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녹야선원 대법당 편액 <나가당>에 대한 소고(小考)
2024. 3. 10. 16:31ㆍ국내 명산과 사찰
토요일 오후 가벼운 나들이 삼아 집을 나섰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조금 넘었다.
사실 이 시간대라면 조금 먼 코스로 나들이하기는 늦은 시간이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도봉산 녹야선원 쪽 둘레길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녹야선원은 도봉산 자운봉 코스로
산행할 때마다 스쳐 지나가기만 했지,
경내를 둘러보기는 이번이 두 번째인 셈이다.
도봉산 둘레길에서 녹야선원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옛적에 녹야선원을 찾았을 때
대웅전 편액의 글을 판독하지 못한
궁금증이 뇌리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춘삼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산과 숲은
봄옷을 갈아입지 못했고
계곡에는 눈 녹은 물만 졸졸 흘러내리고 있었다.
경내를 들어서니 크게 변한 것은 없어
주마간산 격으로 가볍게 경내만 둘러보기로 했다.
녹야선원(鹿野禪院)이란 사명(寺名)은 녹야원(鹿野苑)에서 차용된 것이다.
녹야원은 지금의 인도 바라나시 북방 약 7㎞에 있는
사르나트를 말하는데.
이곳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열반에 든 <쿠시나가라>와 더불어
불자들이 순례해야 할 4곳 명소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녹야원이 순례지로 불자들에게 회자하게 된 더 큰 이유는
이곳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룬 뒤
이곳에서 처음 수행에 나설 때 돌아선
옛 제자들 교진여(橋陣如 Kauṇḍinya)를 비롯한
5명의 수행자를 찾아가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처음으로 설하여 이들의 귀의(歸依)를 받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귀의(歸依)로 비구(比丘)가 처음 생겨나고
이로써 불교 교단이 비로소 성립되었기 때문에
녹야원을 순례하는 것이 불자들의 당연한 의무로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화성 신흥사)
이 사진은 2017년 4월에 찍은 것이다.
현재 대웅전의 모습은 개조되어 었어 편액이 가려져 있어
편의상 이 사진으로 대신한다,
법당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대웅전의 이 편액의 글자다.
대웅전 편액의 글자가 초서(草書)로 쓴 달필이라
나의 좁은 안목으로는
도저히 어떤 글자인지 몰라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오늘은 법당 마당에서 일하시는
한 스님이 있어 물어보았다.
대웅전의 편액 글씨는 탄허 스님의 친필이라고 하시면서
<나가당>이라고 일러주셨다.
<나가당>은 대웅전과 같은 의미라고 하시면서,
어찌 <나(那)>, 더할 <가(加)>,
집 <당(堂)>이라고 글자까지를 세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런데 <나가당>이란 전각 명은
필자가 수십 년 가까이 불교와 인연을 맺고 있지만
처음 들어보는 전각명이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나가당>의 의미를
인터넷에서 다시 검색해 보았지만 뜨지 않았다.
다행히 불교사전으로 조사해 보니
불광대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좁은 식견이지만 <나가정(那伽定)>의
그 의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가(那伽)>와 관련된
<나가정(那伽定)> <나가대정(那伽大定)>
<대정지비(大定智悲)>와 함께 서술해 본다.
(밀양 영산정사에 봉안된 석가 고행상.
인도 켈크타에서 모셔온 것이라고 한다.)
1)대웅전의 편액 <나가당(那伽堂)>의 <나(那)>는
범어 <Na>의 음사(音寫)로서
실담(悉曇) 五十字門의 하나에 속한다.
이는 <一切法名不可得>이란 의미다.
실담(悉曇)은 중국에 전래한 범어 문자를 총칭한 것으로
학자들은 체문(體文), 마다(摩多)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바로 말하면 이는 고대 인도의 언어인
범어(梵語) 산스크리트 문자를 뜻한다.
체문(體文)은 자음[父音부음]을 뜻하며
한글에서 자음인 <ㄱ>, <ㄴ> 등을 발음할 때
나오는 소리와 같은 의미이며, 마다(摩多)는 모음(母音)을 뜻한다.
2)나가(那伽)는 범어로 <Naga>인데
이를 번역하면 용(龍), 상(象), 무죄(無罪), 불래(不來)가 된다.
또 불(佛) 혹은 아라한(阿羅漢)을 일컬어
마하나가(摩訶那伽)라 부르는데
이는 대력(大力)이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마하(摩訶)는 범어 <mahā>의 음사(音寫)이며
그 뜻은 <大, 多, 勝>을 의미한다.
@<大日經蔬五>는
「摩訶那伽 是如來別號 以況不可思議 無方大用也」 라고 했다.
<마하나가>는 여래의 별호이며,
불가사의하여 크게 쓰이지 않음이 없다는 의미다.
