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기행 제2부 비로봉에서 동봉 서봉으로

2024. 7. 4. 22:23국내 명산과 사찰

하늘정원의 팔각정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송신탑 쪽이 비로봉 가는 방향이다.

만약 갓바위가 있는 관봉이나

케이블카가 있는 염불동 쪽에서

비로봉까지 오려면 적어도 7km 이상 먼 거리이지만

하늘정원 쪽으로 오르는

계단에서부터 따져도 고작 2km가 안 된다.

비로봉 일대는 군부대가 주도하고 KBS와

MBC 송신탑이 가설되어 있어

등로는 군부대의 철조망 옆에 조성된 외길이 전부다.

그래서 그런지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 정상 일대는

동봉으로 내려가는 길 외는

모든 방향의 등로가 차단되어 있다.

 

비로봉(毗盧峯)은 팔공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다.

해발1.193m로 바로 옆으로 동봉과 서봉으로 연결된다.

비로봉(毗盧峯)의 <비로>는 불교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서 차용된 것이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높은 봉우리는

예를 들면 치악산 비로봉(1.282m), 오대산 비로봉(1.563m),

속리산 비로봉(1.031.8m) 등과 같이

비로봉으로 명명하는 것이다.

거의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다.

비로자나불의 상징은 지권인(智拳印)이라는

수인(手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두륜산 가련봉(703m)의 형상이 이를 닮았다 하여

두륜산 가련봉을 부처님의 수인으로 본다.

팔공산의 비로봉은 이런 특색은 없고

단지 이름만 빌려온 것이다.

(지권인을 상징한 두륜산 가련봉)

 

 

(비로봉 가는 길에 돌아 본 하늘정원쪽 봉우리)

 

 

 

(비로봉 제천단)

 

정상을 오르는 길 앞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고

팔공산 제천단(祭天壇) 있다.

마이산이나, 태백산의 천제단과 같이

하늘에 제(祭)를 지내는 것은 아니고

단지 표지석으로 조성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곳을 돌아서 오르면 바로 정상이다.

 

(먼 곳을 응시하는 하는 듯 비로봉 정상석 바로 밑에 있는 바위다. 석용인가?)

 

 

 

비로봉을 내려와 동봉으로 향한다.

동봉(東峯)은 팔공산에서 비로봉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다.

해발1.167m로 일명 <미타봉>이라 고도 부른다.

<미타>는 아미타불을 약(略)해서 부르는 말이다.

불자들이 팔공산 동봉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정상 아래 우뚝 선 석조약사여래 입상 때문이다.

 

 

 

 

 

@동봉 석조 약사여래 입상

석명: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문화재 지정: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불상 크기: 전체 높이 6m

조성 시기: 통일신라시대로 추정

 

해발 1,155m의 고지(高地)에 위치하고 있는 이 불상은

거대한 화강암의 서쪽 면에 거의 원각에 가까운

고부조(高浮彫 : 높은 돋을새김)로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 자체가 거대한 광배의 역할을 하며

머리 주위로는 두광(頭光 )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넓고 편평한 육계(肉髻)를 가졌다.

반쯤 뜬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되었는데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두 볼은 살이 찐 편이고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어

온화하고 자비스러운 불심을 느낄 수 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은 좀 크게 표현되었다.

거대한 불상을 올려다보며 예불을 드리는

예배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된다.

귀는 마모가 심한 편이지만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다.

목은 너무 짧아서 삼도(三道)의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손)

(왼 손)

이 불상은 양손과 발이 모두 신체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크게 표현되었다.

오른팔은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지만,

조각 수법은 고르지 못하다.

왼팔은 가슴 위로 들어 올려

외장(外掌 : 손바닥을 바깥으로 함)했다고

안내판은 설명하고 있는데 마모가 심해

판독하기가 어렵다. 엄지와 장지를 맞대어

지물(持物)을 가진 듯하나 마모가 심해 확인할 수 없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이고 옷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뜨렸다.

단순한 호선(弧線 : 활등 모양으로 굽은 선)형

옷 주름만이 표현되었다. 법의 밑으로는

군의(裙衣)의 표현이 희미하고

직립한 두 발끝과 발가락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좌·우측 옷자락도 양팔에 걸쳐 넓게 늘어뜨려졌는데

마치 도포 자락을 연상케 한다.

