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노트에 그대 이름이

2005. 9. 30. 23:33생각하며

 

 

 

 

 

 

 

내 삶의 노트에 그대 이름이…

          

 

 

어느 날인가.

부산 고속터미날로 나를 전송해 주던 날,

벚꽃이 화려하게 피었던 마을을 지났지.

그리고 그대가 말했지,

맥주한잔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그대가 말이지.

“내년 봄에는 저 벚꽃이 만발한 마을에서 술 한 잔 하자”고.


 기다리든 그 봄도 멀지 않았고,

그때 그 마을도 그날처럼 다시 벚꽃으로 뒤덮이겠지,

 

그런데, 

그대는 가고 없으니

뉘와 더불어 그 벚꽃마을에서 술잔을 들랴.


대가 그렇게 갈 줄 알았는지,

여태끗 내리지 않았던 이 겨울의 눈이

그대가 머무는 그 양산에,

계절따라 피는 저 벚꽃도 멈추게 하였는데…


옛날

구부러진 몸으로

단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김해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오르내리든

학구열에 붙타던 그 시절


늦은 밤 백운계곡의 기슭에서

일동의 어느 목노주점을 빌어

밤새워 그대와 허박사와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논하며,

부처를 논했든,

그 철부지 같았든 그 시절   


“부처도 알 수 없고,

사람의 인연도 알 수 없다.”는

그때의 그 말이

진정 그대가 남기고 간 화두이었단 말인가?


라리 아비달마의 무여열반처럼

번뇌와 육신도 모두 재가되어

그렇게 살아지고 싶었다면

차라리, 이렇게 애달프지 않았을 것을,


아니, 그대가 희랍의 철학자 필로의 말을 믿었단 말인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첫 번째 축복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 내린 축복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죽는 것이다.“

 

그대는 진정 그 말을 믿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대는 그렇게 서둘러 갔단 말인가?


참으로 어리석은 그대여?

진정 그대가 그랬다면

조금더 눈여겨 보았서야 했든 것을.

그렇게 말한 그는 97세까지 살았든 것을 몰랐단 말인가?


일찌기 그러지 않았는가?

그대의 몸은

나 보다 먼저 가겠지만

그래도 환갑잔치는 보내고 가야한다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 것도 고통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라.”

 

일찍이 부처가 한 이 말을

나는 책 속에 글인 줄 알았건만

그대는 가고,

텅 빈 법당만 남으니

이제사 알 것 같네 부처의 그 말을.

 

 

성산 계곡에 진달래 다시 피고,

계곡물은 여전히 푸르게 흘러가겠지만

그대가 간 용주사는

텅 빈 법당에 부처만 남았으니…

찿아간들 반겨줄 이 없는 그곳에

뉘와 더불어 그 기쁨을 다시 누리겠는가.


부전 지어놓고

그렇게 좋아하든 그대여,

그 기쁜 마음에

내 마음 더하고저

20년 간직한 영취석 차에 싣고

지루한 줄 모르고 반나절을 달려가

그대가 있는 그 법당 앞에 시 한 줄 올려놓고

함께 웃음 지었든 그 시절이 어제 같은 데…


대가 지은 그 명부전

그대가 망자의 혼이 되어 손님이 될 줄

그 어느 누가 알기라도 했어랴!


헐떡거리는 숨소리 가누며,

회색 빛 가사 땀방울로 젖는 줄도 모르고

금강경 펼쳐들고

먼저간 망자를 위무 하던 그대가,

국화꽃 영정 속에 위무 받는 몸이 될 줄이랴…


 

밤 지새며,

그대와 함께 사진 한 장 찍은 적 없지만

그대의 사진 앞에

쓴 술 한 잔 올려놓고

늦은 이 밤에

그대와 나누는

이 소리 없는 대화.


대는 들리는가?

듣고도 소리가 없는가?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의 아픔보다 더 한 것은 정이요,

정보다 더한 것은 마음의 이별이라고.


 

나자고 약속하고

이 사바에 온 것도 아닌데,

간다고 약속하고 간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 밤을 그대와 지새우는가?

어이해 말없는 그대의 사진과

이 밤을 지새우게 되는가?


대와 나 사이

진정

덧셈도, 뺄셈도 없는 데

어이해 내 삶의 노트에

그대는 내게 자취를 남겼는가?


은 깊어 어두운 데,

아직도 여명은 밝아오기 멀었는데,

내 삶의 노트 한 구석에

왜 그대의 이름을 남기고 갔는가?


경남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

천성산 용주사 주지 지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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