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제28구 상근기와 중하근기

2024. 8. 25. 18:32증도가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깨치고

중*하 근기는 많이 들을수록 더욱 믿지 않는다

 

<原文>

上士一決一切了(상사일견일체료)

中下多聞多不信(중하다문다불신)

 

옛 고승이 이르기를

「말을 따라가면 의심만 늘어가고

말을 잊고 뜻을 따라가면 물을 것이 없다.」라고 했다.

마치 영리한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바로 알아차리고 달려가지만,

아둔한 말을, 채찍을 내리치고 송곳으로 찔러야만

달려가는 것과 같이

상근기를 지닌 사람은 뜻에 따라 들어감으로

일단 이것이 바른 최상의 법임을 알게 되면

일체의 의심을 버리고 바로 결단하여

일체를 요달하지만,

중하근기의 사람은 많이 듣고 많은 지식을 쌓지만,

말과 글에 따라 들어감으로

도리어 의심만 쌓이고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저 하늘이 진실로 넓건만 하루살이는

독 속에서 놀고 있어서 보지 못하고,

밝은 태양은 대개 밝은 것이건만

박쥐[仙鼠]는 낮이면 숨어 있으니

어떻게 불 수 있는가?

업장(業障)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어찌 독 속에서 노는 하루살이와 다를 것이며,

지혜의 눈이 열리지 못한 사람이

어찌 낮에 잠복하고 있는 박쥐가 아니겠는가?」

라고 했다.

 

남명천화상은 그의 주석서에서 이렇게 주(註) 했다.

「위없는 묘법[無上妙法]은

오직 상근기의 사람만이 듣고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니, 이 때문에

“상근기의 사람은 한 번 결단하여

일체를 요달한다[上士一決一切了]”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상근기의 사람이 서로 만나

눈길이 부딪치면 도가 간직되고[目擊道存],

중ㆍ하근기의 사람은 많이 듣는 것[多間]을

이익으로 여길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말이 많아지면 도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진다[言多則去道轉遠]”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중ㆍ하근기의 사람은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믿지 않는다[中下多聞多不信]”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3교(敎)에서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모두 이러하다.

대승보살(大乘菩薩)은 한 가지를 듣고

천 가지를 깨달아서 대총지(大摠持)를 얻는데,

모든 소승인(小乘人)은 이 법을 감당하지 못한다.

노자(老子)는 말한다.

“상사(上士)는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실천에 옮기고,

중사(中士)는 도를 들으면 혹은 간직하기도 하고

혹은 잃어버리기도 하며,

하사(下士)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그러므로 하사가 비웃지 않으면 도가 되기에 부족하다.”」

 

그리고 한산시(寒山詩)를 인용해 놓았다.

 

상인(上人)의 마음은 맹렬하고 날카로워서

한 번 들으면 묘법을 바로 알고

중류(中流)는 마음이 청정해서

깊이 생각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며

 

하사(下士)는 우둔하고 어리석어서

질긴 껍질[頑皮]을 찢어내기 가장 어렵네.

곧바로 머리에 핏방울이 흘러야만

비로소 자신이 꺾이게 됨을 안다네.

 

눈을 떠서 저 도적을 살펴보라,

저잣거리에서 떼로 모여 싸우누나.

먼지처럼 죽은 시체로 버려지면

이때는 누구에게 하소연할꼬.

 

사내대장부여

한칼에 두 동강을 낼지어다.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이니

망상 번뇌 일어남을[造作] 언제쯤 쉴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