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지는 꽃처럼, 흐르는 물처럼

2006. 3. 3. 01:02붓다의 향기

 

 

  피고 지는 꽃처럼, 흐르는 물처럼


잠시도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

우리들 중생의 삶이요, 인생이다.

흐르는 시냇물보다도,

날아가는 화살보다도

더 빨리 흘러가고 날아가는 것이

중생의 삶이요, 인생이다.


청운의 푸른 꿈은 아침 햇살에 걷히는 안개처럼 그렇게 사라지고

산을 허물 듯한 청년 시절의 그 기개는

잠깐 사이에 두더지가 파놓은 뒤뜰의 흙두덩이 조차

옮기기도 힘겨워질 때 우리는 허무와 고독의 수렁에서

인생의 무상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팔청춘의 꽃다운 나이에 윤기가 넘치든

그 검은머리는 이른 봄날 산등성이에 미처 녹다만 잔설 마냥

흰머리가 하나 둘 늘어갈 때

진실로 내 가슴에 몰아치는 이 허무와 고독 …

그러나 어찌하랴.

나 홀로 걸어왔고, 나 홀로 가야할 내 인생인 것을.

곧은 허리는 굽어져 수양버들이 되어가고,

갓 핀 깨꽃같이 분홍빛 윤기가 흐르던 고운 피부는

어느새 쓰다버린 헤어진 수세미처럼 변해 버렸지만

그것이 내 얼굴이요, 내 인생이 아닌가?


훤한 이마는 빨래판처럼 골만 깊어져 가고,

우렁찼던 목소리는

갈대밭을 스쳐 가는 바람소리모양 쉰 소리를 내고,

총명했던 두 눈은 어물전 망태기 속에 들어있는 물고기마냥

허멀게지는 것이 어찌 누구의 탓이겠는가?


쭉 뻗은 건장한 팔다리와 우람했든 이 몸이지만

어느 날인가 굽은 물푸레나무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지도 못하게 될 그것이 내일의 나가 아닌가?

정녕 그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내 인생의 종착역,

그 종착역을 향해서 달려가는 이 중생의 시간표를

지금이라도 어떻게 바꿀 수 없을까?


돌아보면 회한과 허무와 무상의 칼날이 내 목을 조인다.

뒤는 회한과 아쉬움이 늪이요,

앞을 보니 고독과 허무의 수렁뿐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중생으로 태어난 이 몸은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가게 되어 있는 것을.

오음성고(五陰盛苦)라.

부처가 한 이 말이 절절이 나의 가슴을 에이구나.

  

 

그러나 장미꽃이 시든다고

장미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는가?

인생이 무상하다고 해서

남은 인생을 또다시 허무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야 하는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다시 온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열흘 가는 꽃도 없지만,

아침에 핀 꽃잎이 저녁이면 시들어 떨어진다.

그렇다고 찬 서리에 온 잎이 다지고

백설이 온 산천을 덮어 천지만물이 얼어붙는다고 해서

대자연의 생명에 끝장이 오는 것도 아니질 않는가?

다시 얼었던 땅이 녹으면

메마른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금년에 피어난 꽃은

과거의 무한한 봄을 두고 피어났던 그 꽃이요,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저 곱디고운 단풍잎은

미래의 무량겁에 걸쳐 나타날 영원한 모습이 아닌가?

 

 

 


오늘 따스한 햇볕 아래 땀 흘리면서

밭을 일구고 있는 저 농부도

몇 십 년 전에는 손가락을 빨면서

아버지가 밭 일구는 것을 보고자란 개구쟁이 그 소년이요,

다시 몇 십 년이 흘러가면 또 오늘같이 따스한 봄날에

저 농부의 아들이 어른이 되어 밭을 일구지 않겠는가.


내가 없어도 삶은 이어져 가는 것,

어이해 부질없이 무상한 이 삶에 넋두리만 할 것인가?


저 높은 허공의 흰 구름도 바람 따라 흘러가고,

도도한 강물도 청산을 돌아간다.

내 인생 또다시 이 사바에 오지 않아도

무엇이 한스러울 것 남아 있겠는가?


엇짜피 돌이킬 수 없는 내 인생이라면

피고 지는 꽃처럼 미련도 버리고

흐르는 물처럼 미련도 두지 말고,

못 다한 사랑도 못 다한 아쉬움도,

뼛속에 스며드는 허무와 고독도,

무상한 이 삶의 강물에 던져버리고

걸림 없이 살다가 가자구나.


부질없는 부귀영화 쫓지도 말고

사랑과 미움의 못 다한 한도 버리고,

욕망과 미망의 동굴에서 벗어나

풀밭에 뛰노는 사슴들 모양

남은 내 인생 그렇게 구애 없이 살다가 가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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