2) <나가(那伽)>와 같은 음사(音寫)로
<나가(娜伽)> 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범어 Naga와는 같지만,
그 뜻은 부동(不動)의 의미이며,
이를 산(山)이라고 번역한다.
산(山)은 언제나 부동(不動)이기 때문에 이를 상징한 것이다.
(와우정사의 부처상)
3)나가정(那伽定)
용(龍)으로 변신하여 깊은 연못에 정지(定止)하는 것을
나가정(那伽定)이라 하는 데.
이는 부처가 장수(長壽)를 누리기 위하여
미륵(彌勒)이 출세할 때까지
원력(願力)으로 나가정(那伽定)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녹야선원의 나가당(那伽堂)은
나가정(那伽定)의 <정(定)>자 대신
<당(堂)>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필자의 좁은 안목으로 室자로 보이는데 확신은 없다.)
이는 일반 사찰과 달리 禪院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편액을 정한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伽 자는 절을 의미하는 <가> 다.
그러므로 <나가당>은 부처님이 선정에 든 집이라는 의미가 된다.
(설악산 화암사의 고행 부처상)
2)나가대정(那伽大定)
나가(那伽)는 범어 Nâga이며
대정(大定)은 범어 Samadhi이다.
<삼마디>라는 梵語가 중국에서 音寫된 것이며
번역은 <정(定)>이다. 선정(禪定)을 의미한다.
<大乘義章十三>에
「定은 實體로 이름한 것이다.
마음이 一緣에 住 하여 散勤을 여의므로 定이라 한다.
삼매는 외국어이며 번역하여 正定이다.」 라고 했다.
그러므로 나가대정은 범한(梵漢)의 복합어이다.
대용왕(大龍王)의 대정(大定)이라는 뜻이다.
이는 불(佛)의 선정(禪定)을 말한다.
(함안 마애사의 고행 석가상)
3)대정지비(大定智悲)는
대정(大定), 대지(大智), 대비(大悲)를 말하며
이를 부처님의 삼덕(三德)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마음은 맑고 밝으므로 대정(大定)이라 하고,
맑고 밝아 일체의 법계를 조견(照見)함으로 대지(大智)라 하며,
일체의 법계를 비추어
고해 중생을 구제할 마음을 내므로 대비(大悲)라 한다.
@부동경(不動經)은
「唯圓滿大定智悲無不具足 卽以大定德故坐金剛盤石
以大智德故現迦樓羅焰 以大悲德故現種種相貌」 라고 했다.
이상을 종합하면 녹야선원 대법당 편액을 <那伽堂>이라고 한 것은
부처님이 선정에 든 집이라는 의미가 된다.
일반 사찰에서 <대웅전>은 부처님 住 하는 곳이라는
단순한 의미라면
녹야선원에서 <나가당>이라고 한 것은
<선(禪)>을 오로지 수행하는
禪院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편액을 직접 쓰신
탄허 스님의 의도(意圖)와 스님의
그 慧眼을 여기에서 함께 엿볼 수 있다.
(정릉 수국사에서)
녹야선원은 녹야원에서 유래된 말이다
녹야원(鹿野苑)은 사슴 동산이라는 의미인데 이렇게 명명된 것은
〈출요경 出曜經〉 제14권 13 도품에서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이하는 <출요경> 제14권 13도품 중에서
녹야원 유래에 관련된 것만 발췌해 전문 그대로 옮겨 놓았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바라날국(婆羅捺國)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鹿野苑)에 계셨다.
거기에 바리(婆梨)라는 큰 강이 있었는데,
그 강 이름 때문에 그 나라를 바라날국이라 하였다.
선인이 살던 녹야원이란, 도를 얻은 신선들과
다섯 가지 신통을 가진 수행자들이
모두 거기서 도를 닦았기 때문이니,
순수하게 선한 사람으로서 범부가 아닌 사람들이 머물렀다.
어느 날 국왕이 사냥하러 들에 나갔다가,
마침 천 마리의 사슴 떼가 모두 그물 안에 모여든 것을 보았다.
왕은 곧 보병을 풀어 그 그물을 한 겹으로 둘러쌌다.
사슴들은 놀랍고 두려워 소리를 치면서
그물을 떠받거나 혹은 땅에 엎드려 몸을 숨기기도 하였다.
이것은 옛날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살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보살은 그 사슴 떼 속에 있으면서,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사슴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방편으로써 왕에게 애걸하면,
반드시 모두 무사히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곧 그 사슴왕은 사람 왕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애걸하였다.
왕은 멀리서 그것을 보고 곁의 신하들에게 분부하였다.
“누구도 손을 놀려 그 사슴을 해치지 말라.”
그 사슴왕은 다시 소리를 지르면서 꿇어앉아 왕에게 말하였다.
