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둘레길 가벼운 나들이 석림사에서

2024. 5. 28. 23:59국내 명산과 사찰

 

운동 삼아 중랑천과 당현천을 매일 다니다시피 걷다 보니

오늘은 지루한 감이 들어

수락산 둘레길 중 석림사로 방향을 잡아 보았다.

수락산 석림사와 노강서원에 대해서는

이미 본방 *수락산(水落山) 석림사(石林寺)와

*노강서원(鷺江書院)에서 내력(來歷)을

이미 포스팅한 바 있어 생략하고

야사와 더불어 초파일이 지난 후

사찰의 분위기를 가볍게 피력해 본다.

 

수락산 들머리로 석림사를 잡으면 입구에

경기도 기념물 제41호(1977.10.13. 지정)된

노강서원(鷺江書院)을 만나게 된다.

 

노강서원은 조선 중기 문신인

정재(定齋) 박태보(1654∼1689)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건립된 서원으로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1689년(숙종 15년)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이세화, 오두인과 함께 이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는 도중

36세의 나이로 노량진에서 사망한 분인데

노강서원은 그를 기리는 사당(祠堂)이다.

 

폐위당한 인현왕후는 어떤 분인가 하면

당시 서인과 남인의 당쟁이 극한으로 치닫던 숙종 시대에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실각하면서 함께 폐출되었던 인물로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에게 중전의 자리를 빼앗겼지만,

갑술환국으로 남인들이 철퇴를 맞자

중전으로 복위하면서 국모로서의 명예를 되찾았던 분이다.

 

청풍정 주춧돌

이를 테마로 꾸민 드라마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야기는 한때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는데

당시 속가에서는 이를 대변하는 이런 동요까지 떠돌았다고 한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일세.

철을 잊은 호랑나비 오락가락 노닐더니

제철 가면 어이 놀까, 제철 가면 어이 놀까.

 

미나리는 인현왕후를 장다리는 장희빈을 비유한 것이고

호랑나비는 아마도 임금을 비유한 것이리라.

 

드라마에서는 악녀로 묘사되기도 한 장희빈은

조선 왕조 사상 천출인 출신 궁녀가 왕비로 책봉된

최초의 여인이다.

이런 예는 조선의 역사에는 없었는데 이

렇게 왕후의 자리까지 엿볼 정도에까지 올라간 것을 보니

장희빈(본명 장옥정)은 분명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를 지녔던 모양이다. 그러니 숙종이 혹(惑)했을 수 밖에.

 

노강서원에서 5~6분 정도 걸으면

석림사(石林寺)가 일주문에 다다른다.

수락산 등산로의 입구에 있는 석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사력을 보면 1671년(현종 12)에 석현과

그의 제자 치음이 처음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는 석림암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 후 화재와 홍수로 여러 번 중 개축을 거듭하다가

6·25동란으로 전소되었던 것을

1956년 바구니 상인에 의해 재건된 사찰로

지금에 이르고 있는 사찰이다.

 

범종각

당우는 입구에 종각이 있고 주 법당으로

일반 사찰의 대웅전 격인 큰 법당과

요사채를 겸한 적묵당과 진영각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삼성각이 조성되어 있다.

초파일이 지난 지 겨우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사찰 경내는 참배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쓸쓸한 감이 들었다. 속된 말로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적묵당

홀로 법당에 들어 삼배를 올리고 잠시 명상에 젖었다가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니 10여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수미단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로 두고

좌우에는 위태천(동진보살)을 중심으로 한

신중탱과 지장탱 그리고 아미타래영도

모두가 10여 년 전 보았던 옛 모습 그대로다.

 

 

닷집(편액은 도솔천 내원궁으로 되어 있다)

 

동진보살(위태천)을 중앙에 모신 신중탱

 

지장탱(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존속들)

아미타래영도

 

인터넷에 올려진 것을 보니 석림사 큰법당에 조성된 부처를

아미타삼존불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글쓴이가 불자가 아니라서 오류를 범한 것 같다.

 

큰법당 뒤에 석조지장보살상도 옛 보던 그 모습 그대로다.

전국 어느 사찰에 가보아도 지장보살을 조성해 놓고 있는데,

석림사 역시 지장보살상을 조성해 놓았다.

 

#지장보살은 범어로는 <크시티가르바> 라고 하며,

이를 의역한 것이 바로 지장(地藏)이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관세음보살과 함께

가장 많이 모시는 보살이다.

중국에서는 4세기 초, 한국에서는 5세기 신라 진평왕 시대,

일본에서는 9세기 무렵부터 신앙이 널리 퍼져나갔다.

아미타불의 협시로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신 사찰도 요즘은 많이 보인다.

 

경전에 따르면 지장보살은 본래 인도 바라문의 딸이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방하고 다녔다.