이 불상은 손과 발에서 기형적 조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거대한 입상에 잘 조화된 옷 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경산시의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1965년 지정)과

양식적으로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위 설명은 현지 안내판을 참조하여 일부 편집하였다.)

 

 

 

 

동봉 정상석

 

(동봉에서 바라 본 비로봉 쪽 풍경)

동봉에서 내려와 마애불을 보기 위해 서봉으로 향했다.

서봉을 가려면 비로봉 쪽으로 다시 회귀하는 길목에서

서봉으로 빠지는 이정표가 있다.

초행이라 몸도 지쳐서 있었는데

공원 직원이 다가와 이보다 빠른 지름길을 알려준다고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 갔다가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다시 회귀하는 곤욕을 치렀다.

 

(서봉 마애불 입구까지는 계속 내려가지만

귀경시 이길은 다시 올라와야 하는 길이다.) 

 

 

(서봉 가는 길에 올려다 본 동봉 바위들)

 

한참을 가다보면 서봉 정상 밑에 우측으로

마애약사불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서봉 마애불 가는 길에 만난 고목이다. 

마치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빵끗 웃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하다.)

 

서봉은 팔공산에서 3번째 높은 산으로 해발1.153m 이다.

불자들이 관심을 두는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정상 아래에 조성되어 있다.

자연석인 바위에 부조되어 있다.

불상 앞에는 한 그루 소나무가 운치를 더하고

마애불 앞에서 바라보는 동봉의 바위들이 매력적이다.

 

 

 

@서봉 마애약사여래좌상

공식 명: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

문화재 지정: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크기: 전체 1.82m

유형: 마애불

조성 시기: 8세기(통일신라 하대)

 

자연 바위에 돋을새김(陽刻)으로 조성된

서봉의 이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동봉의 석조약사여래입상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사료된다.

크기는 1.8m 정도이며, 광배(光背)와 불신(佛身)

그리고 대좌(臺座)가 조화롭게 부조되어 있다.

 

광배의 안쪽(頭光)은 당초무늬가 부조되어 있고

바깥쪽(擧身光)은 불꽃무늬가 부조되어 있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정연하고,

마모되어서 그런지 백호는 보이지 않지만,

목의 삼도(三道)는 뚜렷하다,

 

법의(法衣)는 정형적인 우견편단을 취하고 있으며

가슴부위의 옷깃이 한번 뒤집어 부조(浮彫)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하대(8세기)에 작품으로 추정된다.

 

 

 

왼쪽 손바닥(左手) 위에는 약사여래를 상징하는 지물인

 약호(藥壺:약합이라고도 한다)를 쥐고 있다.

 

 

대좌는 상부는 앙련(仰蓮). 하부는 복련(覆蓮)을 부조하고

그 아래 두 마리 용이

좌우에서 떠받치는 형상으로 부조되어 있다.

 

(서봉 마애불쪽에서 바라 본 동봉풍경)

 

 

 

 

 

 

@서봉의 마애불까지 보았으니 이제 원점 회귀할 시간이다.

서봉에서 비로봉으로 다시 올라오는 데

집사람이 바위 하나를 가르키며

꼭 사람 같다고 하길래 무심코 보았는데

돌아와서 바로 세워보니 영락없는 도사풍의 사람 같다.

 

 

 

(하늘정원 쪽의  봉우리 아래의 저 가람이 오도암인가 보다.)

비로봉을 거쳐 주차장인

하늘정원 계단입구로 내려와 귀경길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목에 제2주차장에 잠시 머물러

승용차로 오도암 가는 길이 혹 있는지

알아보려고 둘러보았는데 전각 비슷한 건물이 보였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둘러보는 데

아래쪽에서 사람 소리가 나서 들러 보았더니

두 사람이 있었다.

위의 이 건물이 어떤 건물이냐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

“ 내가 중이고, 여기는 비로암이고,

저건 법당이다”라고 한다.

간단명료 참 명쾌한 안내다.

이어서 오도암 가는 길을 물었더니

제1주차장에서 산길로 500m 이상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귀경길에 다시 유턴하기도 그렇고 해서

포기하고 귀경길에 올랐다.