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의 법문

2005. 10. 14. 07:39붓다의 향기

 

원효(元曉)대사의 법어


 

34세 때 함께 동문수학하던 의상(義湘)과 함께 불법을 닦으러 당나라에 가던 길에 요동에 이르러 어느 무덤 사이에서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한 그릇 마셨던 바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속의 벌레가 기어다니는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깨닫기를


[마음이 나면 여러 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해골과 둘이 아니다

 

(심생즉종종법생 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촉루불이 心滅則觸髏不二).


부처님 말씀에 삼계가 오직 마음뿐이라 하셨으니

어찌 나를 속였으랴.]


하고 바로 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뒤 분황사(芬皇寺)에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통불교(通佛敎: 원효종, 분황종, 海東宗이라고도 함)를 재창하며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기에 노력하였다. 하루는 장안 거리로 다니면서 노래하기를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느냐,

내 하늘을 바칠 기둥을 깎으리로다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하니 사람들이 듣고 그 뜻을 몰랐으나 태종 무렬왕이 듣고

 “대사가 귀부인을 얻어 슬기로운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하고 요석궁(瑤石宮)의 홀로 된 공주로 짝을 짓게 하기 위하여 요석궁에 들게 하였다. 사신이 스님을 문천(蚊川)의 다리에서 만나 일부러 물에 떠밀어 옷을 젖게 하여 스님을 맞아 궁으로 모시고 젖은 옷을 말리느라고 유숙케 하였다. 과연 공주가 아이를 배어 설총(薛聰:신라 십현(新羅十賢)의 제일인)을 낳았다. 그 후부터 파계하였다고 속복(俗服)으로 바꾸어 입고 소성거사(小性居士) 또는 복성거사(卜性居士)라 자칭하였다. 우연히 한 광대가 괴상한 박을 가지고 춤과 만담을 벌리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화엄경의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에 “무애(無㝵)”를 따다가 박의 이름을 짓고 <무애가>라는 노래를 지어 춤추고 노래하며 여러 마을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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