적인 것을 떠나 상대적인 것을 살리는 것이
불이(不二)의 세계며, 자유이며, 참된 중도의 길이다.
선택이 아니라 깨어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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