“지금 살펴보니, 왕께서는 천 마리의 사슴을 잡아
하루치의 요리를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날씨가 매우 덥기 때문에
그 고기를 오래 둘 수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저희들을 가엾이 여겨서
하루에 한 마리를 잡아 요리를 만드십시오.
왕의 신하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고
저희가 스스로 요릿감으로 가서 죽음을 받겠나이다.
그렇게 하면 고기 요리도 끊어지지 않고
저희 사슴 수도 자꾸 늘게 될 것입니다.”
왕은 사슴에게 물었다.
“네가 사슴 중에서 제일 어른인가?”
사슴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제일 어른입니다.”
“네 말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왕은 곧 그들을 놓아주고 군사를 거두어 성으로 돌아갔다.
그때 보살(사슴왕)도 5백 마리의 사슴을 거느리고 있었고,
조달(調達)도 또 5백 마리의 사슴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래서 날마다 한 마리씩 왕에게 보내어 요리를 만들게 하였다.
그때 조달이 왕에게 사슴을 보낼 차례가 되었는데,
마침 그 차례에 걸린 사슴이 새끼를 밴 지 여러 달이 되었다.
그 암사슴이 왕에게 자신의 곤란함을 하소연하였다.
“가야 할 차례가 되었는데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지금 새끼를 배어서 곧 몸을 풀게 되었습니다.
저는 차례가 되었지만, 이 새끼는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았습니다.
원컨대 이번 차례를 조금 뒤로 미루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달은 화를 내어 말하였다.
“왜 빨리 가지 않느냐? 누가 너를 대신해 먼저 죽겠느냐?”
그 암사슴은 슬피 울며 부르짖고는
바로 보살에게로 가서 그 사정을 하소연하였다.
“지금 저는 새끼를 배어서 낳을 날이 가까웠습니다.
원컨대 왕께서 허락하셔서
이번 차례를 뒤로 물려 주시면,
몸을 푼 뒤에는 스스로 가겠습니다.”
보살은 그 사슴에게 물었습니다.
“네 주인은 네 하소연을 들어주었는가?”
“주인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보살은 이 말을 듣고 7, 8번이나 탄식하고 그 사슴을 위로하였다.
“너는 우선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대신해서 저 대왕의 요릿감이 되리라.”
보살은 곧 천 마리의 사슴을 불러 놓고 간절히 타이르며 분부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게으르지 말고, 또 저 대왕의 가을 곡식을 해치지 말라.”
조달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어 그 암사슴을 꾸짖었다.
“너는 죽을 차례가 되었는데 왜 하소연만 하면서 죽으러 가지 않는가?”
그러자 보살이 조달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어라. 그런 말 말라.
저 암사슴은 사실 죽을 차례가 되었지만,
다만 태 안에 든 자식을 가엾이 여겨 죽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그를 대신해서 저 태 안의 목숨을 구하려는 것이다.”
그러자 사슴들은 보살의 생각을 알고 보살을 향해 꿇어앉아 제각기 말하였다.
“원컨대 저희들이 왕을 대신해 죽겠습니다.
왕이 계시기 때문에 저희가 살아서 물과 풀을 얻어먹고,
자유로이 거닐면서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슴왕은 그 마음이 간절하여
사슴을 버려두고 왕궁으로 갔다.
사슴왕은 찬간으로 가서 요릿감이 되기를 자청하였다.
요리사는 사슴왕을 보자 분명히 알아차리고 곧 왕에게 가서 말하였다.
“사슴왕이 찬간에 와서 이번 차례의 요릿감이 되려고 합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대왕이여, 그를 죽여야 합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평상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신하들은 얼굴에 물을 뿌리고 붙들어 일으켜서 자리에 다시 앉혔다.
왕이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속히 그 사슴왕을 데리고 오너라. 만나고 싶다.”
신하들은 사슴왕을 데리고 왔다.
왕이 사슴에게 물었다.
“천 마리의 사슴이 벌써 다 되었는가? 왜 그대가 왔는가?”
사슴이 왕에게 말했다.
“천 마리의 사슴들은 이제 큰 무리를 이루어서,
날마다 늘어갈 뿐이지 줄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의 일들을 왕에게 말하였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스스로를 질책하며 원망하였으나 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람의 왕으로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살아 있는 것들을 죽이기를 그처럼 하였구나.'
곧 왕은 대신들에게 명령하였다.
“온 나라에 영을 내려서 누구든 사냥을 하여 사슴을 죽이면 사형시켜라.
그리고 곧 사슴왕을 보내면서
사슴 떼를 데리고 산으로 돌아가 편히 살게 하였다.
그는 다시 나라에 다음과 같은 영을 내렸다.
“아무도 사슴 고기를 먹지 못한다.
만일 먹는 이가 있으면 그 목을 베리라.”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녹야원'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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