후에 소녀는 어머니가 죽자 지옥에 떨어졌으리라 생각하여

진심으로 공양하였고,

각화정자재왕여래의 힘으로 지옥 여행을 떠났다.

지옥의 참상을 보고 소녀가 어머니가 있는 곳을 물었는데,

자기가 공양한 공덕에 힘입어 어머니가

무간지옥에서 다른 죄인들과 함께

천상에 올라간 지 3일이 지났음을 알았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와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이 제도 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나이다."

(지옥미제地獄未濟

서불성불誓不成佛)라는

대원(大願)을 세웠다.

 

지장보살의 묘사나 불상을 유심히 보면

유독 초록색 머리가 눈에 띄는데,

일반적인 수행자인 승려의 삭발 머리를 나타낸 것이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살색 대머리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중생을 구제하는데 쉼 없이

영원히 구제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범어 크시티 가르바(Ksitigarbha)의 의역으로

Ksiti는 땅을 의미하고 Garbha는 모태를 의미하는데

이는 마치 대지와 같이 무수한 종자를 품고 있다고 하여

지장(地藏)이라고 한다.

불교 성립 이전 고대 인도에서는 대지의 신을 신앙하였고

이 보살은 만물의 생육을 관장하는 대지모신에서 출발하였다.

그런 고로 불교의 지장신앙은 고대 농경사회에 성행했던

대지모신 신앙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지장보살이 전생에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소녀였다는 점도 그 근거가 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주위에 어려운 자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결과

벌거벗은 몸이 되었고,

나체를 감추기 위해 땅을 파고 자신을 담았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도리천에서 석가모니불의 부촉을 받아,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출현하기까지의 무불 시대에

육도의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한다는 보살이다.

여기서 육도라 함은 지옥ㆍ아귀ㆍ축생ㆍ

아수라ㆍ사람ㆍ하늘 등을 말한다.

 

육도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이 있는 곳이

바로 지장보살이 있는 곳이며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수많은 분신들을 만들 수 있다.

덤으로 망자들을 저승까지 안내해주는 저승사자 역도 한다.

 

@지장(地藏)의 뜻

지장(地藏)은 산스크리트어 '크시티가르바(Kisitigarbha)'를

한문으로 번역한 말이다. 크시티가르바란

'대지(大地)의 태(胎)' 또는 '자궁(子宮)'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땅을 감싸고 있는 보살이란 뜻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바로 땅의 보살이며

대지(大地)의 보살이다. 인간을 비롯해서

자연 만물을 지탱하고 있는 대지는 많은 덕을 갖추고 있다.

모든 생물을 생장 발육시키며,

모든 중생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이 바로 대지이다.

바로 이런 대지가 가진 덕성을

일곱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을 '칠지의(七地義)'라고 한다.

칠지의는 지장보살의 위덕을

대지가 가진 위덕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 지장보살의 장(藏)은 3가지 덕을 의미한다.

이를 삼덕장(三德藏)이라고 한다.

3가지 덕의 장(藏)은 비밀, 포용, 함육(含育)의 뜻을 가지고 있다.

지장보살은 깊은 선정 가운데서 일체중생의 잘못을 멈추게 하고

지극한 선에 나아가 중생들을 교화하여

올바르게 성숙시키기 때문에 '장(藏)'이라고 한다.

장에는 지장보살이 '갖추고 있는(藏)'

세 가지 덕성을 설명하고 있다.

즉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를 갖추고 있는 '지덕(智德)',

모든 무명과 번뇌, 그리고 고통을 끊는 '단덕(斷德)',

모든 중생에게 대원의 은혜를 베푸는 '은덕(恩德)'이

바로 지장보살에게 갖추어진(藏) 세 가지 위덕이다.

 

이처럼 '칠지의'와 '삼덕장'을 갖추신 지장보살은

철저한 비원(悲願)을 세우고 지옥을 항상 계시는 곳으로 삼고

육도(六道)를 능히 교화(能化)하시는 자존이다.

 

진영각

진영각과 삼성각은 참배객이 없어서 그런지 문이 닫혀 있다.

사찰을 빠져나와 수락산 등산로를 따라 한참 걸어 보았다.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본래 수락산 석림사 코스는

수락산 등산로 중 가장 멀고 지루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오늘따라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만난 사람은 계곡에서 쉬고 있는 몇 사람이 전부였다.

한참 산길을 오르다보니 나도 지루해서 돌아섰다.

처음부터 등산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산길은 사색하기 좋지만,

오늘따라 왠지 적막감이 느껴졌다.

태풍 뒤에는 고요가 밀려오듯 초파일 지난 사찰도

그러함에 섭쓸한 마음이 들었다.

부처의 의미가 초파일에 매여 있었다는 말인가,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녹음 짙은 오월의 풍경은 담지 못하고

가지고 간 카메라에는 빈 풍경만 몇 커트 담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